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d Jul 28. 2019

드라마 주인공이 항상 멋있진 않아.

♪Skins OST - Wild world

오, 얘야. 이 세상은 험하단다.
웃음만으로는 살아가기 힘들지.




♪Skins OST - Wild world


나에게는, 그리고 모두에게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주신 이름이 있을 것이고, 사회에서 나에게 준 이름도 있을 것이다.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 아들 > 이랄지 < 오빠 > 같은 이름도 있다. 대부분의 이름을 내 입 밖으로 뱉을 때는, 그래서 움츠러들고는 했다. 내가 지은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고, 이름답게 보내는 삶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언행일치(...)의 대명사 sid. 그의 말대로 그는 요절했다.


지금 이 곳에서 써놓은 'Sid-시드'라는 이름은 19살 처음 홍대에서 일을 배워보려고 할 때 지었던 이름이었다. 섹스 피스톨즈 베이시스트의 이름에서 따온, 저항감을 가득 담은 이름. 당시의 홍대는 흔히 떠올리는 클럽보다 그가 했던 음악 같은 펑크가 가득했던 공간이었다. 언제나 담배 연기가 진하게 풍기고 종업원 입술에 박힌 피어싱이 인상 깊었던 카페의 정경 속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었는데, 어찌 평범하고 소심한 내 이름 석자를 내걸 수 있었으랴. 그래서 이름을 지었고, 단정하게 깎고 다녔던 스포츠머리가 더벅머리가 될 때까지 육 개월간 자르지 않은 채 길렀다. 포크송과 청자켓이 저항의 상징이던 과거 우리네 선배들의 모습같이.

  

이름도 바꾸고, 머리도 길렀지만 좀처럼 그와 같은 저항감은 자라나지 않아서였을까. 막연하게 음악 쪽 일을 하고 싶었지만 연고가 없던 나는 예의 카페의 구석에서 여전히 익숙지 않은 담배를 피우며 공연을 보았던 감상이랄지, 앨범 리뷰들을 쓰는 것이 고작이었다. 멋있다 생각했던 공연 일은 얻지 못한 채 대신, 당시 유행이었던 싸이월드에서 < 스테이지 매니아 > 랄지 < 탐음매니아 > 같은 전문 리뷰어가 되어있었다. 막상 처음으로 공연 콘솔 박스에 설 기회를 얻었을 땐 더벅했던 머리를 자른 후였다. 이름도 없이 'STAFF'라는 명찰을 단 채. 그것이 당시 내 이름이었다. 내 앞에선 언제나 멋있는 펑크맨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고, 난 그것을 바라보는 입장이었다.






처음에는 충격의 드라마였다. 우리나라 정서상 절대 만들어질 수 없는(...)


2008년 정도였을 것이다. 

군 제대를 하고 다시 홍대로 돌아와 다시금 프리랜서로 이 곳 저곳 공연장을 뛰어다니던 때였다. 벌이야 나쁘지 않았다지만, 내가 원했던, 이 이름의 주인 같은 삶은 아니었다. 그래서 홍대를 잠시 벗어나 전공이었던 행정학에 기대어 공무원 학원으로 피하기도 했던 시기이다. 그 당시 보았던 드라마가 지금도 몇 번이고 돌려보고 있는 영드 < 스킨스 >였다.


1화부터 나오는 주인공 'Sid'의 지질함을 보면서, " 오, 완전 나 같구먼. 얼굴은 잘생겼지만. 저런 지질함은 현실에는 없지. "라는 생각을 했다. 최대한 스포 없이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시드가 살아가는 모습들은 시즌 내내 지질했고, 비참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즌 말미의 시드는 여전히 지질한 모습이었지만 또 다르게, 여러 가지 의미가 되어 나에게 다가왔다. 이 드라마를 본 이후 지금까지 내가 온라인 상에서나 업무상 영문 이름을 'Sid'로 간직하고 있는 이유가 되었다. 멋있지 않은 주인공이었지만 말이다. 같은 이름이었지만, 새로운 기분으로 덧씌웠다. 1년 정도 공무원 공부를 하다 그만둔 계기이기도 하다. 나도 그처럼 어른이 되어가야지 하며.

 





시즌 7까지 통틀어 여주인공을 꼽으라면 역시 cassie 가 아닐까- 아이에서 어른까지를 가장 잘 보여준 캐릭터.


가장 위에 걸어놓은 음악은, 주인공의 기분을 대변하는 OST다. 그 당시의 내 모습과는 크게 상관없었을 수 있는 그저 드라마의 한 씬이고 음악이었지만, 10년이 지나 이미 어른의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어른이 덜 된 35살의 'Sid' 에게는 참 와 닿으면서도 위로가 되는 음악이 되었고, 그렇다.

    

주말을 이용해 다시 한번 정주행을 하며,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다시 돌려보았다. 시즌 1의 1화에 나오는 '시드와 캐시'의 씬이다. 개인적으로는 짧지만 가장 위로받는 장면 중에 하나다. 어쩌면 훅 지나갈 대사지만. 그러고 보니 섹.피의 시드에겐 낸시가, 스킨스의 시드에겐 캐시가 있었구나. 우연인가.



 

Sid : 난 항상 엉망이야.

Cassie : 아냐, 그렇지 않아.  

작가의 이전글 노란 스킨헤드가 울고 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