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X에게 | 로이킴 <문득>

노래가사 딴지걸기 1

by 세모


“너는 꼭 너같은 사람을 만나봐“


다섯 번째 헤어질 때 그는 내게 지친 듯이 말했고 나는 그 말을 비웃었다. ‘너같은 사람’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거니와 결국에는 그가 내게 다시 돌아올거라는 이유 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서로를 향한 무수한 말들이 어떤 온도로 오고가더라도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을 때쯤, 우리는 완벽히 헤어졌다. 대략 일곱 번째 이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의 이별은 상당히 건조하고 심플했다. 십여년의 시간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더 보기는 힘들겠다. 잘 지내“라는 말로 간단하게 끝이 났다. 내가 보고 자란 이별은 그런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본 이별은 대개 절절하고 감정의 후폭풍이 몰아치는 식이었다. 하물며 친구들의 연애 역시 다사다난해보였다. 내게 이별은 자고로 그런 것이었다. 울며불며 어쩔 줄 몰라하며 감정의 소용돌이를 끌어안는, 터지기 직전의 콜라병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때문에 헤어졌다는 슬픔보다 이별이 와닿지 않는다는 의아함을 가진 채로 한참을 보냈다. 그리고 바쁜 일상에서 그 의아함까지는 미처 수습하지 못한 채 ‘내가 그에게 그다지 진심이 아니었나보다’고 결론지었다. 성급한 결론이었다. 그 성급함이 쌓은 모래성은 어느 날 퇴근길의 플레이리스트 앞에서 우르르 무너졌다.






우리 다시 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다 행복하자.

살아가다 서로가 생각나도 그냥 피식 웃고 말자


고작 가사 두 문장만 또렷이 들렸을 뿐인데, 많은 날들이 한꺼번에 물밀 듯이 떠올랐다. 그리고 살아가다 서로가 생각나도 피식 웃고 넘어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에 하나 내가 그를 떠올리며 피식 웃는다면, 그건 아마 이유도 모른 채 헤어진 것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는 것 뿐일거라고 확신했다. 가사가 한번 들리기 시작하자 그 다음도 쉽게 넘어갈 수가 없었다.




네가 문득 떠오르는 날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아서,

결국 잘 감춰뒀던 너와의 추억을 혼자 몰래 꺼내보곤 해


교복가게에서 부모님 눈치를 보며 치마를 조금이라도 무릎 위로 맞춰 사려고 아등바등하던 때부터 입시의 터널을 지나 세상의 쓴맛을 처음 맛본 이십대 중반 무렵까지, 우리는 찻잔 속의 태풍같은 시절을 함께 했다. 한해가 지날수록 점점 체면이라는 것을 가진 어른이 되는 척을 하다가도 서로에게 만큼은 기꺼이 웃긴 사람이 되어주었다. ”여기서 집까지 뛰어가면 몇 초가 걸릴 것 같냐“는 쓸모없는 소리를 하고 ”학교를 자퇴하고 캠핑카를 사겠다“는 객기를 부려도 그저 재미있었다.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건 산책이었다. 각자 다른 학교에 진학했지만 수업을 마치고 별 일이 없으면 상대의 학교쪽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집까지 한참을 걸었다. 시덥잖은 농담, 미래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가 오가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만큼 마음도 커졌다.


주변으로부터의 기대와 관심을 과식하며 자랐던 나에게, 그는 그 체증을 잊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힘에 부치는 일이 있을때마다 그에게 내 감정을 배설했다. 짜증이 나는 날은 짜증을 내고, 기분이 좋은 날은 한껏 들뜬 채로 대했다. 바쁘면 바쁜대로 그를 가장 나중으로 미뤄두었고, 한가할 때는 그를 제일 먼저 떠올렸다. 그는 한결같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책상 위 달력 쯤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단지 그가 나를 더 좋아한다는 이유로 내 마음대로 헤어졌다 만나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나의 취업 준비와 그의 군 복무가 겹치던 때, 처음으로 그가 나에게 ”너는 너같은 사람을 만나라“고 했다. 나의 우선순위에 본인이 없는 것을 더는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1순위까지는 바란 적도 없지만, 10등 안에도 들 수 없는 게 무슨 연애냐며, 처음으로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전적으로 맞다는 걸 인정하는 게 헤어지는 것보다 더 싫고 분했다. 그래서 ”나는 그런 적이 없다“며 우겼고 결국 차였다. ”너같은 사람을 꼭 만나라“는 그의 말이 마치 저주처럼 느껴져 불쑥 화가 날 때가 많았지만, 취업과 시험준비를 비롯한 갖가지 일상이 더 버거웠기에 그 말을 곱씹는 것은 또 미뤄두었다.


시간이 지나 나는 사회 초년생이 되었고 그 역시 제대했다. 몸에 익은 습관은 무서웠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가하거나 힘들 때 그가 제일 먼저 생각났다. 결국 정확히 기억하는 그 전화번호로 다시 연락을 했고 재회했으며 (예상할 수 있듯이) 다시 이별했다.


마지막 이별은 그 전의 이별들과는 다르게 차분했다. 서로에게 더 이상 화가 나거나 감정이 쓰이는 일이 적어질 때 쯤 정말로 헤어졌다. 이전처럼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순간 순간 ‘이만하면 되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와의 시간에 대해 심플한 이별을 했고 ‘내가 그에게 썩 진심은 아니었나보다’고 자평하고 싶었지만 사실은 다 틀렸다. 노래 한 곡에 이렇게 긴 반성문을 쓰고 있자니 나의 성급한 결론이 얼마나 삐뚤어진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결과인지를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이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내 일상의 일부를 기꺼이 내어주기로 약속하고, 시간과 마음을 나누어 돌보는 일이다. 함께 한 시간이 쌓일수록 관계의 무게도, 진심의 깊이도 더해진다. 묵직해진 관계에는 그만한 책임도 뒤따르는 법이다. 그가 말한 ‘너같은 사람’이 무슨 의미인지도 안다. 다만 모른 척 하고 싶었다. 나는 상대의 마음이 내 마음보다 크다고 판단하자 그 우위를 점하고자 했다. 무례한 갑질이었다.

나는 기꺼이 그를 위해 시간을 할애할 마음을 가졌는지, 이런 저런 이유로 그를 일상의 끄트머리로 밀어내는 일은 없는지를 생각해야했다. 그가 나에게 소중했던 만큼 진심을 다했어야했다. 그를 언제나 내 책상 위에 있을 물건처럼 취급하면 안되는 거였다. 나는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고 뒤늦은 깨달음 때문에 오래동안 후회했다. 특히나 영리한 알고리즘 때문에 플레이리스트에서 ‘OO님이 많이 들은 곡’으로 저 노래가 자동재생될 때마다 그가 생각났다.




최고의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고 또 설레게 살자


그와의 이별 후로 여러 번의 소개팅을 했고 짧게는 한두 번, 길게는 몇 달, 몇 년을 만나는 사람이 생겼다. 누구를 만나든 여전히 그가 종종 생각난다. 주로 길에서 교복을 입고 걸어가는 어린 커플을 볼 때, 같이 재밌게 본 영화가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생각이 난다. "너는 꼭 너같은 사람을 만나"라는 그 말이 마치 저주처럼 남아있는 탓에, 그와의 연애를 오답노트삼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가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기가 막힐지도 모른다. 내 일상에 상대가 들어올 수 있도록 틈을 남겨두고, 나의 뾰족함이 상대를 찌르기 않도록 조심한다. 어쩌다가 미쳐 못버린 버릇들이 불쑥 나올 때면, 내 말이 맞다고 우기기 보단 빨리 인정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와의 시간을 지나보내고 나서야, 나는 조금 더 어른이 되었지만 가사처럼 정작 우리는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대신 내가 달라진 만큼 그도 어디선가 전보다 조금은 편안한 사랑을 하길 바란다. 그와의 일들을 떠올렸을 때 더 이상 화가 나지 않고 나서야, 오롯이 그의 편안을 빌어줄 수 있게 되어서야, 나는 진짜로 이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문득 그가 생각났을 때 대충 웃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서로에게 최고의 꿈은 아니었겠으나 각자가 또 설레게 살길 바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