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였다.
지피지기, 백전불태. 부지피이지기, 일승일부. 부지피, 부지기, 매전필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을 싸워도 위험하지 않다. 적을 모르되 나를 알면 한번 이기고 한번은 진다.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매번 싸움마다 위태하다.
결혼 후 100만 원도 저축하기 빠듯한 현실 앞에 나는 우울에 빠지지 보다 현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로 결심했다. 그동안의 나는 나 자신의 소비 패턴도 몰랐고 지출내역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고 적도 모르니 매번 참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는 방황을 멈추고 적과 나를 알아보기 위해 물음에 답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답을 찾지 못한다면 영원히 내가 원하는 만큼의 저축은 불가능할 것임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수입이 어디로 나가는지 파악하기 위해 가계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지출 내역만을 쭉 적어놓은 가계부였지만 내 돈이 어디에서 새는지 파악하려면 꼭 필요한 일이다. 카드사 웹사이트에서 카드 내역서를 다운로드하고 은행 계좌 출금 내역을 모아 엑셀에 입력했다. 그중에서 매달 규칙적으로 나가는 금액은 고정비로, 식비, 유류비 등은 변동성 지출금액으로 분류하고 보니 큰 비용이 지출되는 곳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계부를 알고 나를 알기 위해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해보았다.
Q1. 왜 난 혼자 살 때처럼 돈을 모을 수 없는 걸까?
A1. 결혼 후 고정비 117만 원이 초과 지출되어 발생하고 있었다.
(1) 거주비용 증가
10만 원도 안되던 주거 비용이 결혼 후 60만 원 이상 발생하고 있었다. 혼자 살 때에는 전세인 원룸 관리비만 내고 살았는데 지금의 아파트는 매달 대출이자가 나가고 원룸보다 2배가 넘는 관리비를 낸다. 각자 따로 살던 두 명의 성인이 모여 한 가족을 이루다 보니 기존에 비하여 주거비가 늘어나는 상황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2) 나의 보험비 증가
결혼 전에는 엄마가 매월 대신 내주시던 보험비용을 다 가져오게 되었다. 월급도 얼마 되지 않으니 보험은 엄마가 내주시겠다고 하셨지만 죄송한 마음에 사양을 하였다. 모른 척 받던 엄마의 은혜와 결별한 결과는 매월 15만 원의 보험금으로 나에게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3) 아이를 위한 보험비 증가
소중한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위한 보험 가입은 필수가 된다. 나의 경우 태아보험과 실비보험 그리고 제대혈 보관비용으로 매달 21만 원이 발생한다. 제대혈은 산모가 신생아를 분만할 때 분리된 탯줄과 태반 속에 존재하는 혈액이다. 제대혈 안에는 조혈모세포, 줄기세포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각종 난치병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고 하여 이를 보관하여 보험을 들게 되었다. 아이를 위한 보험 선택의 범위는 부모가 결정해야 할 몫이다. 금액이 크다고 작다고 아이의 건강을 100% 지킬 수는 없지만 보험으로 인해 마음이 든든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4) 정수기 비용 발생
혼자 살 때는 생수를 사서 먹거나 물을 끓여 마셨는데 결혼 후에는 정수기를 사용하여 매달 16,000원이 발생했다. 식구가 늘어나서 사용하는 물의 양이 늘어나게 되어 이 부분은 자연스레 증가되는 고정비로 자리를 잡았다.
(5) 아이 필수 용품비
아이가 태어나며 내가 보호해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났다. 아이 옷, 신발, 장난감 등을 물려받아서 사용한다 하더라고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우유값, 기저귀 비용 월 20만 원가량 발생한다. 엄마가 되면서 필연적인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
Q2. 450만 원의 60%는 270만 원인데 왜 이전처럼 저축이 안될까?
결혼 후 왜 100만 원밖에 저축을 못하는 것인지가 가장 궁금하였다. 하다못해 한 사람의 월급인 200만원라도 모으면 좋을 텐데 왜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
A2. 고정비로 나가는 금액만으로도 250만 원의 지출 발생
앞의 질문에서 나는 싱글일 때보다 결혼 후 117만 원의 고정비가 추가로 발생한 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추가로 늘어난 금액을 합하여 한 달에 발생하는 고정비는 250만이었다. 여기에 유동적으로 발생하는 생활비 월평균 117만 원을 더하면 총지출 금액은 370만에 달한다. 내가 겨우 저축할 수 있는 금액은 100만 원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Q3. 가장 눈에 띄는 지출비용은 무엇인가
A3. 의외의 복병 병원비(매월 20만 원)와 선물비(20~40만 원)
지출 금액을 파악되고 나니 눈에 띄는 지출 비용이 들어왔다. 우리 부부는 아직 젊은 30대인데 병원비 지출이 20만 원으로 크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예민한 성격의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 울음소리로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출퇴근하면서 피로가 쌓이게 되었다. 여기에 패스트푸드, 치킨, 피자 등을 좋아하는 나쁜 식습관의 더해져 남편은 당뇨병을 얻게 되었다. 남편이 병원을 다녀오면 한 번에 병원비가 20만 원씩 나가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 되었다. 남편이 건강했다면 들어가지 않았을 비용이다 보니 머리가 띵 하고 울렸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보다 남편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어야겠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선물비용이 제법 지출되고 있었다. 명절 선물과 용돈, 생신 용돈, 기타 선물비용 등 양가 어른을 챙기다 보면 생각보다 큰돈이 나가게 된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작은 비용이 모여 큰 지출이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선물비는 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목돈이 불규칙하게 빠져나가 때문에 지출 관리하는 데 있어 어려운 항목이 되곤 한다.
지출내역을 바탕으로 혼자서 질문하고 답을 하다 보니 내가 왜 월 200만 원을 저축할 수 없는지 알게 되었다. 혼자일 때와 둘이 된 지금 상황이 매우 달라진 것이다. 이런 현실을 모른 채 돈이 안 모인다고 한탄만 했다면 속앓이만 했을 것이다. 지출 분석을 통해 드디어 나는 우리 가족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돈을 모으고자 마음먹었다면 먼저 지출을 최대한 분석하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소비하는 지출 내역을 알고 그 지출 내역 하나하나의 쓰임새를 파악하다 보면 내 돈이 어디에서 새는지 구멍이 보이게 된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는 가계 지출을 관리하는 데 있어 기본이 되는 마음 가짐이다. 나를 모른 채 무장적 소비를 줄이는 것은 다이어트에 요요가 오듯이 이전에 소비로 돌아갈 수 있다. 이제 나도 알고 적도 알았으니 총수입 450만 원 중에서 과연 나는 200 만원을 저축할 수 있을까? 다음의 질문이 자연스레 나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