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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Aug 07. 2019

'고인물'이 파온 우물에 관하여

평지에는 물이 고이지 않아

너희에게 완벽하고도 잘못된 
춤추는 법을 알려줄 테니까



♪キタニタツヤ - 悪魔の踊り方 ( 악마가 춤추는 법 )



" 어떻게 오래 일하셨어요? " 

"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네요. " 


아버지는 한 회사에서 30년 넘게 근속하신 경력을 가지신 프로 월급쟁이시다. 그런 아버지 앞에서야 비빌 것은 아니지만, 나도 이제 근속기간 두 자릿수를 바라보는, 그것도 이직이 잦은 편인 광고 시장에 몸을 담고 있는 월급쟁이다 보니, 부족하지만 자연스럽게 위의 질문을 받는 입장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한 달에 한두 번은 듣는 정도? 미리 이야기 하지만, 거창한 이유 따위는 없습니다. 정말이지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보통 위의 질문은 '이런 시대'에 신기하다는 뉘앙스의 의미가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의미를 담은 채로 다가올 때가 있다. 예컨대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퇴사를 희망하는 부서원과의 면담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설득을 하는 자리였다. 이 직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는 관점에서 보다는, 퇴사의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쳇말로 꼰대마냥 내가 해봤을 땐 말이야~ 뭐 이런 이유로 설득하고 잡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 직원은 지겨워졌다며, 재미가 없어졌다는 것이 이유였다.  





" ㅇㅇ님은 한 회사에서만 계셨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일하세요? 혹시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라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은 없으신가요? " 

놀랍게도 몇 년 후배뻘의 직원에게 실제로 들은 말이다. 난 그(녀)를 비난하지도 않았는데, 저 질문엔 가시가 돋아 있었다. 비아냥인가? 그래 뭐,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기는 한데, 그게 나쁘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우리가 파 놓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었던 사람이 할 질문은 아니다 싶어 무시했었다.  


< 고인물 >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는 것처럼 세상은 도전과 신선함을 장려하고, 멈춤에 대한 공포심을 심어준다. 고이면 안 된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고, 참지 마라!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야 한다 - 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심심치 않게 본다. 그런데 우리는 물이 아니다. 사람이지. 고인물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은 오래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일을 못해서이다. 그러니까 웅덩이 정도까지 밖에 못 판 셈이다. 팔 거면 우물은 파야지. 그 우물을 만들 때까진 내가 있는 곳에서 참으면 잘못인걸까? 그걸 혹자는 미련하다고 한다. 바뀌지 않을 거라고 한다. 실제로, 그것도 종종 들었던 말이니 피부에 와 닿는다.   






그런 의미에서 한 회사에서 오래 있는 이유 중에 이 이야기를 읽을 몇 없을 누군가에게 전할 만한 것을 떠올려보자면, '손에 장비가 익으니 더 깊고 오래 팔 수 있더라.'는 것이다. 어차피 난 어디를 가게 될지라도 지금 하고 있는 일 - 콘텐츠를 만드는 일 -을 할 생각이다. 더 어린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다. 그렇다 보니, 기왕이면 익숙한 것이 좋지 않겠는가. 익숙하게 해오던 것을 익숙한 인프라와 프로세스로 행하면 행할수록 새롭진 않을지언정 남들보다 빠르고 쉽게 할 수 있었다. 비록 누구보단 삐걱일 수도 있고, 어딘가보단 나쁜 장비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손에 익은 장비가 개인적으로는 좋을 뿐이다. 뭐, 가끔은 부럽지.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생기는 그런 호기심 비슷한 기분이다. 그뿐이다. 


그리고 한 곳만 파다 보면 재미있는 것들도 생각보다 많이 있다. 한 가지 일을 한 회사에서 계속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여러 가지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어릴 적에도 그렇지 않나. 놀이터의 모래밭을 파다 보면, 돌멩이도 나오고, 갑자기 딱딱한 땅도 나오고, 개미굴을 보거나, 가끔은 동전도 발견한다. 비슷하다. 난 똑같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자연스럽게 내가 하는 업무의 환경이 바뀌고, 새로운 것이 나오더라. 그저 내가 운이 좋을 걸지도 모르겠다.   





"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네요. " 

오늘도 누군가의 질문에 가볍게 한 대답은 그러니까, 그저 가만히, 대답처럼 가볍게 시간을 흘려보내며 멈춰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누구들과는 다른 방향일 수도 있지만 나도 내 나름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나도 그 누구들처럼 파던 웅덩이의 삽질을 멈추고 새로운 땅을 파러 갈지 아직은 나도 모르겠지마는. 십 년이 지난 지금을 보면 조금 자만일 수도 있지만 웅덩이가 '우물' 형상 정도는 된 기분이다. 적어도 내가 있는 곳이 우물이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고인물이 아니라 남들에게 나눠줄 물이 생긴 셈이니. 이 이야기가 나와, 우리가 사는 삶의 정답은 아니겠지만 누군가의 질문에 답하다가,  


한 곳에 오래 있는 것이 

적어도 < 고인물 >인 것은 아니다- 

고 말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100년이 넘는 시간을 지나 완성형이 된 튀김 덮밥. 


여담이지만, 나도 가끔은 '우물 안 개구리' 인가 라며, 스스로를 되짚어 생각한다. 혹시나 이 곳만 파는 건 잘못인가 하며. 그때마다 나름 단골인, 도쿄의 한 노포 ( 老鋪 )에서 맛볼 수 있는 텐동도 함께 떠올린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 집의 튀김 덮밥은 갈 때마다 한결 같이 맛있다. 적어도 내가 맛 본, 일본에서도 유수의 맛집에서 먹어본 것과 비교해도 맛있다. 아마 선대가 개업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맛집이었을 것이다. 인스타에서 하트를 무더기로 받는 트렌디하고 신선한 시도를 하는 맛집도 좋지마는, 이런 맛집도 있는 거다. 그래, '맛'이라는 본질만 잊지 않으면 그걸로 된 거지. 라며 마음을 다잡는다.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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