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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d Sep 11. 2019

Place(장소)와 Space(공간)의 차이

♪기리보이-도쿄

즐거운 표정들 속에
나만 어둠이 담겨 있어

♪기리보이-도쿄


강의를 듣다 보면 가끔씩 딴생각으로 빠지게 만드는 주제가 있다. 오늘은 제목과 같이, 영어 단어 수업(?) 중에 있었던 이야기다.

"Place와 Space의 차이에 대해서 아시나요. Space(공간)이라는 것은 가시적으로 보이는, 설명 가능한 개념이고, Place (장소)는 그 공간에 역사, 의미, 가치, 경험, 기억 등의 개념을 더한 것입니다."




한 과목에 150만 원짜리 강의야. 정신 차리고 들어야지, 하면서도 속으로는 조금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싶어 이해를 하려고 하다 그 '장소'라는 개념에서 딴생각으로 빠지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어떠한 장소들이 있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곳'은 나에게 있어 공간일까 장소일까.






내가 '장소'라고 부를 수 있던 곳들은 대부분 사라지거나, 이젠 발길을 옮기기 꺼려져 더 이상 내가 살아가는 '공간' 이라고도 할 수 없는, 갈 수 있지만 갈 수 없는 곳들이 되어있더라.

태어나서 가장 많은 글을 만들어냈던 담배 내음 가득했던 펑키한 카페는, 강아지들이 입구에서 반기는 티라미슈 맛집으로 변했다. 글을 쓰던 '장소였던' '공간'에서 달콤 씁쓸한 케이크를 먹었더랬다.


거의 밥먹듯이 가서 '늘 먹던 것'이라고 해도 주문이 될 법했던 장소는 더 이상 방문을 하기 민망한 장소가 되었다. 얼마 전엔 심지어 그곳에서 그 늘 먹던 메뉴의 이름을 잊어버려서, 기억상실증이 왔나 싶었더래니까. 같은 하늘 아래 있는 '장소'이지만, 내가 살아가는 이 곳에선 지워져 버린 '공간'인 셈이다.






이제 남은 장소라고는 이 시국에 도쿄다.


東京이라는 독음을 빌려 동경하던 공간에 처음 방문했을 때 이후로, 이젠 손가락으로 셀 수 없는 만큼 이 곳 저곳을 밟으며, 나만의 장소로 만들었다. 아마,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는 대로 살아간다면 미래의 어느 때에는 저 장소 어딘가에 아예 보금자리를 틀고 살고 있을 테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 공간에서 얻은 슬픔과 외로움을 도쿄 곳곳에 뿌려댔다. 도쿄는 그래서 이젠 여행이라는 생각으로 방문하지 않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도쿄라는 공간은 그래서 <슬픔>이고, 비로소 내가 뉘일만한 장소가 되었다. 어쩜 이 시국과 날씨에 어울리는 우중충한 장소구나 - 즈음에 정신을 차리고 나머지 수업을 들었고 몇 분 지나지 않아 강의가 마무리되었다.





 

집에 돌아와 나만의 '공간'에서 일기를 쓰던 중, 혼자서는 '장소'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하루였다. 결국 함께 살면서의 추억이 남아있지 않는 곳은 장소가 될 수 없고, 혼자 아무리 열심히 여러 기억을 쌓아도 결국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강의는 실제에 적용할 수 있어야 명강의지. 암. 암. 오늘도 등록금의 가치를 느껴서, 조금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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