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사 오마카세

스시

by 심색필 SSF

“거봐. 안주 모자라잖아. 진짜 무지하게들 먹는다.”

“어우. 잔소리는. 먹기는 얼마나 먹었다고 그래. 닭발에 주먹밥 하나 먹은 건데.”

“너희는 몸관리 안 하냐?”


몸관리 해서 이 정도만 먹는 거야. 우영아. 지금 진짜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참는 거다.


“야. 우리 같은 몸매는 관리로 만들 수 있는 몸이 아니야. 타고나는 거지. 그리고, 하늘이 필라테스 강사잖아.”

“얘 또 까먹었을걸? 맞지?”

“네가 이 엄청난 걸 너무 자주 보니까, 감이 없어진 거야.”

“넌 정말 운 좋은 줄 알아야 해. 우리 같은 친구를 둔 걸. 너 없이 우리 둘이 왔으면, 이 테이블에 남자가 몇이나 들러붙었을 것 같니?”


너는 모르겠지. 널 부러워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줄. 늑대새끼들 눈빛이 얼마나 잘 느껴지는지 넌 모를 거다.


“어이구. 아주 대단들 하십니다. 나도 너희랑 말고 친구들이랑 왔으면 이미 다른 테이블 가서 애들 꼬셨지.”

“하여간 저 근자감 하고는.”

“보여줘? 지금? 번호 한 번 따고 와봐?”

“우영씨. 알았으니까 그냥 술이나 드세요.”

“보여준다고 해도 안 믿네. 야. 오징어찜 하나만 시키자.”

“오징어찜은 왜?”

“그냥. 맛있잖아.”

“오징어가 오징어 엄청 좋아하네.”

“이 와꾸가 어떻게 오징어냐? 진짜 보여줘?”


그래. 사실 얘 정도면 오징어까지는 아니지. 그런데, 오징어들은 진짜 자기가 오징어인지 모른다. 남자들 중에 태어나서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뭐 사촌들 등등 이런 사람들을 제외하고 잘 생겼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면, 그 사람은 외모가 별로인 것이다. 그리고, 태어나서 가족들까지 포함해서도 아예 잘 생겼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럼, 그 사람이 바로 오징어인 거다. 핥아주고 싶지만,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를 피 흘리면서 그루밍해주지 않는다. 이런 고슴도치 오징어들도 정말 다양한 분류가 있는데, 자기가 어떻게 생긴 지 잘 모르는 애들. 이런 애들은 눈이 아파서 자기가 잘생긴 줄 알고 온갖 꼴값을 떨어댄다. 한 번씩 귀여운 애들이 있긴 하지만, 경험상 대부분이 주제 파악이 아직 잘 안 된 애들이다. 그리고, 자신의 외모 때문에 지나치게 소극적인 인간들. 평생, 잘 생겼다는 얘기도 못 들어보고 여자들과 말도 제대로 못 해본 소위 ‘찐따’들. 그런데, 얘들은 심지어 재미도 없다. 먼저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없었던 탓일까? 말도 잘 못하고 혹여나 불쌍해서 조금만 잘해주면 금방 사랑에 빠져 곤란해지기 쉽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에게는 단호하게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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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피스는 제주도산 갑오징어를 토치로 구워 풍미를 극대화한 이카스시입니다.”


갑오징어를 왜 토치로 구웠냐.... 회로 올라오는 게 훨씬 맛있는데....


“저....음....하늘씨는 취미가 어떻게 되세요?”

“저는 운동하고 맛있는 거 먹는 거 좋아해요.”

“아.....그러시구나.....혹시 어떤 남자스타일 좋아하세요?”

“저는 돈 많고 잘생긴 남자요.”

“아......”

“해명씨. 진짜 죄송한데, 제가 오늘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저녁 먹고 바로 나가봐야 할 것 같은데....”

“아....급한 일이면 가셔야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네...네. 그럼 저희 다음에는 언제 볼까요?”

“제가 이번 주 주말에 연락드릴게요.”

“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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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해 죽겠네. 진짜. 말 한마디 하는데 도대체 ‘아...’를 몇 번을 하는 거야. 뭐 이 사람의 이력은 나쁘지 않다. 나이 39살에 공기업 부장. 연봉은 쏠쏠할 거고 바람피울 능력도 없을 것 같지만, 우리 같은 여자들도 기준이라는 게 있다. 남자의 능력, 환경, 외모, 성격, 행실 등등. 남자들이 가장 크게 하는 착각 중 하나가 여러 가지 항목 중 한두 가지가 뛰어나면 나머지가 평균이하가 되더라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자들이 원하는 남자는 모든 부분이 평균이상인 사람들을 원하는 것이지, 한 두 가지가 빼어나게 높은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사람 같은 경우에야 대부분의 옵션들이 괜찮지만 문제는 외모가 너무 기준이하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눈이 엄청 높은 편은 아니다. 나도 살면서 많은 오징어들을 만나봤고, 그 오징어의 외모에서도 우리가 모르는 서열이 존재한다. 무늬오징어, 갑오징어, 한치, 그냥 오징어, 대왕오징어 등등. 그런데, 오늘 나온 이 남자는 내 기준에서는 꼴뚜기다. 얼굴은 둘째 치고, 키도 작은데, 재미도 없고 버벅거리는 것까지. 이럴 때는, 혹시나 먹물이 튀기 전에 빨리 자리를 떠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야. 너 소개받을래?”

“소개? 갑자기?”

“방금 사진 하나 올렸는데, 아는 동생이 너 여친있냐 물어보네.”

“사진 봐봐.”

“어때? 이쁘지?”

“오. 얘 몇 살인데?”

“우리보다 5살 어림. 완전 애기지.”

“애기긴 애긴데, 애기치고는 이쁘네.”

“어때? 해줘?”

“나야 좋지. 근데 뭐 하는 친군데?”

“얘도 필라테스 강사. 쩔지?”

“완전 내 스타일인데.”

“근데, 너 내일 아버지 만나서 맞선 얘기한다고 하지 않았어?”

“괜찮아. 난 이쁜 여자 만날 거임.”

“역시 취향 하나는 확고하다. 진짜 대나무 같은 새끼.”

“내가 좀 곧고 단단함.”

“크크크크. 미친놈. 그럼 얘한테 너 연락처 준다?”

“그냥 걔 연락처를 나한테 줘.”

“오키오키. 잠깐만.”


차영우 얘가 이렇게 신나 하는 모습이 왜 이렇게 꼴 보기 싫지. 여자친구 생기면 좀 그런데....


“이 새끼한테 괜찮은 사람 소개해주면 안 되는데.”

“왜? 또? 뭐가?”

“너 희정이 동생 따먹고 버리는 거 아냐?”

“내가 무슨 농사꾼이냐? 따먹고 버리게. 하여간, 저거 저거 입 거친 거 하고는.”

내 입이 거친 게 아니라, 지금껏 네 행실이 그래왔다 이거지.

“아아. 괜찮아. 그건 지들끼리 만나서 풀어야지. 얘들이 무슨 대학교 새내기도 아니고. 이제 20대 중반인데..... 누가 누굴 따먹고 버리는 건지는 나중에 되면 알겠지.”

“얘는 날 도대체 어떻게 보는 거야? 진짜 개 같네.”

발끈하기는. 원래 사실이 더 따끔거리는 법이란다. 친구야.


“아이. 둘이 어색해질까 봐 그러지.”

“너랑 지금 어색해지려 한다.”

“미안. 미안. 내가 말 실수했다. 술 한잔 받고 풀어.”

“하여간. 넌 다 문젠데 그 입이 제일 문제야.”

“뭘 또 그렇게까지 말하냐. 미안하다는데. 미안해. 친구야. 자.....짠!”

“에휴.....크으....확실히 소주가 좋긴 좋아.”

“넌 돈도 있는 애가 왜 맨날 소주만 마시는 거임?”

“나 다른 술도 많이 마심.”

“난 너 소주 말고 다른 거 마시는 거 못 봤는데?”

“너희 만날 때는 소주 먹지. 다른 데서는 와인이랑 양주도 많이 마셔.”

“뭐야. 왜 우리 만날 때는 소주만 마셔?”

“그런 데는 닭발 없어. 너 거기 가면 은근히 싫어할걸?”

“왜? 나도 오마카세나 파인다이닝 많이 가.”

“아? 그래? 난 몰랐지. 너희 맨날 닭발만 먹고 있길래. 그냥 이런 거 좋아하는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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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누가 보면 진짜 닭발 말고는 뭐 먹을 줄도 모르는 사람인 줄 알겠네. 와인이나 양주 못 먹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냥, 소주가 싸고 제일 널려있으니까 쉽게 먹는 거지.


“근데, 이런 안주에는 와인이나 양주 안 어울려? 괜찮을 것 같은데.”


희정아. 이런 음식에는 와인은 쥐약이란다. 특히나, 매운 음식이랑은 진짜 완전히 상극이지. 그럼에도 스시에 들어가는 고추냉이도 매운 게 아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고추냉이는 괜찮고, 고춧가루는 안되냐며 인식차이 아니냐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그건 가루 고추냉이나 싸구려 초밥을 먹고 코가 뻥 뚫리는 경험을 한 사람들 입에서나 나오는 허접한 소리이다. 비싸면 비싼 고추냉이일수록 매운맛과 함께 달달하고 기분 좋은 맛이 올라온다. 특히나, 기름진 방어나 참치에는 간장도 찍지 않은 채 이렇게 많이 올려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고추냉이를 올려 먹으면 회에서 나오는 풍부한 기름과 어우러져 무지막지한 시너지가 발생한다. 물론, 참치나 방어와 같은 경우도 크기별, 그리고 부위별로 그 상태와 가격이 천지차이긴 하지만 그래도 항상 평균이상은 하는 생선이기에 실패에 대한 걱정은 상대적으로 덜 한 편이다.

“태섭씨는 주말에 뭐 하세요?”

“뭐...매주 다르긴 한데, 운동하거나 여행 가는 거 좋아해요.”

“오! 진짜요? 저도 운동이랑 여행 진짜 좋아하는데. 태섭씨는 최근에 여행 가신 곳이 어디예요?”

“뭐, 국내 여행은 제주도 한 번 다녀왔어요.”

“와. 부럽다. 나도 제주도 가고 싶은데. 안 간지 너무 오래된 거 같아요. 태섭씨는 여행 자주 다니시나 봐요. 또 어디 가보셨어요?”

“여행은 아니고 출장으로 해외 많이 나가죠.”

“해외 어디요?”

“미국 다녀왔어요.”

“우와. 대박. 미국 어디요?”

“LA랑 라스베이거스 다녀왔어요.”

“라스베이거스는 도박으로 유명한 곳 아니에요?”

“그렇긴 하죠. 카지노가 워낙 많기는 하니까.”

“그럼 카지노도 가셨겠네요?”

“출장이라 카지노는 못 들어갔어요. 매일 전시회에 있었서요.”

“일이 빡세신가 보네요. 남자들이 바쁜 모습을 보면, 뭔가 좀 섹시한 거 같아요.”

“그런가요? 쑥스럽네요. 하늘씨는 어떤 일 하세요?”

“저요?”

“네. 궁금해서요.”

“아.....저는 지금 대학원 다니고 있어요.”

“대학원이요? 전공 물어봐도 돼요?”

“산업경영이요. 그런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생각보다 어려운 거 같아요.”

“배우는 데 쉬운 게 어디 있어요? 그럼 요즘 수업 때문에 바쁘겠네요?”

“뭐....딱히 그렇게 바쁘지는 않아요. 어느 정도 제 시간은 있는 정도라....”

“쉬는 날에는 뭐 하세요?”

“뭐 책도 보고 필라테스도 하고. 운동하는 거 좋아해요.”

“운동 좋아하시는구나. 필라테스 어렵지 않아요?”

“어렵긴 한데, 그래도 재밌어요.”

“잘 어울리세요. 필라테스.”

“진짜요?”

“네. 운동을 하셔서 그런지 정말 핏이 다르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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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가 좀 몸이 이쁘긴 하지. 나올 때 다 나왔으면서 이렇게 탄력 있게 늘씬한 몸 가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웬만한 남자들은 내 몸을 보면, 대부분 넘어오곤 한다. 누구를 만나냐에 따라서 그날의 의상도 다르게 입고 나가긴 하지만, 열에 아홉은 어떤 옷을 입고 나가더라도 눈알을 가만히 놔두지 못한다. 남자들이란 종족은 시각에 취약한 존재들이라, 조금만 포인트를 줘서 자극해 주면 미끼를 향해 눈을 돌리고 돌진하기 마련이다. 안 그런 척해도 타고난 DNA가 그렇게 디자인되어 있어서, 공략하고자 하는 상대만 만나면 좋은 미끼를 입고 온다. 이 참치는 이번에 꼭 낚아채야 하는 거물이다. 대형 로펌에 소속되어 있고, 법조인 부모님 사이에 태어난 승률 좋은 변호사. 나이는 40이지만,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 외모와 옷 밖으로도 보이는 탄탄한 근육질 체형. 사실, 이 남자에 대한 이미지는 상승곡선을 그리듯 계속 상승 중이다. 처음에, 40살이라는 숫자만 보고 매니저 언니한테 싫다고 했다가, 글을 끝까지 보라고 한 소리를 들은 매물이었다. 배경도 좋았고, 심지어 외모까지 깔끔하고 섹시한 중년이라 너무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마음에 들었던 것은 나이가 어느 정도 들은 남자들에게서만 나오는 섹시함. 말 한마디를 해도 진중한 느낌이 나며, 상대의 말을 더 잘 들어주는 그 느낌.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나라는 낚싯대가 오랜만에 만난 커다란 참치를 버티지 못하고 놓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존재만으로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이 남자는 나를 조용히 흥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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