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그 결과는?
다른 회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직장 내 같은 팀에서도 점심을 따로 먹는 걸 용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전통적(?)인 회사의 방식은 모든 팀원이 같이 점심을 먹어야 했다. 꼰대 축에 속하는 나 역시 그런 게 자연스러웠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점심시간의 자유를 원한다.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운동을 하거나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길 원한다. 나쁘지 않다고 본다. 회사에서 얼굴 맞대고 스트레스받는 것도 힘든데 단 한 시간 만이라도 자유로울 수 있고 그로 인해 업무 효율이 올라간다면 회사 차원에서도 막아야 할 이유가 없다.
내가 속한 팀에도 점심을 따로 먹는 두 친구가 있다. 항상 따로 먹는 것에 대해 껄끄럽기는 했지만 꼰대이면서 꼰대로 불리기를 원하지 않는 분위기 때문에 누구도 별말하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한 두 번 지적을 했다. 처음 얘기하면 좀 같이 먹다가 다시 따로 먹는 게 반복되어 다시 얘기하진 않았다. 그래도 팀에 새로운 문화를 적용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었다. 우리도 한번 그렇게 해보자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어 따로 먹어도 그냥 놔뒀다. 둘은 팀에서 막내다. 직장 상사와 밥 먹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젊은 친구들이다 보니 찌개에 집착하는 아저씨들 입맛이 영 안 맞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 두 친구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
현재 거의 왕따처럼 지내고 있다. 오직 둘이서만 같이 지내니 왕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실상 왕따다. 왕따처럼 지내는데 업무를 잘 볼리가 없다. 업무에서도 문제가 있다. 사람들, 가장 가까운 팀원들과는 잘 못 지내고 업무에도 문제가 있는데 회사가 재미있을 리 없다. 지금 상황에서는 내 보내거나 알아서 관두거나 둘 중에 하나밖에 선택지가 없어 보인다. 물론 이 지경까지 만든 다른 사람들의 문제도 있다. 문제는 복합적이라 어느 한 가지로 집어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점심을 따로 먹기 시작한 게 시발점이라는 것이다. 밥을 따로 먹는 건 작은 부분일 수 있다. 하지만 작은걸 하나 허용하고 넘어가는 순간 또 다른 예외 케이스에 대해서 허용을 요구한다. 어떤 케이스에 대해서는 말도 없이 넘어간다. 회사가 점점 만만해 보이고 자기들 멋대로의 회사 생활이 시작된다. 이런 게 쌓이고 누적되면 결국 회사 생활은 망가진다. 회사는 자유로운 곳이 아니다. 군대보다 편할 수는 있지만 군대만큼의 규율이 존재하는 곳이고 그래야 잘 돌아가는 곳이다. 그래서 회사를 나오면 힘든 거다. 밥을 같이 먹는 규율을 어기기 시작하면서 다른 규율들도 무너져 버린다. 규율을 깨뜨리기 시작하고 그러다 결국 팀원들과 멀어지고 업무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진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트렌드에 맞춰 무조건 편하게만 지내고 피하려고만 하면 안 된다. 그렇게 조직 생활을 해 나갈 수도 없을뿐더러 그런 편한 회사 생활은 정말 일부의 얘기다. 그렇게 하는 회사 생활이 맞다는 보장도 없다. 전부 시험적인 단계일 뿐이다. 점심을 따로 먹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을지라도 무조건 적용하면 안 된다. 어떤 일에도 장단점이 있다. 부분적으로 작게 시도해 보고 장단점을 비교해보고 필요하다면 다시 원상복구 할 수 있는 환경이 존재한다면 시도해 보는 건 좋다. 하지만 내가 경험해본 결과 점심을 따로 먹는 건 나쁜 결과만 초래한다.
나도 막내 때는 팀원들과 밥 먹는 게 힘들었다. 유일하게 허락된 자유시간인데 그 시간에도 업무 얘기를 한다거나 먹기 싫은걸 매일 먹으러 간다거나 밥 먹으러 가면 숟가락 젓가락 휴지 위에 곱게 깔고 복잡한 점심 식대 계산도 도맡아야 하는 등 싫은 일 투성이다. 하지만 그래도 피하지 않고 버텼기에 팀원들과의 실낱같은 관계나마 유지할 수 있었고 조직에 적응하고 버틸 수 있었다.
밥을 먹는다는 건 관계다. 친한 사람들끼리 만나도 밥을 먹지 않는가. 회사 사람들이랑 겉으로는 친하고 속으로는 욕하는 관계일지라도 어쨌든 겉으로는 친해야 한다. 그러려면 밥을 같이 먹어야 한다. 퇴근하고 저녁에 따로 먹을 것인가? 아니잖나. 점심에 먹어야 한다. 밥을 같이 안 먹고 피하기만 하면 관계는 깨진다. 직장에서 관계가 깨지면 정말 힘들어진다. 그게 막내 직급이라면 치명적이다.
점심시간의 자유는 작은 자유다. 진짜 자유는 업무에서 찾아야 한다. 내가 일을 잘하고 성과를 잘 내면 나를 터치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진다. 업무의 자유가 찾아오는 것이다. 점심시간의 자유는 한 시간이지만 업무의 자유는 회사에 있는 시간 내내 가질 수 있다. 직장인들은 업무의 자유에 집중해야지 작지만 치명적인 점심시간의 자유에 집착하면 안 된다.
"점심은 따로 먹겠습니다."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