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의 기준, 변화를 품다.

by J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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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나는 대표이사와 제품 개발과 디자인에 대해 직접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 속에서 약간의 신뢰, 그리고 작은 믿음의 흔적이 보였다.

나는 조금씩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이야기했고, 대표이사는 가급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


처음 시도한 것은 재생 플라스틱이었다.

우리는 다각도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지만, 문제는 사람의 손이었다.

구매팀은 이미 산더미 같은 업무에 매달려 있었다. 내가 거래처와 연결점을 마련해 주었음에도, 그 부서에서 직접 해결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했으나, 물리적인 제약 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나는 수급 가능한 업체들을 리스트업 해두고, 일단 프로젝트를 보류하기로 했다.


그 다음으로 시선을 돌린 것은 컬러였다.

지금처럼 생산이 플라스틱 펜톤 칩을 중심으로 일원화되지 않았던 그 시절, 플라스틱 사출물의 색은 생산처마다 제각각 이었다.

양산 과정에서 컬러가 틀어져도, 그것을 알아채는 사람도, 수정할 인력도 부족했다.

특히 일본 제품들과 나란히 진열되었을 때, 우리는 그 차이를 선명히 느꼈다.

컬러 품질에서부터 일본 제품에 비해 크게 뒤처졌다.

디스플레이 속 우리의 제품은, 디자인이 아무리 훌륭해도 초라해 보였다.


우리는 팀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필수 컬러의 수를 최대한 줄이기로 했다. 18가지, 그것이 우리의 기준이었다.

각 플라스틱 소재에 최적화된 색 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내부에서 표준화 했다.

우리는 컬러칩을 제작했다. 폴리머를 생산하는 화학회사에서 제공하는 샘플 형태를 바탕으로,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마감과 형태를 더해 금형을 제작했다.

디자인팀과 설계팀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만들었다.


그 다음 단계는 거래처였다.

18가지 색상에 맞춘 샘플을 요청했고, 이를 마스터배치 형태로 만들어 공장에 보냈다.

샘플이 생산되었다. 우리 회사 최초의 CMF 칩이었다.

그 칩은 곧 공장과 해외 생산 라인으로 보내졌다.

QC는 통일되었고, 컬러의 오류로 인해 버려지는 플라스틱은 줄어들었다.

그 작은 칩 안에는 친환경이라는 개념이 담겨 있었다.


이제 모든 부서가 하나의 컬러 기준을 사용했다.

디자인팀과 기획 부서도 그 기준에 맞춰 제품을 기획했다.

새로운 컬러를 추가할 때는 신중했다. 모든 부서와의 협의를 거쳐야 했다.

우리는 관리하지 못하는 컬러를 늘리지 않았다.

그렇게 기준을 세운 후, 우리의 제품은 이전보다 나아 보였다.

판매량도 조금씩 변화를 보였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시도한 친환경 사례였다.


그 컬러칩은 코엑스에서 열린 친환경 제품 박람회에 전시되었다.

그곳의 전형적인 풍경은 늘 비슷했다. 나무색과 초록으로 가득한 전시장.

그 가운데에 우리 칩이 있었다.

플라스틱의 다양한 색이 놓였다. 관람객들은 걸음을 멈췄다.

그들 중 몇몇은 조용히 손을 뻗어 그 칩을 살폈다.

나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떤 전환점이 만들어지기를 바랐다.


“이것도 친환경일 수 있습니다.”


화학회사가 아닌 일반 기업에서 폴리머 CMF 전시를 한다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 순간이 이질적이라면 이질적인 대로 의미가 있었다.

팀원들도 그 새로운 경험 속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그들이 웃었다. 그들의 웃음에 내 마음도 가벼워졌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길을 내딛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지만, 가야 한다고 믿는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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