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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슈카 Feb 23. 2021

어머. 결혼을 하다니.

오스트리아에 사는 독일남자와 한국여자가 독일에서 결혼하기


"네가 결혼을 했다니 믿기지 않는다." - "응 나도 그래."

친한 친구들 중에서는 정말로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결혼을 했다.


그러니까,, 관청에 제출한 결혼신청 서류가 뮌헨 고등법원에 제출된지 딱 2주만에 지역 관청 직원 - Mr. Strobl로부터 화요일에 전화를 받아 드디어 결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이미 다음날인 수요일 독일로 가는 기차를 예약하고 여행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그야말로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화요일 오전 전화를 받은 직후, 곧장 부모님과 여동생과 통화하여 금요일로 결혼 날짜를 픽스하고,  다시 Mr. Strobl에 전화해 원하는 결혼일자를 알려주고 오전 미팅과 세리모니 시간을 확정했다.

정확한 날짜를 기다리고 있던 플로리스트, 베이커리, 레스토랑 등등에 전화하여 최종 일정을 알리고, 음식과 치즈 등의 주문을 마치고, 하이파이브! 키스키스! 드디어 결혼을 한다는 것에 대한 기쁨과 현실감에 한층 더 가까워졌다. 이미 독일 부모님 댁으로 배송시켜놓은 와인과 Flo의 결혼반지도 도착해있었으니, 대략적으로 사전 준비는 다 된거...맞지? 

아 그리고, 어쩌면 이 결혼의 드라이브를 걸어준 오스트리아 체류허가 - Aufenthaltskarte 신청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다 준비해서 가져가야 하지. 결혼식 날 혼인확인서를 받자마자 한장 쓱- Aufenthaltskarte신청서류에 끼워넣고 바로 우체국으로 달려가 보내버릴테다!


임신테스트기 처럼 한줄만 나와야 음성!

독일에서 결혼을 하기 위해 빈에서 출발 당일 오전, Corona Antigen 테스트 자격이 있는 약사 친구가 직접 집으로 와서 검사를 해준 덕에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서 negative 결과 검사를 무사히 받게 됐다. 


코로나의 여파로 기차는 한산했고, 늘 가슴조리며 연결편을 놓칠까 시간을 거듭 확인하는 일도 발생하지 않을만큼 도이치반은 별로 바쁘지 않았다. 심지어 오스트리아-독일 간 국경을 넘어서도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았다. 쉥겐 조약에 따라 입국 후 체류 90일이 되는 날이 2월1일이었기에, 날짜가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혹여라도 국경에서 검사 시 꼬투리를 잡히면 뭐라뭐라 설명하고 이것저것 보여줄 서류를 다 준비해갔는데, 아쉽게 됐군.






결혼 전날은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결혼식에 입을 드레스를 보여주고 어떤 신발을 신는게 나을지 물어보는 것 정도, 그리고 결혼식 후 집에서 가질 식사 사전 세팅 정도, 외에는 나는 의외로 전혀 바쁘지 않았다. 다만 다음날 관청 직원과의 미팅에서 쫄지 않도록 혼인신고 서류들과 독일 결혼식 용어들를 다시 들여다보며 문답연습을 하는 것 뿐.


독일의 전통인지 바이얀의 것인지 헷갈리지만, 어머니가 전통적으로 결혼식에서 신부는 반드시(?) 세가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얘기하시길: Blue, Old & New. 모르고 있었지만 가져온 목걸이 팬던트에 blue가 있고, 이날을 위해 드레스를 새로 샀으니 물론 new도 갖고 있으며, 여동생의 반지를 빌려 결혼식에서 끼울 예정이므로 old까지 모두 갖추었구나! 




오전 9시, Mr. Strobl과 만나 우리가 제출했던 서류의 내용과, 결혼 후 바뀔 내 성에 대한 독일의 법과 한국의 법적 차이,, 그에 따라 향후 내 성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긴- 설명, 무엇보다 이 외국여성이 지금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것인지, 내 자유의지로 이 결혼을 하기로 한 것에 대해 진짜 동의한 것이 맞는지를 거듭확인하는 내용의 미팅을 가졌다. 그리고 우리가 사전에 전달한 세리모니 때 나올 음악도 다시 들어보고, 세리모니 진행에 대한 안내, 참석자 등등에 대해 최종 확인을 마쳤다.

사실 현재 독일은 한층 강화된 락다운이 유지되고 있는 관계로 오직 이 결혼의 증인 1명만 참석할 수 있는 원칙이 적용되어야 했다. 따라서 우리는 그렇다면 어머니를 증인으로 지정해서 최소한 어머니만이라도 함께 자리할 수 있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으나, 사실 어머니-아버지 같은 집에서 락다운하시며 거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계시는데 어머니만 참석해야한다는건 너무 말이 안되지 않니- 이런 논리로 아버지가 사전에 직원과 딜을 보셔서 부모님 두분 모두 참석하시는 것으로 합의가 되었다. 그렇다면 next, 또한 같은 집 윗층에 사는 여동생 가족이었다. 같은 논리로 한 집에 살면서 부모님이 거주하시는 아랫층을 오가는 마당에 그녀와 1살짜리 애기는 못들어오고 밖에서 유리창너머로 봐야한다는 것도 좀 말이 안되잖나- 그리고 여기에 끼워서, 같은 집에 사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가족이니까 막내동생까지 같이 들어와서 마스크 쓰고 얌전히 자리만 지킬 수 있게 해줄 순 없나용----? 우리 결혼 준비과정부터 매우 적극적이고 협조적으로 도와주신 Mr. Strobl은 당연히 이미 마음속에 우리가족모두가 참석하에 식을 진행할 것으로 결정을 하고 있었다. Super!!


소시지를 익히는 방법부터 먹는 법, 찍어먹어야 하는 머스타드, 올바른 화이트비어 글라스까지.. 지켜야 할 엄격한 규칙이 매우 많다!

결혼 전 프롤로그 파티; 바이얀인의 결혼답게 Weißwurst mit Brezeln & Weißbier (화이트소세지와 프레첼, 화이트비어),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Wiener Wurst(프랑크푸르트 소세지)까지 동네 butcher에 주문해둠! 사실 예식이 12:30에 잡혀있으니 식 후 이렇게 저렇게 시간을 보내고 난뒤, 타운에 가서 음식을 픽업해와 점심을 먹기시작할 시간을 생각해보면 분명 모두다 굉장히 굶주려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잔칫날 배가 고파 굶주려 있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나와 Flo에게 바이얀 브런치를 세팅하는 것 또한 (모두의 좋은 무드를 위해) 매우 중요했다. 하여, Mr. Strobl과의 미팅 후 소세지와 프레첼을 오는 길에 픽업해, 가족들과 함께 든든히 배를 채우고 이제 결혼식 모드로 준비!



한 겨울치고 더는 바랄게 없을 듯한 정말 좋았던 날씨!

원하지 않는 겨울에 하는 결혼이지만, 날씨만큼은 감격스럽게도 파-란 하늘과 따스한 겨울 햇살이 비추는 완벽에 가까웠다. 

가족들과 함께 시청에 가서 함께 입장 후 자리에 앉아 Mr. Strobl의 긴-- 스피치(주례사라고도 할 수 있겠지;)를 듣고 있는데 순간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사진촬영, 반지, 부케 등등 도우미 역할을 맡으신 아버지가 어쩌면 가장 정신이 없으셨을터, 그만 차에다 내 부케를 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손이 허전한 느낌이 든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은 나는 조용히 Flo에 귀에다 대고 "내 부케 차에다 두고 내렸어" 라고 고백했다ㅋ. 예쁜 라넌큘러스 부케는 식 후 사진촬영에 무사히 내게 전달되었으니 everything' alright.

자리에 앉아 스피치를 경청하고 있던 우리는 앞으로 불려나갔고, Mr. Strobl은 예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Flo와 나 각각에게 던졌다. 당연히 우리는 "Ja, ich will!" 이라 대답했고 설레임과 행복감에 서로를 그저 바라보고 "다음 사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직원께서 "보통 이런땐 영화 속 커플들은 키스를 합니다." 라고 친절히 사인을 주셔서 연습한 것보단 좀 못했지만ㅋ 기쁨의 키스도 무사히 나누었다. 그리고 나서 반지교환을 한 후에는 시키지도 않은 키스를 또 한번 나누고, 우리의 혼인 사실에 대해 사인을 하고 부모님도 각각 증인으로서 사인을 하신 후, 우리는 정식 부부로 선포되었습니다----!!!

부모님과 감격의 포옹! 아버지가 많이 우셨다...ㅠ

부모님과 나, Flo 모두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진짜 결혼을 했다는 것에 대한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감격, 그리고 그 진지함의 무게가 부부선언과 동식에 훅-하고 밀려왔다. 또다른 의미의 감격이 부모님 두분에게도 분명 전해졌을테고 그렇게 부모님과의 뜨거운 포옹을 오-래도록 나눈 후, 여동생과 남동생과도 함께 기쁨과 축하의 포옹을 나누었다. 


한국에서, 혹은 나의 부모님이 결혼에 참석하셨다면 어쩌면 난 한국의 많은 여성들의 결혼식장에서 처럼 눈물을 펑펑 흘렸을지도 모르겠다. 다들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제각각이겠지만, 아마도 결혼을 함으로써 다른 가족의 일원이 된다는 생각을 어쩔수 없이 갖게 될테고, 그렇게 엄마를 남겨두고 나만의 가족을 이룬게 된다는 뭐 그런 생각 때문에, 그니까 요약하자면 엄마에게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에 눈물을 수도꼭지같이 흘렸을 거라 예상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어쩌면 나는 우리의 결혼식에서 그와 내가 대부분 롱디를 하면서도 함께해온 지난 5년여의 시간이 결실을 맺어 이제 부부의 관계가 된 것, 그리고 결혼이라는 그 거룩하고 고귀한 책임감을 짊어지게 된 것에 대한 감격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부모-자식 관계에서 비롯된 미안함, 허전함, 벅차오르는 복잡한 감정이 아닌, 나 성인 한사람으로서 인생의 반려자와 연합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 그리고 또다른 가족의 구성원이 되는 것에 대한 완전한 기쁨이랄까. 이런 감정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고, 그외에는 많은 축하를 받는 것 뿐이었다. 물론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다른 감정과 할 말이 또 많이 있겠지만, 곱씹어볼수록 눈물 범벅과 복잡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결혼식이 아니어서 좋았고 어떤 면에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든다.



우리모두가 사랑해 마지 않는 Italian cuisine의 Antipasti!

Flo와 내가 정말 잘한 것중 하나는 아무도 배고프지 않은 건 당연하고, 매우 탁월한 선택의 메뉴의 선택과 다양하게 즐길 각각의 코스들을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맛과 품질을 준수히 지킨 음식과 드링크를 준비했다는 것일테다. 몇병이고 당연히 마셔줘야 할 샴페인- Aperitivo 에서 시작해 나에겐 메인보다 더좋은 Antipasti. 사실 안티파스티를 두접시나 먹고 난 이미 너무 배가불러 매번 다른 음식을 먹어야 할때마다 긴 break를 가져야했다는...

Vegitarian을 지향하는 나, Flo, 그리고 남동생과, 고기매니아인 Andrej 모두가 섭섭하지 않도록 Primi와 Secondi 음식을 같이 놓고 취향대로 먹을 수 있도록 한 것도 좋았다. 그리고 두가지 메뉴 모두와 잘 맞는 레드와인으로 음료 교체!

다음으로 Flo가 야심차게 준비한 FORMAGGI! 진-하게 숙성된 냄새가 풀풀나고 찐득-하게 내용물이 좀 흘러내려줘야 치즈인법. 프랑스에서도 엄격하게 관리되는 지역의 치즈 4종류와 비슷한 각각의 두종류의 치즈와 어울리는 같은 지역에서 나오는 화이트와인, 그리고 다시 샴페인 오픈!

대낮에 시작된 우리의 점심식사는 땅거미가 지고 바깥이 깜깜해질 때야 이렇게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부풀어오른 배를 계속 쓰다듬었다.


휴가를 쓸 수 없어 안타깝게도 예식에 함께하지 못했던 여동생 남편 Andrej도 퇴근 후 조인했고, 마지막 DOLCE + CAFFE. 드디어 주문한 케잌을 보게 되는건가! 여동생이 우리에게 잠시 방에 가 있으라고 했고, 들어오라는 사인에 어두컴컴해진 winter garden을 조심조심 들어가니, Surprise! 

우리의 사랑처럼 타오르는 불꽃과 사랑스러운 케잌, Wien에서 온 커플에 걸맞는 Sachertorte (자허토르테)!, 그리고 엄선된 음악이 흐르며 우리의 결혼을 마지막으로 다시 함께 축하하고 기뻐했다. 약식 결혼이었지만 트레디션은 꼭 지켜야 하기에 두손 함께 모아 케잌커팅에 한입씩 서로에게 먹어주는 순서까지 진행 완료!


이렇게 결혼한 커플이 되었고, 긴-행복한 하루가 이렇게 갔습니다. 내일은 늦게까지 게으름을 좀 부려야겠습니다.

여동생 없었으면 허전, 섭섭했을 가족파티. special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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