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소설이 한 번 쓰고 싶어서...

이제 2화.... 정확히는 1-2 화.

by 심색필 SSF

김치찌개에 떨어진 꽃방울


Firefly A single yellow chrysanthemum is in full bloom in the center of a bubbling kimchi stew pot.  (1).jpg


1-2


“어. 왔어?”

“어. 무슨 일이야?”


오랜만에 보는 둘은 이상하리만큼 무거운 공기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어색한 웃음만 짓고 있었다. 회사의 시작과 함께했지만 총기를 잃고 무너져가는 개국공신과 죽을 날을 받아놓은 노쇠한 애견을 보는 주인의 만남이란 서로에게 그다지 즐거운 자리가 아니었다.

“글은 좀 잘 써져?”

“아... 뭐.”

“언제쯤 보여줄 수 있어?”

“조금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진현아. 다른 게 아니라 지금 회사 내에서 조금 말이 많아. 아무리 네가 우리 회사의 시작을 함께 했다고 해도...”

“알았어.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았어.”

“아니. 진현아. 일단 얘기 끝까지 들어봐.”

“어차피 나도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어. 내가 내 발로 나갈게.”

“아니. 진현아. 그게 아니라...”

“그럼 뭐?”

“그러니까...”

“빙빙 돌리지 말고 결론부터 말해.”

“한 1년만 쉬고 다시 돌아오자. 1년 뒷면 우리 회사도 투자 더 받고 좀 클 수 있는데 그때 다시 돌아오자.”

중섭의 말은 대충 그런 이야기였다. 현재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서 인력들을 감축해야 하고 그 대상에 진현이 포함되어 있다는 그런 이야기. 하지만, 중섭은 친한 후배이자 함께 뜻을 같이 했던 진현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니까 거기서 딱 1년만 버티자.”

“집에서 글 쓸게. 그냥.”

자신의 영화에 자신의 돈을 넣어가면서까지 열과 성을 다했던 진현이었지만 그런 그에게 남은 건 더럽혀진 명예와 그의 전재산이 들어간 집 한 채가 전부였다. 집도 절도 없는 누군가가 들으면 감지덕지한 이야기였지만 진현에게는 그 집은 가장 빛나는 자신을 증명하는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화려함을 기대하고 부화한 나비가 자신의 전성기가 애벌레였다는 것을 깨닫고 그 껍데기 곁을 떠나지 못하는 것처럼 그는 쉽사리 그 집을 떠나지 못했다.


-쪼르륵.-


Firefly Draw a picture of a bright yellow whiskey bottle on a table inside a black-and-white office. (1).jpg


테이블 앞에 중섭이 아끼는 양주병과 매혹적인 엉덩이를 자랑하는 양주잔이 놓였다. 황금색의 액체는 진현 앞에 놓인 섹시한 잔에 쪼르륵 그 모습을 드러냈다. 절반도 따르지 않은 그 황금색의 액체는 순식간에 대표실 전체에 향긋하고 고풍스러운 향을 퍼뜨렸다.


“야. 진짜 오랜만이다. 우리 둘이 술 한잔 하는 거.”

“그러네.”

“참... 우리 그때 기억나냐? 매일 돈 없어서 소주에 새우깡만 먹고 그랬는데.”

“그랬지.”

“그때 비하면 그래도 우리 많이 성장하긴 한 거야.”


Firefly Draw a shabby living room that looks like a small studio apartment, with a bottle of soju, p (1).jpg


진현은 그런 중섭의 말을 듣고는 말없이 눈앞에 놓인 양주잔을 흔들어 코에 가져갔다. 중섭은 냉장고에서 얇은 살라미를 꺼내 진현의 앞에 가져다주었다.

“참... 비싼 술이 향이 좋긴 하네.”

“너니까 내가 이 술 까는 거야. 진짜 와이프보다 훨씬 더 아끼는 건데.”

“뭐... 귀양 보내기 전에 주는 술로는 나쁘지 않네.”

“귀양이라니. 재야의 고수를 만나서 좋은 시나리오 하나 건져 오자는 거지.”


중섭은 진현을 자꾸 지방으로 보내려고 했다. 지역에서 예술가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공간. 그러나, 예술하는 친구들이 그 먼 지방까지 내려가서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아 철거 위기에 까지 놓인 그런 공간이었다.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중섭에게 지역에서는 계속해서 예술인을 보내달라고 닦달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가기 싫어하는 그런 곳이었지만 누군가를 보내야만 하는 상황에 중섭이 생각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진현이었다.


“하아... 뭐... 좋게 생각하자. 원래 새로운 환경에서 또 좋은 글이 나온다고 하잖아.”

“그래...”


중섭의 말을 들으며 홀로 양주를 홀짝거리는 진현의 대답은 힘없기만 했다.


“그리고, 거기 백시환 선생님도 계셔.”

“선생님이 거기는 왜?”

“몸 안 좋아지시고 내려가신 지 꽤 됐어.”

“몸은 갑자기 왜? 괜찮지 않았어?”

“나이 앞에 장사 있냐? 그냥 서서히 하나씩 망가지는 거지.”

“참... 하도 욕을 많이 먹어서 평생 건강하게 사실 줄 알았는데.”


시환은 업계에서 꽤나 유명한 사람이었다. 연극단의 수장을 맡기도 했고 안반극장의 대부로 수많은 드라마들과 명작들을 뽑아낸 거장 중 한 명이었다. 물론,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모를 수 없었다.


“두 분이서 나이 차이가 있는데 결혼생활은 좀 괜찮으세요?”

“뭐... 사랑에 나이가 대순가요?”


Firefly A Korean man in his mid-40s with graying hair is taking a couple photo with a clearly young .jpg


그의 실려과 작품보다 그를 훨씬 더 많이 알린 것은 젊고 어린 외국계 배우와 결혼을 한 소식이었다. 수많은 남자들의 부러움과 도둑놈이라는 호칭을 부여한 그 사건. 당시 영화나 드라마에 종종 얼굴을 비치던 신인 여배우이자 어린 모델과 결혼을 하면서 지금까지의 명성을 모두 깎아버린 그였다. 당시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이러했다.


“멍청한 거지. 자기 평판 깎아가면서까지 그 어린애랑 결혼을 하고 싶었을까?”

“그냥 뭐 돈 주고 결혼한 거지.”


돈과 권력으로 어린 여성과 결혼을 강제한 이 시대의 뒤틀린 중년의 남성. 둘의 나이차는 정확하게 스무 살이었다. 마흔다섯의 남자에게 시집을 수아라는 신인 배우. 배우로서도 배우 이전의 연습생과 아이돌 활동에서도 그 어떤 관심을 받지 못했던 그녀 또한 시환과의 결혼으로 인생에서 가장 큰 스팟라이트를 받았지만 그 관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진심 어린 축하와 애정의 관심이 아닌 단순한 감정쓰레기통으로 치부된 광기의 키보드질에 그들은 결혼과 동시에 그렇게 업계에서 한 줌의 먼지가 되고 말았다.

“선생님 아직도 글 쓰셔?”

“뭐... 직접 쓰시지는 않고 그래도 한 둘씩 오는 후배들이랑 얘기하면서 뭐 이것저것 이전에 만드시려 했던 걸 보여주시기도 하고 조언도 해주시고 그런가 봐.”

“그렇구나.”

“하여가 가서 인사도 잘하고.... 뭐 잘해봐. 1년이야. 딱 1년. 갔다 와서 다시 차기작 준비하자.”

“차기작?”

“어. 그러니까 어떻게든 써와.”


기약 없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자신감을 잃고 희망을 잃은 진현에게 중섭의 말은 엄청난 유혹이었다. 달달한 꿀이 가득한 벌집을 그의 눈앞에 가져다 놓고 어떻게든 먹어보라고 살살 진현을 꼬시는 중섭이었다. 벌에 쏘이던 말던 그건 신경 쓰지 않고 말이다. 그러나, 진현은 그런 중섭의 의미 없는 한마디는 진현에게는 엄청난 의미로 다가왔다.


‘절치부심 (切齒腐心)’


집으로 돌아온 진현은 노트북을 열어 모니터 중앙에 ‘절치부심’이라는 글이 적힌 폴더를 하나 만들었다. 그리고는 약간의 취기와 함께 기분 좋은 콧노래를 부르던 그는 냉장고에 가서 굳이 초록색 소주병 가져와 새우깡과 함께 혼자만의 2차를 시작했다.

“하아... 그래. 다시 잘해봐야지.”

-타닥. 타닥. 타다닥.-


Firefly Draw a man with a tired face sitting in front of a laptop, writing something. 818031.jpg


새하얀 한글파일 위로 그는 다시 모음과 자음을 배합해 새로운 글을 써 내려갔다. 자신이 무슨 글을 쓰는지도 모른 채 그저 일단 시작해 보자는 마음으로. 목표를 잃고 방향을 잃은 선장이 우선 어디든지 가보자라며 전속력으로 엔진을 밟듯 그는 미친 듯이 글을 써 내려갔다. 한참을 써 내려가다 한 잔, 또 한참을 써 내려가다 한 잔, 그리고 또 한잔. 그렇게 그는 모든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나서야 책상에 엎드려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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