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사 오마카세

디저트

by 심색필 SSF

“하늘아. 넌 몇 살 차이까지 만날 수 있어?”

“흠.....나는 띠동갑도 가능하긴 해.”

“오....그럼 중 3도 가능?”


진짜 얘는 제정신인가?


“미친놈이냐? 진짜?”

“그래도 12살 연상은 좀 빡세지 않아?”

“솔직히 나는 나이차이는 그렇게 안 중요한 거 같아. 내가 배울 게 있거나, 좀 기대고 싶은 사람인지가 더 중요한 거 같아.”

“야. 아무리 그래도 대화가 통해야지. 12살 차이면 지금 40살이잖아. 진짜 오바다. 삼촌이랑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너 같은 애들이 나중에 꼭 어린애들 밝히더라.”

“난 한 5~6살 차이가 딱 좋음. 그 이상 넘어가면 아예 대화가 안돼. 대화가.”

“야. 그것도 나이 차이가 좀 많이 나긴 하지. 6살 차이면 이제 대학교 3학년인데.”

“대학교 3학년이면 그래도 대충 알 건 다 알잖아.”

“하기사...”

“넌 그럼 40대도 괜찮은 거임?”

“뭐 꼭 그런 건 아닌데,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

“흠......우리 사촌형도 솔로긴 한데. 아직.”

“사촌형 몇 살인데?”

“지금 몇 살이더라. 나랑 꽤 차이 나는데..... 43살이다.”

“15살 차이는 좀 그렇다.”

“하긴 좀 그렇겠지. 이 형이 좀 잘 나가긴 하는데. 그거 믿고 연애만 하다가 아직도 결혼을 못함.”

“사촌오빠분 뭐 하시는 분인데?”

“셰프.”

“셰프? 어디 호텔에 계신데?”

“호텔이 아니라, 자기 건물에서 자기 업장 놓고 영업해.”

“건물을 가지고 계신다고? 셰프가 그렇게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야?”

“밀키트랑 무슨 포장음식으로 더 많이 번 거 같긴 하던데.”

“와.....진짜 대박이다. 음식점 이름이 뭔데?”

“이름도 좀 웃겼는데? 선샤인 플레이스?”

“선샤인 플레이스?”

“오. 너도 알아? 진짜 유명한가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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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하다마다. 얘는 사촌형 레스토랑 놔두고 무슨 이상한 오마카세집 영상을 보고 있어. 역시 금수저 물고 태어난 게 다가 아니라니까.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이런 멍청한 자식. 선샤인 플레이스는 우리나라에서 진짜 1%들이 가는 초호화 레스토랑이다. 미슐랭도 2 스타 받은 적도 있고, 디너 1인 기준에 페어링이나 와인 없이 30만 원을 넘어가는 하이엔드 프렌치 레스토랑이다. 솔직히, 내가 여기서 알바를 하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회사에서 지정해 주는 음식점은 스시 미즈타급 음식점 5곳과 스시 우미급 음식점 3곳과 제휴를 맺고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정말 운이 좋으면 갈 수 있는 곳이 선샤인 플레이스다. 아직까지 선샤인 플레이스는 가본 적도 없고, 열에 아홉은 미즈타급으로 가고 한 번쯤 우미급으로 간다. 우선 우미로 가는 날은 나도 풀세팅을 해서 가야 한다. 많이 가본 적은 없지만, 우미를 가는 사람들 중 아직까지 지갑이 얇은 사람은 없었다. 펀드매니저, 스타트업 대표, 그리고 저번에 만났던 태섭씨. 우미급의 레스토랑에서 주선된 만남은 미즈타급 레스토랑에서 만나는 만남과 확실히 많은 것이 다르게 느껴졌다. 흡사, 노는 물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확실히 마인드와 행실, 그리고 외적으로 나오는 아우라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듯하면서 뭔가가 다른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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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너무 큰데요?”

“원래 한 입에 먹는 건데, 확실히 여기가 좀 크긴 하네요.”

“준영씨, 제거 드실래요? 전 이건 너무 커서 못 먹겠어서.”

“한 번 드셔보시지.”

“괜찮아요. 준영씨 드시고 싶으시면 드세요.”

“그래요. 놔두시면 제가 먹을게요.”

“배가 은근히 많이 부르네요.”

“원래 이런 코스 요리들이 천천히 조금씩 나와서 생각보다 포만감이 좋잖아요.”

“준영씨는 뭔가 다 알고 있는 사람 같아요. 모르는 게 없는 느낌이랄까?”

“하늘씨가 왜 그렇게 느낀 지는 잘 모르겠네요. 하하하.”

“그냥 어떤 질문에도 바로바로 답이 나오는 게 신기해서요. 삶에 답안지가 있는 사람과 대화하는 느낌이에요.”

“재밌네요. 답안지를 보고 사는 느낌이라. 사실은 저는 모르는 게 더 많긴 하거든요.”

“준영씨도 모르는 게 있다니. 신기하네요.”

“나이를 먹는다고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근데, 나이 듣고 깜짝 놀랐어요. 진짜 이렇게 동안이실 줄 몰랐거든요.”

“고마워요. 하늘씨도 진짜 이뻐요.”

“그렇게 대놓고 말하면 어떻게 해요? 부끄럽게.”

“그냥 이뻐서요. 저 하늘씨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뭔데요?”

“제 나이를 알면서도 이 자리에 나온 이유를 알고 싶어서요. 솔직히, 매니저님께 말씀드리긴 했는데 너무 나이가 어리셔서 어려울 것 같다고 했는데, 한 번 만나보고 결정하라고 하시길래 나왔거든요.”

“아....그랬구나. 저는 그냥 느낌이 좋았어요. 나이 차가 많이 나도 한 번 만나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요.”

“마음이 많이 열리신 분이네요. 하늘씨는.”

“준영씨는 어때요?”

“어떤 게요?”

“저 보니까 어떤 것 같아요?”

“뭐 당연히 첫인상은 이쁘고 좋았고, 지금은 점점 알아가는 중?”

“알아가는 중이면 더 알아가 보고 싶다는 뜻인가요?”

“하늘씨가 성격이 많이 빠르신 편이네요. 한 번으로는 사람을 알기 어렵죠. 사람은 적어도 세 번은 만나 보자는 게 제 신조긴 합니다.”

“세 번이면 파악이 다 되시나 봐요?”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조금은요? 세 번이라는 만남 동안 나 자신을 다 숨기는 게 쉽지 않거든요.”

“궁금하네요. 저를 어떻게 판단하실지가.”

“세 번 만나게 될 때 말해드릴게요.”

“좋게 말해줄 거죠?”

“오늘은 세 번째 날이 아니잖아요.”


말로는 이쁘다고 하지만 미꾸라지처럼 쉽게 원하는 대답을 안 해준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나이는 들었지만 많은 것을 가졌기에 이성에 대해 급함이 없는 사람이 많다. ‘굳이?’, ‘사람들 더 만나보자.’라는 등 인생에 있어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옵션들을 가지고 있기에 나도 너무 급하게 다가가면 안 된다. 천천히 한 단계씩 그들을 벗기는 것이 핵심이다. 우선 호감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한 답을 요구하기보다, 다음 만남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준영씨는 나보다 14살이나 많은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서두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스타트업부터 시작해서 주식상장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CEO. 대놓고 엘리트코스를 달린 사람이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건 숨겨둔 아이도 없고 돌싱도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만나본 디쉬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2가지는 스시 우미의 아카미초밥과 후토마끼가 베스트인 것 같다. 둘 다 연식은 있지만, 그만큼 숙성이 된 느낌이라 같이 있으면 안정되는 느낌이다. 이번 주 토요일에 우선 다음 식사자리를 대기 중이긴 하지만, 두 사람의 앵콜이 오면 언니한테는 미안하다고 해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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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보자.”

“조심히 들어가. 길바닥에서 자지 말고.”

“집 여기 바로 앞이야. 걱정 마. 희정이나 잘 챙겨줘.”

“그래. 얘 왜 이렇게 취했냐. 먼저 가라. 희정이 택시 태워서 보낼게.”

“그래. 난 내일 일정이 있어서 부탁할게.”


희정이 저년. 술을 부어라 마실 때부터 알아봤다. 희정이 저년은 남자친구도 있으면서, 술만 마시면 차우영이랑 거사를 치르러 가네. 참..... 기명오빠가 불쌍하다. 친구지만 저러는 거 보면 참 답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아 맞다. 언니한테 연락하는 거 까먹었네.


‘언니. 혹시, 준영씨나 태섭씨한테 애프터 온 거 있어요?’


-띠링.-


“아우...얘는 왜 이렇게 눈치가 없는 거야.”

“네?”

“아....저번에 만나셨던 그 어린 친구 있잖아요.”

“아....그 친구요.”

“네. 자꾸 회원님 언제 연락 오냐고 물어봐서요.”

“바쁘다고 얘기해 주세요. 그냥.”

“네. 알겠습니다. 그래도 저희 에피타이트 리스트에서는 꽤 잘 나가는 친구인데 괜찮으셨어요?”

“뭐...이쁘긴 한데, 그냥 딱 거기까지인 것 같아요. 메인디쉬가 안 좋으면 조금 실망할 것 같기는 하네요.”

“안 그래도, 저희가 메인코스가 훌륭하기로 유명하답니다. 한 번 보시겠어요?”

“네. 보여주세요. 커피 드실래요?”

“저는 물이면 괜찮습니다.”


-삐이익-


“네. 부르셨습니까?”

“여기 임매니저 물 한 잔만 가져다주세요.”

“혹시 더 필요하신 거 있으신가요?”

“와인 한 잔 가져다주세요. 나파밸리 2019로요.”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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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결정사 매니저 성은이 으리으리하게 넓고 큰 집에서 회원으로 보이는 남자를 위해, 가방에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은색 가죽파일을 꺼낸다. 파일 전면에는 ‘Main Dish’라는 글이 쓰여있고, 슈퍼모델, 연예인, 미스코리아 등 다양한 사람들의 사진과 정보가 적힌 파일이 남자 앞에 놓인다. 고민을 하는 남성회원 앞에 매니저가 새로운 파일을 꺼내려다 조금 촌스러운 청록색 파일을 하나 떨어트린다.


“죄송합니다. 손이 미끄러졌네요.”

“괜찮아요. 천천히 정리하세요.”

“네.”


‘Appetizer’라는 글씨가 적힌 청록색 파일 안에서 하늘의 사진과 정보가 적혀있는 서류 한 장이 떨어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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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tizer’

‘이름 : 소하늘’

‘나이 : 28세’

‘직업 : 필라테스 강사’

‘학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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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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