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포르투갈의 기억
리스본의 사운드 트랙
우울한 행복
영혼의 정화
며칠 전 포르투갈에 사는 한 남자가 코로나 때문에 비행기 운항이 멈추자, 작은 배로 대서양을 횡단해 아르헨티나에 있는 부모님을 만났다는 기사를 봤다. 바이러스도 바다도 막지 못한 인간의 의지와 사랑에 뭉클했다. 바다 앞에 서면 기쁨과 환희보다 왠지 모를 그리움과 슬픔이 몰려온다. 또, 광대한 바다 앞에 서면 감탄을 넘어서 모든 것을 들킨 사람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우울이라고 부르기는 뭐한 그 슬픔의 카타르시스 때문에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바다를 그리워하고 만나러 가는 게 아닐까.
포르투갈은 대서양을 접하는 작은 나라이기에 그들의 삶은 바다와 뗄 수가 없다. 오래전이지만 처음 포르투갈에 갔을 때 남미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다른 유럽과는 또 다른 색깔의 정겨움과 포근함을 느꼈다. 특히 유럽 대륙의 서쪽 땅끝마을인 ‘까보 다 로까(Cabo da Roca)’에서 바라본 대서양의 감동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너무 감동해서 돈을 내고 방문 증명서까지 받았었는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역시 소중한 추억은 물건보다 기억으로 남는 것이었던가... 아무튼, 그런 바다를 바라보고 나서 그곳의 사람들이 몹시 부러웠고, 그곳의 삶이 한없이 궁금해졌다.
그런 바다를 바라보며 수많은 감정과 마주하는 바닷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묻어있는 음악이 있다. 바로 '바닷사람들을 위한 레퀴엠'이라고도 부르는 파두(Fado)이다. 이 단어는 라틴어 파툼(Fatum)에 나와 숙명, 운명을 뜻한다. 보통은 초인간적인 힘에 의해 정해 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하지만, 운명의 주인이 자신임을 강조하는 수많은 어록처럼, 이들은 운명의 노래 파두를 통해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 나갔다. 포르투갈은 역사의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이슬람과 싸우다가 스페인 지배를 받았고, 영국과 동맹을 맺었다가 미움을 사서 19세기 프랑스의 침공을 받았다. 그때 포르투갈 왕실은 리스본을 버리고 식민 국가였던 브라질로 피했다. 그런 배경 때문에 파두가 브라질의 인기 음악인 아프로 브라질리언(Afro-Brazilian)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는 썰이 있다. 물론 여러 기원이 있지만, 매우 납득이 가는 썰이다.
아무튼, 1830년부터 리스본에서 부르기 시작한 파두는 거리 음악으로 사랑과 갈망, 그리움뿐만 아니라, 바다로 둘러싸인 리스본의 지형, 식민 시대의 내용 등 그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음악은 포르투갈 기타가 반주하는데, 류트(Lute)라는 악기가 기원인데 비파처럼 통통하게 생겼다. 높고 고운 소리인데 여운이 짧아서 빠른 템포 연주에 그만이다. 그 외 비올라(현지에서 클래식 기타를 뜻하는 단어)와 베이스 비올라로 구성이 된다. 이 악기들은 가수의 목소리를 인도하다가 쫓아가기를 반복하며 최고의 앙상블을 만들어 낸다.
리스본의 첫 번째 가수는 매춘부였던 마리아 세베라 (Maria Severa)였다. 그러나 파두를 세계적으로 알린 사람은 아말리아 호드리게스(Amalia Rodrigues)이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마치 부드러운 붓질을 하는 듯한 목소리로 가사의 시적인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는 파두 계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녀 이후로 파두 가수들은 주로 검은 드레스를 입었는데, 이것은 노래하며 모든 감정을 쏟아낸 후 발가벗겨진 것 같은 그들을 보호해주는 막과도 같았다. 그녀는 1999년 세상을 떠났을 때 국장이 치러졌을 정도로 포르투갈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사랑하는 예술가이다. 그녀의 죽음 이후에 수많은 파두 가수들이 나타났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제2의 아말리아’라고 불리는 마리자 레이스 누네스(Mariza Reis Nunes)이다.
그녀는 1973년 아프리카 대륙 남동부, 모잠비크의 수도인 마푸투에서 포르투갈 출신 아버지와 모잠비크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세 살이 되어 가족과 아버지의 고향 포르투갈로 온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음악을 좋아한 그녀는 열세 살에 소울과 펑크에 빠졌지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음악은 그녀의 뿌리인 아프리카 음악과 재즈라고 고백하곤 했다. 아버지는 그녀가 포르투갈 전통 음악을 시작해서 그 사회에서 더 많이 인정받길 바라며 파두를 권했다. 그녀의 본격적인 음악 여정은 1999년 파두의 거장 아말리아 호드리게스의 죽음 이후 새로운 파두 붐을 타고 시작되었다. 당시 파두 앨범은 4천 장만 팔려도 큰 성공이었는데, 2001년 그녀가 처음으로 낸 앨범인 <내 안의 파두(Fado em mim)>는 10만 장 이상 팔렸다. 그렇게 2002년 월드컵 한국 vs. 포르투갈 전에서 포르투갈 국가를 부를 정도로 국민 가수가 되었다. 이후, 2005년 <Transparente> 앨범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또, 2007년 스페인의 거장 카를로스 사우라(Carlos Saura) 감독의 영화 <파두(fados)>에 참여해서 플라멩코 가수인 미겔 포베다(Miguel Poveda)와 함께 <Meu fado meu>를 불렀다. 그리고 전 세계 유수 홀에서 수많은 공연을 하며 새로운 파두의 여왕,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El-HznEemI
나는 인생 첫 인형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첫 파두는 기억한다.
나는 카를로스 사우라의 영화 <파두>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반하고 말았다. 파두의 매력을 한 번에 느끼고 싶다면 이 영화를 꼭 보시길. 무용과 노래의 어우름, 그 안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소리와 몸짓을 보고 있노라면 파두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짧은 금발 머리에 하이패션을 소화하는 마리자의 우아한 무대는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하다. 그녀는 수십 년간 전통적인 파두계를 정의한 정적인 슬픔,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치장과는 분명히 차별된 가수였다. 그러면서도 파두의 정서인 울음과 기쁨, 죽음과 열정, 사랑 등의 모든 감정을 깊게 표현하는 힘이 있었다.
그녀의 곡이 다 주옥같지만, 요즘은 <투명한(Transparente)>을 자주 듣는다. 브라질에서 녹음이 된 동명의 이 음반은 전통적인 형식을 깨고 포르투갈 기타뿐만 아니라 플롯과 첼로, 아코디언도 등장한다. 특히 이 곡은 아프리카인인 외할머니에 대한 찬가를 담은 내용으로 파두의 고정관념을 깨는 밝은 에너지가 가득하다.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 앞에 서면 한없이 투명해진다. 마음이 환히 비치고 생각이 분명해진다. 하지만, 요즘처럼 가리는 게 미덕인 시대는 얼굴을 가려서인지 마음을 내보이는 게 더 망설여진다. 음악을 듣다 보면 이해하고 이해받는 찰나를 경험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투명해진다. 이 음악을 듣고 기꺼이, 잠시라도 투명해질 수 있길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CDzKlP6SewE
https://www.youtube.com/watch?v=N3W_vVMUroI&t=1418s
[보너스]
좀 더 다채롭고 실험적인 파두를 원한다면, 파두 밴드인 마드레데우스(Madredeus)도 추천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lJPh_6tXJt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