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미
“광어는 맛있는데, 우니가 좀 콤콤하네요. 여름이라 그런가?”
“전 괜찮은데요. 성훈씨 우니가 좀 운이 없었나 봐요.”
“사실, 제가 해산물을 잘 몰라요. 개인적으로는 소가 좋더라고요.”
“저는 해산물도 좋아하는데, 개인적으로 소고기가 더 맛있긴 하더라고요.”
“소가 맛있긴 하죠. 혹시 뭉티기 드셔보셨어요?”
“뭉티기요?”
“네. 대구에 가면 많이 먹을 수 있는 건데, 당일에 도축한 소를 육사시미 한 거예요. 탄력도 탄력이고 얼마나 쫀득한지, 접시에 올려놓으면 딱 붙어서.....”
전형적인 아저씨 스타일. 남이 모르는 거 하나 나오면, 쉬지 않고 말하면서 자신의 얕은 지식을 자랑한다. 책상에는 꽤 오래 앉아 가방끈은 긴 편이지만, 상대적으로 사람을 많이 만나보지 않은 스타일. 탈모까지는 아니지만, 숱이 적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무태 안경을 쓴 나이 32에 7급 공무원. 부모님에게 서울 끝자락에 24평짜리 집 한 채를 받고, 부모님은 고향으로 귀촌. 위로는 형이 한 명, 아래로는 여동생이 한 명. 이 사람의 입맛처럼 어지간한 스펙이나 조건등은 좋지만, 뭔가 아쉬운 스타일이다. 이 나이대 아저씨들이야 하나 같이 적당히 젠틀하고, 적당히 위트 있고 평생 굶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공무원에 집 걱정 없는 적당한 재력의 집안. 거기에 조금만 꾸미면 성장 가능성이 보이는 살짝 아쉬운 외모. 그러나, 이런 결정사에 들어온 매물치고는 너무 흔한 느낌이다. 이런저런 매력을 꾸역꾸역 집어넣는다고 해도 명확한 한계점이 느껴지는 원물. 사람의 매력은 확실히 가속도의 법칙과 관련이 있다. 좋은 점들이 보일 때는 한 없이 좋아 보이지만, 반면에 아쉬운 부분이 한 번 보이고 나면 한없이 아쉬운 소리만 나오게 된다.
“넌 그럼 어떤 사람 만나고 싶은데?”
“흠... 영화배우로 치면 조연 느낌?”
“조연?”
“주연이나 진짜 1류급 배우들은 뭔가 너무 부담스럽기도 하고, 자기 잘난 맛에 도취되어 살 것 같단 말이지. 그런데, 조연으로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사람들에 대한 이해도 있고, 적당히 인기 있고 돈도 잘 벌고 이런 느낌이잖아. 난 약간 그런 사람들이 좋아.”
“그런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지?”
“뭐, 여러 사람 있겠지. 그래도 조금은 안정적이었으면 좋겠어. 조연들처럼 자기 이미지 조금 사라져도 계속 연기할 수 있는.”
“금수저 만나고 싶다는 거 아냐?”
“금수저는 좀 너무 독립심이 없어 보여.”
“금수저가 왜?”
우영이 너 하는 꼴을 봐라. 집도 잘 사는 게 진짜 한없이 쪼잔해서는. 하긴... 얘도 자기가 돈이 많은 게 아니라, 아버지가 돈이 많은 거니까...
“너 보면서 금수저에 대한 환상이 깨졌어?”
“내가 왜? 그리고 난 금수저까지는 아님. 그냥 적당히 먹고사는 거지.”
“미안한데 그런 말을 건물주 아들한테 듣고 싶지 않거든.”
“건물주도 잘 산다는 것도 옛날 말이지. 그 정도 아니야.”
“와. 순간 진짜 재수 없었다. 그건 겸손이 아니라 기만이야.”
희정아 너도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니야. 너도 꽤나 잘 살잖아.
“진짜로.... 으... 이 기만좌. 너희 집 그리고 건물 한 개만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야. 그냥 드시던 닭발이나 입에 쳐 넣으세요.”
빵빵한 재력을 가지고 있는, 태어날 때부터 금을 몸에 두르고 태어난 이들. 흔히, 우리가 금수저라 불리는 이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행동이 다르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태어나, 독기와 근성만으로 힘겹게 생존해 온 남자. 배부르지는 않지만, 배고프지 않은 가정에서 적당한 꿈을 가지고 평범한 목표를 위해 성장한 남자.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입에 금수저를 달고 태어나 아쉬울 것 없이, 안 되는 것 없이 흐르는 물에 떠다니는 듯 자라온 남자. 각자의 개성과 삶의 역사가 다 다르기에, 성급하게 일반화를 할 수 없지만 대략 잘 사는 집. 평범한 집. 못 사는 집으로 유년시절의 배경을 나누면, 그들에게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공통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 청어가 괜찮네요.”
“그러게요. 청어가 기름지고 맛있네요.”
“역시, 원물의 가격이 다가 아니긴 하네요.”
“네?”
“원래 이 청어가 원물은 엄청 저렴하다고 하네요. 거의 마리당 1200원?”
“와....그럼 청어는 진짜 많이 남는 장사네요.”
“뭐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네? 왜요? 여기는 그래도 한 점당 2~3천 원 정도 하는데, 한 마리에 1200원이면 진짜 좋은 것 아니에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 청어가 한 줌의 스시로 나오기 위해서는 숙성도 숙성이고 잔가시가 워낙 많아서, 일일이 핀셋으로 가시를 뽑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원물은 싸고, 맛도 좋지만, 인건비가 많이 드는 생선이라서 그렇게 마진이 많이 안 남는데요. 그래서, 청어는 셰프님들이 진짜 좋아하면서 힘들어하는 생선이라고 하더라고요.”
“와. 성대씨는 이런 걸 어떻게 다 아세요?”
“뭐. 어렸을 때부터 여기저기서 일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듣다 보니까 저절로 알게 된 것 같아요.”
“성대씨 이야기가 좀 궁금하긴 하네요.”
“진짜요? 좀 길긴 한데.”
“저 이야기 듣는 거 좋아해요. 한 번 들려주세요.”
“별 얘기 없긴 한데. 그렇게 재밌는 얘기도 아니고....”
별로 재미없는 거 알아. 그냥 내가 계속 떠드는 것도 힘들고 그냥 웃으면서 고개 끄덕이려고 그 말하는 거야. 34살에 연매출 30억을 조금 넘기는 의류브랜드 사장. 연봉은 1억이 조금 넘고 외모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멀끔하다. 온몸에 휘감은 옷들과 액세서리만 해도 대략 천만 원이 넘어갈 것 같다. 그러나, 어딘가 협찬받은 듯 애매한 향수 냄새가 이 남자의 출신을 드러낸다. 평범한 집안에서 자랐다는 이 남자. 그러나, 본인의 능력으로 저 자리까지 올라가는데 다른 사람의 손 냄새가 전혀 베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하면, 바닥에서부터 올라왔기에 본인들만의 특정하고 까다로운 기준이 있다. 그리고 그 기준을 주변 사람들에게 강요하고, 자신의 성공을 말하면서 본인만의 합당한 기준을 증명하려 한다. 성공적인 청어의 맛을 끌어내기 위해 수많은 가시를 일일이 제거하듯이 맛있는 인생을 영위하기 위해 인생의 습관 하나하나를 바꾸려고 노력하려는 부류의 사람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다 자신들처럼 만드려고 한다. 청어의 잔가시와 불순물들을 보고 넘어갈 수 없는 셰프들처럼 말이다.
“너무 까다로운 거 아님? 그렇게 하다가 누구 만나긴 하겠냐?”
“넌 네 결혼 상대를 고르는데 대충 고를 거야? 당연히 깐깐하게 골라야지 그렇게 대충 골라서 되겠냐?”
하여간, 이 지지배. 기명오빠랑 연애하는 거 자랑하려고 아주 노래를 부르네.
“오~ 그럼 기명이형은 그렇게 깐깐하게 걸러진 남자라는 뜻인가?”
“그럼. 우리 오빠는 내 깐깐한 기준을 모두 상회하는 남자지.”
“야. 진짜 형님 어떻게 하냐. 그렇게 멋진데, 왜 깐깐하지 못하게 널 골라서.”
“이게 진짜. 죽을래?”
“알았어. 알았어. 야, 근데 주먹밥 좀 시켜. 이것만 먹다가 피똥 싸겠어.”
“아....진짜 더러워 죽겠네.”
“더럽기는. 누가 보면 똥도 안 싸고 사시는 줄 알겠네.”
“그래도 술 먹는데 얘기하는 건 오바지.”
“유난떨기는. 여기요. 주먹밥 하나 주세요.”
“아.... 귀찮은데. 이거 일일이 다 만들어야 하잖아.”
“하여간 넌 뭘 몰라. 이게 또 손맛이라고, 잘 움켜쥐어야 맛이 좋아요.”
뭐. 차우영 얘기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스시의 맛은 샤리가 좌지우지한다는 말이 많다. 처음에는 나도 샤리가 뭔지 몰랐는데, 몇 번 가다 보니 생선 아래에 있는 밥을 샤리라고 한단다. 음식에도 뭔 놈의 용어가 그렇게 다 다른지 비싼 돈을 주고 먹는 음식들을 배워야 할 것도 너무나 많다. 그중에서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샤리였는데, 스시를 쥘 때 샤리가 맛있으면 어지간한 스시는 다 맛있다는 얘기가 있다. 그리고, 이 스시들 중 니기리. 쥠 초밥이라고 생선회를 얹어놓은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대중적인 형태의 스시들의 특징 중 하나가 맛있게 손으로 쥘수록 스시의 맛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즉,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잘 되어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냥 밥 위에 회를 얹은 음식이 아니라, 밥의 온도, 초의 정도, 최상의 상태로 숙성시킨 생선, 그리고 어떻게 쥐었느냐에 따라 입안에 풀어지는 밀도의 디테일까지.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재밌는 음식임과 동시에 기본기가 충실하지 않으면 맛을 보장할 수 없는 그런 음식이 된다.
“보리새우가 역시 맛이 뒤지네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표현이 조금 억센 편이죠?”
“아니에요. 전 경수씨 그런 투박한 표현이 재밌어요.”
“아.... 그런가요? 제가 좀 자유로운 편이라서요. 혹시 듣기 불편하세요?”
“다른 사람들이 하면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경수씨는 워낙 재밌으셔서 그런가. 딱히 막 불쾌하게 들리지는 않아요. 오히려, 유쾌하게 들리는? 뭐 그런 느낌이에요.”
“다행이네요. 전에 만나던 사람들은 제 투박한 말투를 듣기 힘들다고 해서요.”
“에이. 사람마다 다르죠. 전 괜찮으니까 편하게 하셔도 돼요.”
“이해해 주셔서 고마워요. 하늘씨는 와꾸만 좋은 게 아니라 성격도 진짜 좋으시네요. 역시 마음은 크면 클수록 다 좋은 거 같아요.”
이런 양아치 새끼. 보자마자 성희롱부터 날리는 것 보면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훤히 보인다. 원물이 보리새우면 뭘 하나. 입을 열면 바로 대형마트에서 떨이로 나오는 7000원짜리 새우초밥으로 변해버리는데. 살다 보면 말 한마디로 자신의 인격을 끝없이 추락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은 정말 수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입놀림 하나를 주체하지 못해 아직까지 제대로 된 여자를 못 만난 듯하다. 나이 38살에 서울에만 10개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술집 사장. 집도 유복하고, 자기 명의로 된 가게도 많고. 심지어 옷도, 외모도 나쁘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이라 나를 그렇게 옥죌 것 같지도 않다. 그러나, 이 사람은 태생적으로 가볍다. 말도, 행동도 그리고 나를 대하는 이 태도까지도. 사실, 나도 이 사람이 나에게 배우자나 결혼상대라는 인간관계보다 파트너 혹은 애인 같은 관계를 원하고 있다. 하여간 이쁜 건 알아가지고. 솔직히, 나도 이 남자를 봤을 때 결혼보다는 연애, 연애보다는 잠자리가 더 끌리긴 했지만 내가 원하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이 바닥에서 쉽게 몸을 내줄 수 없다. 생채기가 난 물고기는 고급어종이라도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진다. 내 몸값을 이렇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여기서는 깔끔하게 낚시 망에 걸려든 물고기처럼 최상의 남자의 낚싯대에 잘 물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