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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Aug 06. 2019

드라마 속에서 본 '민의'의 무서움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기를

당신들 5명은 무엇을 위해 거기 있는 거죠?
민의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이렇게 격식 차린 건물도, 
권위 있는 절차도 필요 없다!

< 리갈하이2 ep9 코미카도 켄스케 대사 中 > 



♪이바다 - 믿고 싶은 대로 믿어요



" 이 시국에 일본은 좀 그렇죠. " 

" 응, 그렇지? " 


아쉽지만 입맛을 다셨다. 값싼 항공권은 둘째 치고, 비싸진 환율이 조금 껄끄럽고, 못내 아쉬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 '분위기'와 '시국'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건 아니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분위기는 굳이 설명치 않더라도 대부분의 세대가 겪어보지 못했던 독립운동의 분위기와 흡사한 것 같다. 그렇게들 이야기를 하니까. 아. 앞서서, 이 이야기는 그냥 사람들과 짧은 대화에서 조금 길게 떠올린 단상이지 난 정치적인 이야기를 드러내어 꺼내고 싶진 않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뭐 이렇든 저렇든 어떠랴. 노래 제목처럼, 믿고 싶은 대로 믿을 이야기이기도 하다. 





뉴스에서는 연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발표와 연관된 기사를 내보내고 있고, '늘 그렇듯' 포털의 실검에는 연일 모 연예인들의 열애설이 터지고 있다. 마치 어느 정부 때 스포츠가 성행했던 그때의 분위기와 닮았을까. 대통령께서는 "위대한 국민을 믿고 나아가겠다." 던가, "남북 평화경제로 일본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다" 라며, 연일 국민들에게 희망차고, 힘찬 메시지를 주고 있고, 길거리에서도 그 기운을 받아 쉬이 일본 불매 운동과 관련된 모습들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희망과 결의에 찬 분위기와 달리 환율은 점점 치고 올라, 유명한 광고 카피 ( 사실 드라마 대사였지만. )  중에 하나인 < 사딸라! >가 정말 4,900원에 육박하고 있다. 대통령의 발표문이 기사화 되기 무섭게 북한은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이러한 현실은 우습게도 분위기를 더욱 불태우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이런 분위기다. 


" 모든 건 일본이 잘못한 거야! " 

" 이 것은 하나의 독립운동이다!"






지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다. 다만 증시는 꽃이 지듯 지고 있다. 이건 현실이다. 


그저, 이렇게 요즘 시대를 느끼고 생각하는 건 기분 탓이었음 했는데, 정부 여당의 SNS에 올라왔던 이 문구 때문에 생각이 깊어졌고, 조금 무서워졌다. 

경제적 효율성 측면 하나 때문에
우리가 지켜온 역사와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08.05 더불어민주당 공식 SNS 발표문 中  


역사라. 우리가 과거와 같이 나라라도 뺏겼는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받던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고, 우리는 지금껏 그 혜택을 주던 상대를 미워했다. 불쾌한 표현일 수 있지만 그것이 사실이 아닌가. 그것이 우리의 혜택이자 다수의 이익이라면, 그것을 다시 얻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은 협상, 그러니까 국가에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방책을 생각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자존심이 국민들의 밥을 먹여주진 않는다. 먹고살려고 일한다. 일한 만큼 먹고살게 해주는 것이 자본주의 시대의 국가 존재 이유가 아니었나?  


그래서, 자존심이라던가, '다시는 지지 않습니다.' 같은 표어를 거는 것을 보고 있자면 무섭기까지 하다. 이 것이 싸울 일인가? 하지만 연일 나오는 정부의 메시지는 그렇다. 말리지 못할망정 부추기는 분위기다. 왜냐하면, '자신들을 지지하는 민의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때문이다. 







민의는 대체로 선하다. 

다수의 정의는 곧 민의가 된다. 그것이 결과론적이나, 역사적으로 잘못될지언정 '졌지만 잘 싸웠다.'로 미화가 될 수 있다. 다수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민의다. 민의에는 악의는 없다. 다수가 옳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민의는 보통은 분노의 대상이 있다. 의롭게 일어난다. 역사에 등장한 민의는 옳고 그름을 떠나 보통 분노의 감정을 담고 있고, 그래서 무섭다. 그래서 '민의를 대표하는 사람' 들이 민의를 눈치 보고, 방향 없이 따르는 모습은 무섭고, 옳지 않다.  




위 드라마의 대사는 그래서,

분노하는 민의에 향한 것이 아닌, 그 민의에서 나온 분노를 잠재우기 급급한 대법관들을 향한 주인공, 코미카도 켄스케의 일갈이다. 


대체로 이런 가벼운 느낌(...)의 드라마지만, 촌철살인의 씬은 역시나 의미 깊게 다가온다.  


우리나라에서도 리메이크된 일본 드라마 < 리갈하이 > 시즌 2의 메인 스토리는 세상의 지탄을 받는 희대의 요녀가 사형 선고를 받는 내용이다.( 사진 우측 상단 ) 하지만, 증거도 애매하다. 증인도 애매하며 사실도 아니었다. 그저 그녀는 도덕적으로 문란한 스포츠카를 타고, 푸아그라를 즐기는 요녀일 뿐이다. 하지만 검사, 그리고 판결은 '민의'로 사형을 선고했다. 요녀는 부풀어진 민의로 악녀가 되었고, '그들은' 그 민의가 태우는 분노를 잠재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엔 사형이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옳았다. 

왜냐하면 민의이기 때문이다.   



부풀어져 시야가 흐려진 민의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은 무너지고 있다. 단적으로 우리 경제의 지표인 주식시장이 붕괴하고 있다. 그 붕괴 현장 잔해에 우리의 재산과 같은 연기금 1조가 부질없이 파묻혀버렸고, 세계 시장 속에서 가만히 있는 - 선한 마음을 가진 - 국민들의 재산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 하지만 이 다수에게 보이지 않는, 혹은 보지 않는 잔해 속 우리 개개인의 현실보다 무너짐에 대한 슬픔 그 자체, 그리고 울분의 대상을 향한 맹목적이고, 막을 것 없이 연약한 개개인의 몸으로 부르짖는 분노가 나는 무섭다. 개인의 삶을 민의가 돌보아주진 않는다. 







다시 한번 이야기 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요즈음 우리가 사는 사회의 분위기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떠한 국가나 무리의 선과 악, 과거와 현재에 대한 개인의 생각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도 아니며, 정치적인 선호와 비판을 나타내고자 하는 그 무엇도 아닌, 그저 스카이스캐너를 켰다 끄며 생각한 단상이자, 오랜만에 다시 본 드라마 한 쪽의 감상이다. 그리고,


그저 우리를 대표하는, 국민이 세워 올린 그들이, 국제 정세의 운전대를 잡겠다는 그들이. 흐려질 수밖에 없는 민의에 휩쓸려가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일까 봐, 그저 그렇게 휩쓸리기만 하다 끝이 날까 봐. 그 후에 "우리는 졌지만 잘 싸웠습니다. 국민과 함께였기 때문입니다."라는 이야기를 정말이지 들어버릴까 봐. 일어나지 않은 일에 무서워 혀가 길어진 한 월급쟁이의 이야기일 뿐이다. 어제도 썼다. 후달리면, 혀가 길어진다고. 난 그저 개인일 뿐이기 때문이다. 




정말 요즘의 세상은 후달린다. 

그저, 상상하듯이.

휩쓸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세상은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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