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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작꼬작 Jun 03. 2023

세탁기는 없고요 오븐은 있어요

가전에서 느껴지는 미국과 한국의 차이점들

외국에 살다 보면 작은 것들에서도 차이점이 느껴지게 마련인데, 늘 생활하는 집 공간에서도 그렇다.


나는 한국에서 주택에서 십 년, 아파트에서 십오 년을 살았다. 마당, 다락방, 지하실, 창고, 텃밭이 있던 주택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방 세 개 또는 네 개였던 아파트도 그 안의 가구 배치까지 그릴 수 있을 만큼 뚜렷이 생각난다.


내가 살았던 집들과 잠깐 놀러 갔던 친구들의 자취 원룸을 통틀어도 세탁기가 없는 곳을 겪은 적이 없다. 아마 기숙사 같은 곳에서는 공용세탁기를 쓸 것이고 한국에서도 빨래방을 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나의 짧은 경험으로는 그렇다.


세탁기가 없을 뿐 아니라 세탁기를 놓을 공간 자체가 없는 경우가 종종 있는 미국의 아파트가, 그래서 굉장히 낯설다. 세탁기뿐만 아니다. 그래서 미국과 한국의 가전, 그중에서도 아파트에 기본으로 갖춰져 있는 경우가 많은 가전에서 어떤 다른 점을 느꼈는지 정리해 봤다.


1. 세탁기와 건조기

세탁기와 건조기는 항상 세트로 취급된다. 건조기가 있어서 빨래 건조대를 별도로 마련하거나 공간이 필요하지 않아서 좋다. 사계절 내내 고르게 빨래가 잘 마르는 것도 좋다.


첫 번째 아파트에는 두 층마다 세탁기와 건조기가 각각 여덟 대씩 있어서 다들 그걸 공유하면서 썼다. 한 번 빨래를 할 때 $1.25 정도를, 건조기도 $1.5 정도를 냈다. 30분 동안 빨래가 되기를 기다리고, 다시 건조기로 옮겨서 45분을 기다리면 따끈하고 뽀송해진 옷들을 가지고 집으로 올 수 있다. 한 시간 십 오 분동안은 옆에 있는 발코니의 의자에 눕다시피 앉아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같은 아파트 단지였지만 1B1B부터는 유닛 안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다. 무척 부러웠다.)


두 번째 아파트를 알아볼 때, 세탁기와 건조기기가 아파트 안에 있는 곳에 가고 싶었지만 예산의 압박으로 인해 역시 세탁기와 건조기가 외부에 있는 곳으로 갔다. 그래도 그나마 단지 안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두 대씩 있어서 다행이었다. 완전히 새것이었던 이전 아파트에 비해 오래되고 꾸질(...)했지만 역시 비싸지 않았다.


공용 세탁기와 건조기를 쓰다 보면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시간을 반드시 지켜야 해서, 빨래가 되는 동안에는 도통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점이 있다. 건조가 다 되었는데 가져가지 않으면 다음 사람이 불편할 뿐 아니라 도둑맞을 염려가 있다. 메사누에바처럼 옆에 대기할 공간이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무작정 밖을 헤매다니기에도, 그렇다고 카페에 가기에도, 집에 있기에도 애매한 시간들이었다.


타이밍 싸움도 문제다. 빨랫감이 몰리는 주말에는 세탁기가 다 차버리기 때문에 주말 빨래는 어렵고, 평일 오전을 노려야 한다. 빨랫감을 갖고 일층으로 내려갔는데 자리가 없으면 그걸 다시 들고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항상 자리가 있는지 먼저 확인하고 빨래를 갖고 내려갔었다.


또 문제점은 동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웬만한 세탁기와 건조기는 카드 결제가 되겠지만, 낡은 모델은 그렇지 않아서 꼭 동전을 넣어야 했다. 25센트짜리 쿼터 동전을 마련하려고 은행에 몇 번이나 갔는지 모른다.


위생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혹은 아이가 있다면 그것대로 불편할 수 있다. 아무래도 공용으로 쓰다 보니 별의별 것을 다 빤다고 한다. 우리 아파트는 작은 단지였고 사는 사람들도 비슷해서 큰 문제를 겪은 적은 없지만, 주의해야 하는 곳도 물론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나는 빨래하는 걸 무척 싫어했다. 정확히는 빨래하러 가는 것을 싫어했다. 꼭 세탁기, 건조기 있는 집에 살 돈이 없어서 이렇게 고생한다는 것을 빨래하러 갈 때마다 상기하게 되는 것 같아서.

오 년 동안 이렇게 짠내 나는 빨래 생활을 거쳐 지금은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왔는데, 이 가전들이 내 행복 지수를 아주 많이 높여주고 있다.


세탁기가 있는 경우에는 집 안에 런드리룸이라는 공간이 있다. 런드리룸이 좁으면 세탁기 위에 건조기를 쌓아 올리는 형태를 쓰고, 공간이 좀 있으면 양옆으로 나란히 놓는다. 더 큰 주택에는 아예 별도로 작은 세탁용 싱크대가 있거나 빨래를 개는 공간이 있기도 하다. 한국의 아파트에서는 주로 주방 옆 다용도실이나 베란다처럼 통풍이 되는 공간에 세탁기 자리가 있었고 빨래를 널어서 말렸던 것과 조금 달리, 막힌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2. 식기세척기

미국에서 한국보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전 중 하나는 식기세척기일 것이다. 역시 첫 번째, 두 번째 아파트에는 없었고 지금은 있다.

두 번째 아파트는 재미있었던 점이, 누가 봐도 식기세척기 자리인 곳이 뚫려있는데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설치할 목적이었던 것인지, 있다가 없어졌는지는 모를 일이다. (우리는 거기에 쓰레기통을 놓았다.)


물이 들어오고 나가기 편하도록 싱크대 옆에 자리한 식기세척기. 그릇을 애벌 세척한 후 잘 넣고 버튼만 눌러두면, 집에 오면 그릇이 싹 씻겨있다.

세탁기, 건조기와 마찬가지로 그거 존재함으로 인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가전이다.


미국에서 처음 식기세척기의 특허가 출원된 것은 1850년이라고 한다. 실제로 가정에서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라고 하니, 백 이십 년에 걸쳐 진화한 셈이다. 2017년 조사에 따르면 거의 70퍼센트의 미국 가정에 식기세척기가 보급되어 있다고.


확실히 접시에 먹는 식사를 했을 때 식기세척기에 넣기가 편하고 더 많이 들어간다. 미국식 구조여서 그런 것인지, 한국에서 만든 식기세척기는 선반 구성이 다른지 궁금하기도 하다.


3. 전자레인지

전자레인지는 위치가 좀 특이해서 기억에 남는다. 처음 '공중에 있는' 전자레인지를 봤을 때 왠지 모를 불안감 (떨어지지 않나?)과 공간을 유용하게 쓸 수 있다,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내가 봤던 많은 곳들이 식기세척기 있으면 전자레인지도 함께 갖춰져 있었다. '풀옵션' 주방 버전이라고나 할까.


한국에서 풀옵션 원룸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절대다수가 전자레인지를 개인적으로 갖고 있으면서 이사 갈 때 가져가야 할 것 같다. 그래서 고정되어 있는 전자레인지가 신기했다.


전자레인지는 결혼하고 나서는 잘 쓰지 않았었는데, 이사 선물로 남편의 튜터님께서 집에 남는 하나를 주셨다. 빨갛고 예뻤던 그 전자레인지를 쓴 후 그 편리함과 매력을 알아버려서 지금은 없어서는 안 될 가전이 되었다. 이사 올 때는 남편의 연구실에 기부하고 왔다. 부디 잘 쓰이고 있기를!


전자레인지는 다행히 튼튼하게 고정되어 있어서 (ㅋㅋ) 떨어질 염려 없이 쓰고 있다.


4. 코일 레인지(Coil Range)

이게 또 매우 낯설었던 물건인데, 코일로 된 레인지로 요리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봤던 가스레인지 혹은 인덕션과 다르다. 가스레인지는 불을 켜면 타다닥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나오는 그것, 외출할 때 밸브를 잘 잠가야 하고 검침원이 이따금 방문해 가스가 새지 않는지 검사하는 그것이다. 인덕션은 평평하고 켜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 하이라이터가 있고 (과거에는) 인덕션용 냄비인지 잘 확인해서 써야 했던 그것.


이렇게 두 가지가 익숙한데, 미국에서 써 본 세 곳의 스토브는 모두 코일로 되어있었다.


여느 스토브처럼 쓰고 싶은 곳 스위치를 켜면 되는데, 꼭 모기향처럼 생긴 코일이 붉게 달아오르면서 열이 전해진다. 코일은 뺏다 꼈다 할 수 있어서 청소할 때는 빼서 닦을 수 있다.

또 코일 밑에는 드리핑 팬 (dripping pan)이 있어서 찌꺼기 같은 것이 떨어지는 것을 막아준다. 드리핑팬에는 코일을 스토브와 연결할 수 있도록 구멍이 뚫려있다. 오염되면 드리핑팬만 따로 사다가 바꿀 수 있다.

코일 레인지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렇게 생겼다.


스토브마다 크기가 제각각이지만 보통 큰 코일과 작은 코일이 있다. 그런데 이 '제각각'인 게 문제인 것이, 드리핑팬이 더러워졌다 싶어서 바꾸려고 사 오면 스토브, 드리핑팬, 코일의 삼 박자가 애매하게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다. 드리핑팬에는 코일을 잘 고정하라고 가장자리에 작은 홈이 나 있는데, 이게 맞지 않아서 코일이나 팬이 들뜨면 덜그럭거리는 채로 써야 한다.


가스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좋은데, 청소가 좀 까다롭고 인덕션보다 에너지 효율은 좋지 않다고 한다.


5. 오븐은 필수

코일 레인지 밑에는 항상 오븐이 있었다. 오븐은 최소한의 가전만 있었던 전 아파트에도 있었을 만큼 미국에서 흔한 가전이다. 오븐을 쓰는 요리가 많아서일 것이다.


코비드 판데믹이 한창일 때 오븐을 정말 유용하게 썼었는데 베이킹에 취미를 붙여서 그렇다. 오븐으로 머핀부터 시작해 케이크까지 만들었었는데, 제빵보다는 제과에만 취미가 있어서 설탕을 무지막지하게 먹다 보니 살이 너무 쪄버렸다.

 

그 외에도 오븐으로는 근사한 요리를 편하게 만들 수 있다. 추수감사절에는 터키를 구워 먹어보기도 하고, 크리스마스나 결혼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에는 꼭 오븐 요리를 한다. 커다란 햄이나 로스트용 고기를 구워 먹는 식이다. 평소에는 냉동 피자 데워먹기, 야채 구워 먹기 등등에 쓰고 있다.

2020년 크리스마스 디너. 오븐으로 포크립과 케이크를 직접 구워 만들었다.  

가전에서도 이런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공간 자체에서도 차이점들이 있다.

다음 글에서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카펫 바닥과 어두운 조명, 데크 공간 등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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