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완무시
“사실 이 디쉬의 경우에는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묵직함이 조금 떨어지기는 하네요. 사실 겨울철에 생선들은 기름기가......”
얘는 진짜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를 않는구나. 대한민국 스시 오마카세의 성지? 이런 걸 도대체 왜 보고 있는 거야?
“재밌냐?”
“뭐? 이거?”
“넌 맨날 먹는 것 만 그렇게 보고 있냐? 남들이 먹는 게 뭐가 재밌다고 그렇게 허구한 날 그런 것만 보는 거야?”
“이건 그냥 먹방을 보는 게 아니야. 후기를 보고 가야 할 곳을 선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어디 가려고?”
“잘 모르겠음. 이런 걸 먹어봤어야 알지. 여친 생기면 한 번은 가겠지.”
“일단 여친이나 좀 만드세요. 희정이 이 년은 언제 온대?”
“몰라. 곧 오겠지. 닭발이라면 환장하는 지지배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늦냐?”
“나 오늘 술은 많이 못 먹는다.”
“뭐야? 갑자기 왜?”
“내일 중요한 자리 있어.”
“중요한 자리?”
그래. 중요한 자리다. 우영아. 네가 지금 핸드폰으로 보고 있는 그 음식점 가야 한다. 요즘 들어, ‘오마카세’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다이닝 문화가 강남 곳곳에 퍼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영상으로 아이쇼핑 밖에 할 수 없는 고귀한 음식들이지만, 나에게는 이 음식들이 이제 김밥천국에 나오는 참치김밥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첫 번째 음식은 통영에서 직접 가져온 매생이를 풀어낸 달걀찜입니다. 뜨거울 수 있으니 조심히 드십시오.”
들을 때마다 간단한 음식들에 이런저런 살을 덧붙여서, 그럭저럭 있어 보이게 만드는 업장들의 입놀림은 박수를 나오게 만든다.
“감사합니다. 으음. 음식 괜찮네요. 어떻게? 하늘씨 입에는 좀 맞으세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차완무시는 좀 더 따뜻하면 좋은 거 같아요.”
이 바보는 처음 나온 차완무시에서 내 입맛을 물어본다. 매너랍시고 성급하게 무언가 하려는 녀석들은 이런 사소한 사항에서 하나씩 싼티가 나기 마련이다. 고로 매너란 것도 명품을 두른 자가 하면 격식과 예의이지만, 없는 것들이 하면 본인의 단점을 가리기 위한 옹졸한 방어수단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이 35에 연봉이 4천 조금 안 되는 중소기업 과장. 가지고 있는 집은 없고, 하남시 언저리에 있는 28평짜리 전셋집에 살며 차는 K3. 집안은 그런저런 중산층. 그냥 딱 차완무시 같은 사람이다.
"오늘 자리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럼 다음번에는..."
"제가 연락 한 번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필수적으로 먹어야 하는 코스. 뭐. 위장을 데워 주기 위한 웜업 같은 존재. 나이에 비해 몸 관리를 열심히 잘한 편이지만, 황무지를 배경으로 한 선인장을 보는 느낌이다. 자신은 죽지 않을 만큼 강인한 정신력과 생명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 사람을 안는다면 나는 결국 피를 흘리고 말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 나도 뜨거운 태양볕 아래 모래만 휘날리는 사막의 삶에 적응시키려 할 것이다. 프로필을 받아봤을 때부터 마음이 가지 않았지만, 언니의 부탁으로 겨우내 나온 자리였다.
-위이이잉-
“네. 실장님.”
“하늘아. 이번 주 토요일 저녁에 선릉에 7시 스시 미즈타.”
“또 미즈타에요?”
“좋게 생각해. 좋은 음식 먹으면서 돈도 버는 거잖아. 그리고, 미즈타를 가야지 우미를 가지. 혹시 알아? 진짜 운 좋으면, 선샤인 플레이스도 갈지.”
“그러면 너무 좋죠. 언니. 저도 여기 있으면서 선샤인 플레이스는 한 번 가야 하는데..”
“알았어. 내가 한 번 잘 알아볼게. 우선 이번 주 토요일 늦지 말고.”
“네. 언니. 사랑해요.”
전화하는 내내 웃음을 참고 있던 희정이년이 기다린 듯이 웃음을 터뜨린다.
“깔깔깔깔깔. 야. 너 목소리 뭐냐?”
“웃지 마. 너도 먹고살아봐라. 이 정도는 다 하면서 살아야 해.”
“근데, 그거 돈 많이 줘?”
“돈은 많이 못 받지. 근데, 마음에 안 드는 아저씨들 여러 번 만나면 마음이 가는 오빠를 한 번씩 볼 수 있지.”
“하여간. 이년. 오빠가 아니라 아빠 만들려고 엄청 노력하네.”
“너도 기명 씨랑 헤어지면 말해라. 언니가 닦아 놓은 길 편하게 갈 수 있게 잘 알려줄게.”
“야. 난 그런 거 필요 없거든. 오빠랑 결혼할 거야.”
“네~ 네. 꼭 좋은 사랑 이루세요.”
-스으윽.-
“좋은 사랑? 뭔 소리야?”
“깜짝이야!”
얘는 왜 맨날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을 놀라게 만드는 거야. 혹시 내 얘기 들었으려나....
“뭔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놀라? 내 얘기하고 있었냐?”
“네 얘기는 무슨.... 희정이 남친.”
“아. 형님은 잘 지내셔?”
“그럼 잘 지내지. 우리 오빠가 나한테 얼마나 잘해주는데.”
얘는 지 오빠 얘기만 나오면, 아주 눈이 반달이 되네. 제발 있을 때 잘해라.
“근데 무슨 전화길래 나가서 받아?”
“아. 아버지 전화. 내일 점심에 집에 들어오라고 하시네. 귀찮아.”
“아버지랑 밥 먹는 걸 귀찮아하냐? 너는? 하여간 이래서 아들새끼 키워봤자라니까.”
“지는... 집이나 잘 들어가고 말해.”
“난 집만 안 들어가는 거지. 엄마, 아빠랑 자주 놀아.”
“어이구. 아주 효녀 나셨네.”
“하여간. 이거 아주 이 주둥이를.”
“아. 왜 이래.”
“아니. 근데. 내일 무슨 일인데 점심에 부르신대? 너 또 뭐 잘못한 거 아냐?”
“그냥 뭐 맞선보라는 얘기하려나 보지. 귀찮아.”
“저번에 만난 여자는? 한신제약 회장 손녀라며?”
“못생겼어. 내 스타일 아니야.”
“언제 철들래? 그냥 만나. 집에 돈도 많을 텐데.”
“못생긴 사람 만나는 게 철드는 거냐? 난 얼굴 이쁜 여자가 좋아.”
하여간 남자들.... 아니 이 수컷들이란 종자는 어쩔 수가 없다. 이들에게 있어서 여자의 외모는 필요충분조건이다. 나도 어릴 적에는 외모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높게 보는 남자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쁘냐?"
"이쁘냐?"
"이쁘냐?"
그건 너무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미의 기준이 다른 경우는 있지만, 이 수컷이라는 종자들은 외적으로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여자들에게 정말 조그만 호의도 보이지 않는다. 외적으로 마음이 없는 암컷은 그들에게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혹은 같은 공간에서 산소를 공유한 존재? 혹은 그보다 무신경한 존재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외적인 호감이라는 것은 신기할 정도로 특정한 녀석들에게 집중된다. 마치, 자연의 선택을 받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상위포식자로 태어난 사람들이 있는 반면, 피식자로 태어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처럼 뭔가 하나 애매하게 하나씩 결여되어 있는 사람들. 나 같은 사람들이 가장 피곤한 처지일 것이다.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