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프리미엄 개발이 한창 진행되던 시절이었다. 그때, 한국공예문화진흥원에서 ‘나오토 후카사와’의 워크샵 공고가 올라왔다. 디자이너 30명을 선발하여 3일간 진행되는 워크샵. 포트폴리오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말에, 회사에 알리기도 전에 먼저 지원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불안하기도 했지만,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기쁨보다도 먼저 안도감이 밀려왔다. 회사에 출장과 비용 지원을 요청하자마자 허락이 떨어졌다. 레드닷의 수상이 이런 곳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이 워크샵은 2회째였다. 작년에는 프랑스 스타 디자이너 필립 스탁의 제자로 알려진 마탈리 클라쎄가 첫 워크샵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 소식을 작년에 알았더라면 지원했을 텐데, 아쉽게도 지나가버린 기회였다. 아릭 레비를 소개해 준 선배로부터 마탈리 클라쎄의 능력에 대해 익히 들어왔던 터라 더욱 그랬다. 그러나 이번에는, 책과 제품으로만 만나왔던 후카사와가 직접 진행한다는 소식이었다. 놓칠 수 없었다. 워크샵 첫날, 후카사와가 내 눈앞에 서 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후카사와 이후 많은 디자이너들을 만났지만, 그처럼 유명한 디자이너와 직접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워크샵은 몇 개의 조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조형적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디자인 과제, 조형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과정이었다. 대학 1학년 때 들었던 조형 수업이 떠올랐다. 하지만 후카사와는 단순히 형태를 다루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미니멀한 상태에서 창조적인 가능성을 어떻게 구성할지 질문을 던졌다.
놀라운 점은 몇 가지 더 있었다. 후카사와와 그의 조교는 우리가 사용할 모든 재료를 일본에서 가져왔다. 심지어 풀과 지우개 같은 사소한 것들까지도. 매일 작업을 마치면 만든 조형물을 전시했는데, 그 디스플레이 과정조차 철저했다. 빨간 실을 길게 당겨 모든 작품의 줄을 맞추는 모습. 그는 단 하나의 디테일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 미니멀리즘의 대가라는 수식어가 과장이 아니었다.
몇 년 후 IDEO와 일을 하게 되었을 때, 그들이 디자인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보는 두 권의 책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디터 람스의 ‘LESS AND MORE’, 다른 하나는 나오토 후카사와의 책이었다. 후카사와는 IDEO 일본 지사장을 역임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전설로 회자되는 그의 영향력은 IDEO 내부에서도 깊이 남아 있었다.
레드닷 작품집에 후카사와와 나의 작업이 함께 실렸던 때가 있었다. 후카사와는 독일 LAMY 사의 볼펜을 디자인했었다. 삼각 구조의 미니멀한 디자인, 클릭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아 주변에 방해가 되지 않는 볼펜. 일본 미니멀리즘의 철학이 담긴 그 발상은 놀라웠다. 워크샵 동안 많은 디자이너들이 그의 볼펜을 사 와 후카사와의 책 ‘Super Normal’에 사인을 받았다. 나 역시 그중 하나였다.
워크샵 첫날, 각자의 배경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항공기 인테리어를 디자인하는 선배와 나, 필기구 디자이너로서의 내가 약간의 주목을 받았다. 쉬는 시간마다 많은 사람들이 필기구 디자인에 대해 물었다. 특히 153을 프리미엄화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때마다 “준비 중”이라는 대답을 반복했다. 예상보다 뜨거운 관심은 나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회사로 돌아가 대표이사를 설득해야 한다는 과제가 더 무겁게 다가왔다.
후카사와는 작업 중인 모든 디자이너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왔다. 한 명 한 명의 고민을 듣고, 대화를 나누었다. 현직 교수라서 였을까. 그는 친근한 대학 교수님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날, 워크샵에서 나온 작품들을 보며 후카사와는 하나하나 설명을 덧붙였다. 사물을 디자인할 때 사람의 심리와 자연 현상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나는 그의 질문 앞에서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다. 자연의 현상과 예측 불가능한 매력을 담아내는 디자인. 그것은 나의 철학으로 남았다.
마지막 날, 후카사와가 말했다.
“여러분은 모두 프로 디자이너입니다. 어디에서 든 여러분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십시오.”
그 말은 조용했고, 단단했다. 그로부터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그의 말을 마음속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