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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Aug 22. 2019

사람들의 표정이 읽히는 날에는.

♪Surl - The Lights Behind You

이벽은 어디서 온걸까?
이벽을 부수어 볼까나?
아니면 구멍을 만들까?


♪Surl - The Lights Behind You ( live )


이틀 만에 온 회사는 당연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이제는 집보다도 익숙한 사무실인데, 새삼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느껴졌다. 이런 날이 있다. 이렇게 사람들의 표정이 짙게 읽히는 날. 무감각할 메신저의 대답한 줄에도 무언가의 감정이 느껴지는 그런 날. 그리고 보통은 그런 날 느끼는 타인의 감정은 신기하게도 잘 맞아떨어지더라. 오랜 시간 한 곳에서 여러 사람을 보며 얻은 기술 같은 것일지, 아니면 정말 스스로를 좋게 평가해보자면 사람들에게 공감을 잘하는 걸지도 몰라. 아마 전자에 가까울 거다. 그렇게 좋은 성격은 못 된다. 




어려서부터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며 자랐다. 눈치를 본만큼의 올바른 삶을 살았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 무리 > 속에 있을 때는 튀어 보이지 않도록, 어긋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곤 했다. 12년 개근상, 회사를 다니며 지금껏 한 손 안에 꼽는 지각 횟수가 조금은 증거가 될까. 혹시나 상대방이 내가 한 행동으로 나를 밀어내면 어쩌지, 그래서 무리에서 튕겨나가면 어쩌지 하는 그런 무서움 때문이 가장 큰 것 같다. 학창 시절에는 어리숙한 나머지 그렇게 행동한 결과가 힘센 학우들의 괴롭힘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당시 눈칫밥은 남보다 많이 먹은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 나쁜 의미는 아니다. 적어도 어긋나는 행동을 덜 하게 되었으니. 






" 술 마시러 가요! "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지금보다는 비교적 어릴 적 나는, 이런 분위기를 느낄 땐 기분이 나아졌음 하는 바람으로 괜스레 술을 권하는 것이 습관 같았다. 홍대는 그러기 딱 좋은 장소 아니었겠나. 그렇게 많이 권했는지는 모르겠는데, 한 번 회사에서는 '직원들이랑 너무 술 마시러 가자고 하지 마세요'라는 권고도 받았던 적이 있으니, 아마 많이 권했던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내가 왜 그랬지 싶기도 하다. 나랑 술을 마신다고 해서 그 사람의 기분이 나아지는 건 아니었을 텐데. 많이 과했지. 그저 무리에 어울리는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한 살씩 나이가 들어가며, 이렇게 눈치가 빠른 것 같은 날에는 더 조심하고, 가급적이면 사람들과 말을 섞으려고 하지 않는다. 술이 아니더라도 "저 사람 한 번 이야기해봐야 하는 거 아냐?" 고 혼자 오지랖을 부리거나 말 한마디라도 툭 건네기도 했는데. 요즘에는 그런 것도 자제하려고 한다. 혹시나 사람들에게 내 지금의 기분을 들킬까 봐 눈치만큼 커지는 두려움이 있다. 나도 당신들의 기분에 어릴 때처럼 섣불리 다가서진 않을 테니 당신들도 내 기분을 쉽게 보지 않았으면 해요. 하는 그런 바람이다. 일에 감정이 섞이면, 더 힘들어질 뿐이야. 






" 요즘 편해 보이시네요. " 

" 네, 요즘 편하죠~:D "

잠깐 휴식을 취하고 왔다는 말에, 웃으며 동료가 말을 건넸다. 그래서 나도 웃으며 말을 받았다. 진짜로 웃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웃으며 대답해야지요 생각하며 말했으니, 웃었을 거다. 이렇게 조용하지만 감정이, 눈치가 한껏 예민해진 날에는 그만큼 빠르게 상대방과 내 사이에 <벽>을 친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겠지만, 오랜 시간 동안 터득한, 서로 힘들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사회생활의 방식이다. 가끔은 벽이고 뭐고 질척하게 감정을 부딪히고 싶지만( 좋은 의미에서의 이야기다.) , 역시나 쉽지 않은 것이 삶이니, 오늘도 참았다. 잘했어. 




서로 웃었으니 되었다. 

기분 좋은 하루의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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