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소설이 한 번 쓰고 싶어서...

마지막 화야. 정확히는 1-3....

by 심색필 SSF

김치찌개에 떨어진 꽃방울


Firefly A single yellow chrysanthemum is in full bloom in the center of a bubbling kimchi stew pot.  (2).jpg


1-3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또 한 번 책상 위를 울리는 지동에 진현은 정신을 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날의 그 환희와 영감을 담아 혼을 쏟아낸 노트북위로 쏟아낸 자신의 토사물을 보며.


“하아... 시발.”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Firefly A cell phone is vibrating on the desk where a laptop is placed. 171495.jpg


“여보세요.”

“일어났어?”

“어. 왜?”

“왜긴 왜야? 언제쯤 내려가려고?”

“아... 뭐 급한 거야?”

“급하거냐니? 밑에다 다 얘기해 놨는데 되는대로 빨리 가야지.”

“하아... 알았어. 다음 주에 출발할게.”

“그냥 이번 주에 가. 뭘 다음 주까지 기다려?”

“아... 나 노트북 좀 고치고.”

“회사에 남는 노트북 많으니까 그거 가지고 가. 그냥. 너 간다 해서 다들 기다린다니까.”


진현은 답답한 듯 긴 한숨을 내뱉고 전화를 끊었다. 완전히 먹통이 된 노트북을 보며 다시 속이 울렁거렸는지 그는 다시 입을 막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값비싼 양주 한잔에 쓰디쓴 소주 한 병. 그가 먹은 술의 전부였다. 그러나, 살라미 몇 점에 새우깡 몇 조각으로 그 술을 견디기에는 그는 너무 허약해져 있었다.


“하아... 이거 좀 오래 걸릴 것 같은데요?”

“그래요? 네 제품이 좀 오래되시기도 했고, 원래 물만 들어가도 이게 쉽게 먹통이 되는데... 토를 하셨으니... 수리는 할 수 있는데 수리하는 것보다 새로 하나 사시는 게 더 좋을 거예요.”

“하아... 그렇군요.”


오래된 것은 진현의 몸뚱이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노트북과 그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들.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은 이제 모두 오래된 것이 되어있었다. 요즘 세대에는 잘 맞지 않는 그런 것들. 10년 전에나 잘 먹힐 만한 그런 패션들처럼 그의 주변에는 지금과 잘 어울리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노트북 샀어? 회사에 많다니까.”

“그냥 아예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나 샀어.”

“이전 거는.”

“뭐... 돈이 좀 든다고 하는데 수리 맡겼지. 그래도 작업했던 건 봐야지.”


진현이 다시 복구하고 싶은 건 이전의 기억들이 아니었다. 정말 몇 년 만에 불현듯 찾아온 그 영감들과 끊이지 않고 쏟아낼 수 있었던 그 잠깐의 몰입감. 아직 자신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받고 싶었던 그는 완전히 날아간 이전날의 기억과 신들린 듯이 써 내려갔던 그 글을 어떻게든 다시 되찾으려 했다.


“근데 거기가 어디라고 했지?”

“전북 북안이라고 좀 걸려. 군산보다 조금 아래?”

“그래? 꽤 걸리겠네.”

“그래봤자 대한민국이지.”


Firefly A beautiful view of warm sunlight and blue sky can be seen beyond a car driving on the highw.jpg


서울에서 차로 가면 3시간. 막히면 4~5시간까지 걸리는 부안은 너무 멀지도 그렇다고 절대 가깝지도 않은 곳이었다.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맞으며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진현은 뭔가 새로운 일이 펼쳐질 것만 같은 기대감과 함께 차 안에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에 콧소리를 흥얼거렸다. 따가울 정도로 화창한 햇살과 파란 하늘은 어느새 새빨간 노을에 점점 붉게 물들어갔고 저녁이 되기 직전에야 그는 부안에 도착했다.


“반가워요. 중섭이한테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처음 뵙겠습니다.”

“그래요. 어서 들어와요.”


거무튀튀한 얼굴에 살짝 노랗게 변한 흰자와 새하얀 백발이 된 시환은 진현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버선발로 나가 그를 환대해 주었다. 시환은 진현이 살아갈 집 바로 옆에 살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몇십억이 있어야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넉넉하고 풍족한 느낌의 2층집. 쌍둥이처럼 닮아있는 두 집은 독서실책상처럼 벽 하나 만을 두었을 뿐 완전히 딱 붙어있었다. 마치 한 가족이라도 된 것 마냥 붙어있는 집을 보며 진현은 사생활이라고는 없을 것 같다는 그런 불안감에 휩싸였다. 집에 발을 붙이기도 전에 시환의 집에 이끌려온 진현은 똥 마려운 것 같은 강아지처럼 쩔쩔되었다.


Firefly An old dog is waiting happily for someone in front of a two-story house with a yard. 363823.jpg


-째깍. 째깍.-


그 자리가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었는지 진현의 시환의 집 한 구석에 있는 시계의 작은 초침 소리도 세세하게 귀에 들어왔다. 처음 발을 댄 어색하고 낯선 땅에서 조우한 이름 모르는 스승. 그리고 편함보다는 불편함이 더 도드라지는 명확한 상하관계. 굳이 모든 걸 하나하나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아도 둘의 관계는 너무나 일방적이었다. 중섭의 관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우리가 어디서 본 적이 있나요? 왜 이렇게 낯이 익지?”

“이전에 영화제 뒤풀이에서 한 번 뵌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 편하게 해 주세요.”

“아... 그래? 그럼 그럴까? 영화제 뒤풀이 어떤 영화제... 혹시 그 뜨거운 무?”

“네. 맞습니다.”

“이야. 이런 실례를. 내가 이런 명감독을 앞에 두고 이런 실수를 저지르다니.”


이제는 잊혀가는 자신의 역작에 대한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시환의 말에 괜히 마음이 들뜨는 진현이었다. 근 몇 년간 조롱보다 더 심한 혹평에 힘들어하던 진현은 자신을 아직 천재로 바라봐주는 늙고 병든 지나간 세대의 거장의 말에 조금씩 몸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참 멋진 제목이었어. 뜨거운 무. 자신의 이빨이 날아갈 줄 알면서도 주인이 주는 먹이에 이빨을 들이대야만 하는 개의 운명. 이가 세고 심장이 뜨거운 개일수록 오히려 먼저 솥에 들어간다는 그 느낌마저. 참... 내가 자기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를 거야.”

“감사합니다. 선생님.”

“난 아직 자네가 다시 이 업계를 완전히 뒤집어놓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그런 역작을 만든 사람들은 쉽게 쓰러지지 않거든. 분명히 자네는 해낼 거야. 예술계의 미래와 운명을 자네 손으로 한 번 바꾸는 그런 순간이 분명히 올 거야.”

“아... 저 그 정도는 아닙니다.”

“겸손은. 사람이 너무 겸손해도...”


-삑.삑.삑.삑.삑.삑. 띠리링.-


Firefly A Korean woman in her early 20s with a fair complexion and actress-like face, wearing a tigh (2).jpg


시환과 진현이 한참을 떠들고 있는 그때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어두 칙칙한 방에 그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공간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었다. 낡고 어두운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이목구비에 남자들을 찔끔거리게 만드는 아름다운 미모.


-째깍. 째깍.-


진현은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세상의 시간이 느리게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가느다란 선과 육감적인 몸매. 마치 윤기가 흐르는 듯한 백옥 같은 피부. 큰 눈에 양쪽으로 아름답게 늘어진 매혹적인 눈매. 그리고, 자신의 존재감을 내뿜는 달큰하고 기분 좋은 꽃냄새까지. 그렇게 수많은 여배우들과 함께 작업했던 진현이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그 여자에게서 그는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어. 왔어?”

“손님이 있었네요?”

“어. 인사해. 여기는 옆집에 들어오게 될 이진현 감독.”

“안녕하세요.”

“그리고 여기는 내 와이프. 전수아.”

“안녕하세요. 전수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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