나이 40도 되기 전에 폐경이 오셨고, 폐경이행기에 전신 증상 및 심리 증상이 많이 있으셨다고 한다.
그 시기에 나는 사춘기였어서, 엄마가 얼마나 많이 힘들어하셨었는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응답하라 1988'에서 치타여사가 폐경기 증상으로 힘들어할 때 아들 정환이가 엄마를 살뜰하게 챙겨드리는 장면을 보면서 나도 저 때 엄마를 좀 알아드리고 챙겼어야 했던 건데 싶어 마음이 아팠다.
조기 폐경으로 인한 힘듦 때문에 울 엄마는 여성호르몬제 처방을 받아 수년간 복용하셨었다고 한다. 그리고 57세에 유방암이 걸리셨다. 암의 원인이야 아직도 암이 정복되지 않은 마당에 우리가 어떻게 다 정확히 알 수 있겠느냐마는, 엄마는 그때 먹은 호르몬들이 영향이 있었을 걸로 믿고 계신다. 암수술 후 조직검사 결과에서 호르몬 강양성이라는
암 특징 분석 리포트를 보시고 그러신 거 같다.
의사들 사이에서도 여성호르몬제 및 피임약 복용이 암을 유발하는 게 맞다는 의사도 있고 아니라는 의사도 있고 하니, 엄마의 믿음이 일리가 있다 없다를 아직은 따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궁내막증 수술을 해야 하고 이후엔 비잔이라는 호르몬제를 장복해야 한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엄마의 근심은 깊어졌다. 자궁과 유방, 갑상선은 서로 긴밀한 장기들인데 엄마를 닮아 여성장기가 안 좋은가 자궁 때문에 약 먹었다가 앞으로 유방도 안 좋아지면 어떡하나 등 걱정과 미안함이 뒤섞이신 것 같았다.
수술 날짜가 잡히고 향후 치료방향을 논의하던 날, 교수님께 말씀드렸었다. 우리 엄마가 유방암이셔서 저는 되도록 호르몬제 처방은 안 받는 쪽으로 하고 싶다고. 저는 벌써 아이도 둘이나 낳았으니 자궁을 적출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그때 교수님이 하신 말씀은
자궁 적출을 해도 비잔은 먹어야 돼. 난소를 남겨놓아도 타겟장기인 자궁이 없으면 난소기능이 금방 떨어져. 나이도 아직 어리고 앞으로 부부관계나 그런 만족도 문제에서도 자궁은 보존해야 해.
라고 하셨다.
왜요? 왜 생리를 하나 안 하나 비잔을 먹어야 하죠?
라고 묻고 싶었지만
교수님의 확신감 서린 대답에 아 네 그렇군요 하고 비잔을 받아들였다.
환우들이 모여있는 카페에서 검색을 해보니 과연 신약답게 핫이슈였다.
갖은 부작용들로 너무 힘들고 우울해서 정신문제까지 온다는 여자, 머리가 빠져요 살이 쪄요 전신의 뼈마디가 쑤셔요 무기력해요 등등 겁 날 만한 이야기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잘 적응하는 분들은 굳이 카페에 글을 남기지 않으실 테니 이런 반응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난 지금도 충분히 우울한데 여기서 더 우울해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수술 후 첫 외래에서 비잔 6개월치가 처방 내려졌고 보름 넘게 고민하다가, 이대로 두면 또 생리를 할 텐데 그럼 재발률이 올라간다니 약 복용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