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디자인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였다. 대표이사와 임원들 사이에서 외국 회사나 디자이너와 협업해보는 건 어떠냐는 이야기가 오갔다. 내게도 원하는 디자이너나 회사가 있으면 추천해보라고 했다.
나는 고민 끝에 나오토 후카사와와 아릭 레비를 추천했다. 153 제품을 염두에 둔 선택이었다. 대표이사는 에르메스와의 협업까지도 언급하며 의견을 활발히 나누었다. 결국 후카사와와 먼저 접촉해보기로 했다. 그는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높았으니까. 아릭 레비는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아 마케팅팀에서 보류를 요청했다. 에르메스는 런칭 일정과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고, 지나치게 강한 브랜드 이미지가 우리가 하청업체처럼 보이게 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제외되었다.
후카사와에게는 워크숍 당시 받은 명함이 있었다. 그의 사무실로 연락을 시도했고, 메일도 보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정중한 거절이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감동적이었다. 그는 LAMY와 진행했던 볼펜 디자인이 양산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우리가 요청한 필기구 디자인이 지나치게 유사해질 가능성을 염려했다. 단순히 디자인 의뢰를 받아들이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작업이 다른 제품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고민한 결과였다.
이후 논의 끝에 IDEO가 거론되었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고, 그들의 노하우를 배워보자는 의견이었다. 모두가 찬성했고, 회사는 IDEO와 직접 계약을 진행했다. 대표이사는 IDEO CEO인 팀 브라운을 만나 프로젝트의 일정과 세부 내용을 협의했다.
IDEO는 디자인 씽킹을 중심으로 한 사전 조사에 철저했다. 판매처, 디스플레이 장소, 시장성, 타깃 소비자 분석, 인터뷰 등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다양한 조사를 진행했다. 우리도 IDEO의 요청에 맞추어 자료를 준비해 보냈다. 나는 팀 브라운의 저서 디자인 씽킹을 읽으며 그들의 방식에 익숙해지려 했다.
IDEO는 미국 본사에서의 협업을 제안했다. 그들의 환경 속에서 직접 배우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회사도 여기에 동의해 주었고, 제품 디자이너인 나뿐 아니라 그래픽 디자이너, 설계자, 마케터까지 네 명이 함께 미국 팔로알토로 떠났다.
본사에 도착한 첫날, 회사 내에 마련된 CNC 기계, 회전반, 그리고 당시로는 대중화되지 않았던 3D 프린터 장비를 보았다. IDEO의 직원들은 입사 후 이 장비를 다루는 교육부터 받는다고 했다. 그들의 시스템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있었다. 과거 ABC 방송국에서 IDEO가 일주일 동안 쇼핑카트를 재디자인하는 과정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프로젝트에는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역사학자, 언어학자, 사회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사용자 관찰, 문제 파악, 아이디어 공유, 그리고 프로토타입 제작까지의 과정은 IDEO의 철학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디자인에서 스타일링도 중요하지만, 쓰임새가 보장되지 않으면 디자인의 생명력은 오래갈 수 없다. IDEO의 방식은 다양한 관점에서 오류를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나 역시 친환경 디자인을 논할 때 제품의 오랜 사용성을 강조한다. 대량생산도 중요하지만, 제품의 생명력이 길어져야 환경에 미치는 폐해를 줄일 수 있다고 믿는다. 쓰레기를 줄이고 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다.
내가 디자인한 제품들 대부분은 출시 후 10년 이상 사용되고 있다. 어떤 제품은 그 이상이다. 이는 제품군의 특성도 있지만, 오랜 시간 사용해도 어색하지 않도록 고심해 디자인한 결과이기도 하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 ‘예쁜 쓰레기’다.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제품들이 지구와 사회를 병들게 하는 원흉이라 믿는다. 그래서 지금도 디자인을 할 때마다 다각도로 고민한다.
IDEO와의 프로젝트는 내 습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다각적 사고와 사용자 중심의 접근법을 통해, 나의 디자인 철학은 조금 더 단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