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의 반란

6-1

by 심색필 SSF

“이거 진짜 괜찮은 거 맞죠?”

“일단은 해봐야지. 이렇게 있다가는 얼마 못 버틸 거야.”


은비를 바닥에 던진 이후로 며칠이 지났다. 예상대로 물과 식량은 점점 더 떨어져 갔다.


“그런데 왜 좀비는 저렇게 오랫동안 물이랑 밥도 안 먹으면서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 거지? 쥐어짜 낼 수 있는 에너지가 있나?”

“영화잖아. 뭘 그렇게 진지하게 얘기해?”


그렇지. 영화일 때는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지. 그러나, 실제로 눈앞에 현상이 벌어지고 나니 저놈의 좀비들이 왜 지쳐 쓰러지지 않는지가 의문이었다. 계속해서 주변을 배회하며 낮이고 밤이고 잠도 안 자는 녀석들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벌써 3일째네요.”

“전파는 언제쯤 돌아오는 건지. 외부 소식을 좀 알아야 대처가 가능한데.”

“그런데 기지국이 망가졌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통신이 불량인 게 말이 되나요?”

“뭐... 병목 되었던 통신이 복구가 안될 수도 있고, 국가에서 비상계엄을 걸은 이상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리고... 지금 이 일이 우리나라에만 일어난 일이 아닐지도 모르잖아.”


생각해 보면 좀비화 발현을 직접 눈으로 본 게 주변이지 사실 이런 사태가 다른 나라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피와 타액으로 이상징후가 나타나는 게 아니라 커피에 노출된 사람들이 좀비가 되는 현상은 한국인에게만 드러나는 현상이 아님이 분명했다. 아무리 이 나라에 커피가 많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보다 커피를 더 사랑하는 미족들은 전 세계에 차고 넘쳤다.


“하아... 시카고도 지금 난리겠죠?”

“모르지. 연락이 닿질 않으니...”


교수님은 니콜라스 박사님과 꽤나 친분이 있으셨다. 학회도 함께 자주 다니시고 오며 가며 마주친 둘은 서로의 연구와 논문에 흥미를 보이고는 했다. 덕분에 나도 교수님 덕에 니콜라스 박사의 밑에서 잠시 일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끝이 좋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한 거냐? 너한텐 더없이 좋은 기회였잖아. 코앞에서 그 기회를 내던진 게 난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하아... 그냥 힘들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게 긴 시간을 네가 노력했는데...”

“그때는 몰랐죠. 그나마 그걸 버티는 게 나았다는 걸요. 그런데 그때는 너무 힘들었어요.”


원래 인생의 고비와 축복은 한 번에 몰려온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쁜 일은 나쁜 일대로 계속 몰려오고, 좋은 인은 겹경사를 부르게 되고. 그때 내 인생은 아무래도 소위 삼재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이번에 우리 연구는 이렇게 발표하기로 했다.”


모두가 만류했던 니콜라스 박사님의 고집은 결국 돈 앞에서 무너졌다. 재단의 압박을 받은 총장의 압박. 그리고, 가족과 명예 중 결국 가족을 선택한 그의 모습을 보는 건 우리로써도 너무 힘든 일이었다.


“참... 그간 노력했던 시간들은 다 어떻게 되는 거냐?”

“생각해 보면 역사가 꼭 진실만을 말했을까요? 어쩌면 역사라는 것도 사실 기록하는 자와 해석하는 자의 잣대에 의해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지 않았을까요? ‘반이나 남았다.’와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명백한 기준의 차이니까.”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함께 일하던 선배들과 펍에 앉아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때가 기억이 난다. 진성 너드로써 신입인 나와 조안나보다 훨씬 더 사학과 고고학에 대해 깊게 파고든 그들이었지만 힘의 논리에 무너진 그들은 하루하루를 힘없이 살아갔다.


“리. 미안해. 널 사랑하긴 하지만 나는 그래도 가족이 더 중요한 사람이야. 난 네가 누구보다 좋은 사람이란 걸 알아. 네가 날 이해해 줄 거라 믿어.”

“그래... 뭐. 어쩔 수 없지.”


참 뭣 같은 화법이었다. 모두 좋은 사람이니 좋게 그 자리에 있어줘라. 서양권에서 이기적인 여자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화법인 것 같았다. 솔직함을 빙자한 이기심. 널 사랑하지만 난 다른 게 더 중요하고 넌 좋은 사람이니 이런 부족한 나를 이해해 달라는 당당한 그 말에 나는 한없이 비참해졌다.


“그거 들었어? 조안나랑 니콜라스 박사님이랑 데이트하는 사이었다는 거?”

“어? 진짜로? 나는 리랑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 줄 알았는데.”

“크흠... 야. 저기...”

“아... 괜찮아? 리?”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이런 거였을까? 그녀의 말대로 인종 때문에 유능한 그녀의 집안 때문에 우리가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이란 것을 대강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이런 결말을 예상하지는 못했다. 몸으로는 나와 사랑을 나눴으면서 공식적인 서류로는 그녀는 박사님과의 미래를 그렸다는 게 치가 떨렸다.


“리... 그만 마셔.”

“괜찮아요. 한국에서는 맥주는 술로 치지 않아요.”

“너 취했어.”


맥주로 취하면 개가 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연구실에서 마주친 선배들에게 처음으로 술을 얻어먹었지만 아무리 들이부어도 가슴에 뚫린 구멍은 도통 메꿔지질 않았다. 이후로도 한동안 방탕하게 살았지만 이곳에서 내가 서있을 자리는 없다는 것을 느꼈다.


“미안하지만 박사님 추천으로 연구실에 들어와서 다른 곳에서 일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 유감이야.”


다른 곳으로 가려고 했지만 연구실에 묶여있는 것 말고는 내게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조안나와 니콜라스 박사님이 붙어있는 꼴을 보기도 힘들었고 열과 성을 다한 일의 끝에 돈과 힘에 의해 바뀔 수 있다는 불합리한 현실까지 뭐 하나 좋은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 뭐... 어차피 이 길이 좋아서 여기까지 온 것도 아니고... 그냥 눈앞에 보인 길이 여기라서 열심히 살아온 건데 미련 없이 돌아가자.”


그렇게 일도, 사랑도 모두 실패하고 나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


“천천히 먹어라.”

“오랜만에 집밥이라 그런가. 진짜 맛있네요.”


집으로 돌아와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한동안은 고민을 잊고 지냈지만 집에만 있는 나를 보던 부모님도 점점 걱정이 심해지는 것 같았다. 꽤나 좋은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쉬워하는 듯하면서도 침울해진 나의 모습에 더 이상의 말을 아끼신 부모님이었다.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않겠어?”

“가면 뭐해요? 나와서 갈 때도 없을 건데.”

“그래도... 지금까지 쏟은 시간이 있는데 아깝잖아.”


'아깝다'라... 사실 두려운 거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노력을 부은 일을 마냥 접기 두려웠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한때 믿고 따르던 스승의 만남을 마주하는 게 두려웠고, 그들과 한 공간에 있기에 집중될 시선이 두려워 한국에 돌아왔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노력했음에도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에 대한 도전이 두려워 결국 학교로 돌아왔고 나는 계속해서 두려움에 도망치는 결정 만을 반복했다. 언젠가는 이 두려움을 이겨낼 순간만을 기대하며 말이다.



Firefly_A Korean woman in her early 20s with a devilish appearance is drinking coffee. 873345.jpg

[ 카페인의 반란 ] -> 웹소설 링크

https://www.blice.co.kr/web/detail.kt?novelId=10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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