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I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난 정말 2주 일탈한 것 빼고 매일매일 열심히 약을 먹었는데 왜 재발이 돼버렸지 앞으로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콩팥은 또 어떡하지 등등 고민이 모락모락 이어졌다. 그러다 'MRI를 왜 찍자고 하셨지? 혹시 암은아니겠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뻗쳐 잠을 못 이루는 밤이 이어질 무렵, 외래날이 되었다.
그날은 대기지연이 거의 없이 제시간에 진료를 봤는데 기다리는 동안 심장이 얼마나 쿵쾅대는지, 옆사람에게 들릴 것만 같았다. 심호흡을 계속했는데 잘 통하지 않아서,오늘은 이거 끝나고 뭐 먹으러 갈까!? 그런 생각도 해 봤는데, 아무 거나 먹자 아무거나,맘속에서 누가 막 그랬다.
요즘 만나는 의사 선생님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하도 하셔서, 오늘은 또 무슨 소릴 듣게 될까 초조했다.
모니터를 들여다보시는 교수님께 답답해서 먼저 물었다. "암인가요?"
"음...."
MRI 판독지를 한참 보시더니 대답을 하셨다.
"암은 아니네요."
"아아 다행이다 다행이다. 그럼 저 이제 어떻게 해야 돼요?"
지금도 많이 아프냐고 물으셨다. 통증은 응급실 간 병원에서 잡혔고, 스텐트하고 나서 열도 없고 괜찮아지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변이 잘 나오느냐"라고 물으셨다.
지금 난소 혹 때문에 요관이 눌려서 콩팥이 난리라면서 갑자기 웬 응가타령??
"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럼 3월에 봅시다."
3월??
그러믄요 쌩님, 저 12월에 이거 스텐트 또 바꿔야 하고요, 그리고 또 바꾸게 되는 이듬해 3월 말씀이십니까 쌩님.
그날 진료에서 우리 부부가 느낀 것은 교수님께서 이전 같지 않고 말씀을 아끼신다는 것, 우리 눈을 피하신다는 것, 그리고 이제 보니 많이 늙으셨다는 것.
먹구름이 우리 주변에 드리워지는 것 같은 기운이 들었다.
나에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교수님은 아마도 이대로 조용히 계시다 은퇴하고 싶으신 것 같았다.
내 나이 아직 마흔도 안 되었는데 3개월마다 스텐트를 바꾸어 가며 살라는 건가? 정말 교수님은 아무런 대책도 답도 없으신 거야? 내가 이제까지 교수님 환자로 지내왔는데, 그동안 나를 본 정도 책임감도 없으신 건가? 싶었다.
교수님은 내가 가엾지도 않으신가? 아니, 우리 부부관계를 위해 자궁보존을 그렇게 추천하셨던 분 아니야?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_
이럴 거면 비싼 MRI는 왜 찍은 건지, 검색해 보니 수술을 앞두고 몸속 상태를 세밀히 시뮬레이션해 보기 위해 찍는 거라던데. 이렇게 지켜만 보자고 하실 거면 왜 그랬지?
생각하면 할수록 답 없는 내 상황에 맥이 탁 풀렸다.
비뇨기과에서는, 산부인과에 문제의 원인이 있기 때문에 거기서 뭔가 해결이 되어야 비뇨기과도 팔로우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산부인과에서는 비뇨기과 문제가 일단 지금은 잠잠해졌으니 그냥 지켜보자고만 했다. 계속 스텐트를 넣고 살면서 고통받는 나라는 한 사람에 대한 걱정은 그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다.
대학병원이니까, 모든 과가 다 모여 있으니까, 나를 전체로 봐주고 내게 건강을 되찾아 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무너졌다. 여전히 과 별로 조각조각, 각자 자기들이 맡은 장기만 조각조각으로 보며 아 그 문제는 우리 과에서 다루는 게 아니고 라며 미루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