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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희 Oct 01. 2019

직장을 떠나는 자와 남는 자

남는 자들의 기쁨과 슬픔

첫 회사에서 나는 특별한 팀에 소속되었다. IT 업종이었고 기본적으로 개발을 하지만 서버도 같이 관리하는 팀이었다. 작은 회사이다 보니 별도 서버 관리자가 없이 동시에 담당했다. 팀에는 팀장 혼자 있었고 내가 신입 사원으로 입사한 것이다. 신입 사원이 뭘 얼마나 알겠나. 그저 배우고 따라다니고 하며 익히는 수밖에 없었다. 팀장도 팀원은 처음이라 서로 첫 경험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부족한 게 있으면 항상 친절하게 열심히 가르쳐줬다. 


그리고 6개월쯤 지났을 때 회사가 어려워져 팀장이 퇴사를 결정했다. 신입 사원인 내가 개발과 서버 관리를 모두 도맡아야 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된 거다. 회사가 어려워서 인력 충원은 계획에 없었고 입사 1년도 안된 신입 사원에게 모든 걸 떠맡기는 결정이 내려졌다. 인수인계를 열심히 받았지만 완벽한 인수인계란 있을 수 없다. 그게 신입사원에게 라면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팀장이 떠나던 날. 그래도 제법 적지 않은 시간 내 사수였던 그를 버스 타는 곳까지 배웅해 줬다.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를 하고 회사로 돌아오는데 세상이 꺼지는 기분이었다. 정든 사람은 떠나고 과중한 업무는 떠안고 앞날이 막막했다.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번 달에 총 두 명의 퇴사가 결정되었다. 그중에는 떠나면 안 되는(?) 사람도 있어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떠나는 사람을 막을 수 없다. 이런저런 조건으로 잠시 잡을 수는 있겠지만 한번 마음 떠난 사람은 또 떠나려고 할 확률이 높다. 어차피 영원한 건 없다. 누구와도 영원히 함께 할 수는 없다. 


퇴사자가 생기면 조직의 힘과 무서움을 느끼게 된다. 

첫째, 조직에서 아무리 중요한 사람이 빠진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조직은 돌아간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돌아간다. 문제가 발생하면 팀원끼리 아는 것을 쥐어짜서 돕기도 하고 퇴사자에게 연락을 해서라도 해결한다. 난 퇴사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전 회사에서 문의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 단지 그렇게 하기까지 기존 인원들의 스트레스와 업무의 부담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조직원들은 조직을 돌아가게 만든다. 

둘째, 내 윗사람이 나가면 내가 성장한다. 윗사람의 역할, 업무를 떠맡게 되어서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책임감까지 부담해야 하기에 성장할 수밖에 없다. 직장에서의 책임감은 성장의 고속도로다. 책임감 있는 직장생활과 없는 생활의 차이는 크다. 책임감의 무게와 크기가 달라지면 사람도 달라진다. 나 역시 여러 명의 선배와 상사들이 퇴사하고 그만큼 더 성장할 수 있었다. 그들이 계속 남아있었다면 성장 속도는 그만큼 늦춰졌을 것이다. 

셋째, 퇴사자로 인해 새로운 인원이 들어오면 조직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고인물은 주기적으로 빼야 한다. 그래야 조직도 새로운 분위기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새 인물이 가져다주는 신선함도 무시할 수 없다. 퇴사자가 문제 있는 인원이었다면 퇴사로 인한 마이너스가 플러스가 되는 걸 경험할 수 있다. 


퇴사자의 공백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남는 사람들의 마음이 좋지는 않다.

첫째, 남겨진 사람들은 뒤쳐지는 기분이 든다. 나는 그러지 못하는데 저 사람은 과감히 떠나는 모습을 보면, 거기다 더 좋은 회사로 간다고 하면 부러움과 뒤쳐지는 느낌을 막을 수 없다. 저런 사람도 이직하는데 나라고 못하랴 하는 호기로운 생각에 구직 사이트를 뒤적거린다.

둘째, 퇴사자의 공백으로 마음이 허전해진다. 시간이 해결해주지만 한동안은 허전한 마음을 어쩔 수 없다. 남는 자의 허전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떠나는 사람은 연신 상글벙글하다. 내가 퇴사를 경험해보니 남는 자의 마음을 떠나는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다. 기존 업무를 벗어던진다는 홀가분함과 새로운 회사에 대한 기대와 긴장 때문에 남는 자를 생각할 마음의 자리가 없다. 새 회사를 가기 전 조금이라도 쉬고픈 마음에 빨리 털고 나갈 생각뿐이다. 


떠나려는 사람은 웃으며 보내 주는 게 제일 좋다. 어차피 막을 수 없다면 좋게 보내줘야 한다. 남는 사람들은 인수인계 같이 필요한 것들 최대한 요구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감정 붉히는 일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괘씸한 생각이나 부러움과 질투 같은 감정에 휘말릴 수 있지만 떠나면 끝인 사람, 잘 보내주고 서로 좋은 기억만 남기는 게 최선이다. 물론 떠나는 사람도 최대한 예의를 갖춰야 한다. 나의 갑작스러운 퇴사로 남는 사람들의 업무가 가중된다는 점, 그리고 공백으로 인한 허전함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이 회사가 있었기에 내가 다른 회사로 점프할 수 있었다는 고마운 생각도 반드시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이젠 누가 떠나도 신입사원 때 팀장의 퇴사로 겪었던 깊은 허전함과 공백의 고통을 느끼지는 않는다. 나도 그만큼 성장했고 그래도 회사는 굴러간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직장 생활을 오래 해도 퇴사할 거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며칠간 마음이 뻥 뚫린 듯 허전하고 걱정되는 마음은 없어지지 않는다. 논리적으로는 이해하지만 감성적으로 다가오는 그 고통은 아마 절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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