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의 반란

프롤로그 下

by 심색필 SSF


“그래. 광민아. 네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죄송합니다. 교수님. 신경 써주셨는데.”

“뭐... 기분이 안 좋아도 어쩌겠냐? 싫다는 사람 붙잡는 거 내 스타일 아니다. 그래도 안타깝다. 네가 거기까지 간다고 했을 때도 평상시 수업들을 때도 뭔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죄송합니다.”

“나가봐라.”

“네...”

“광민아. 알다시피 중간에 나왔으니 학점 대체는 없다. 1년은 마쳐야 졸업할 수 있어.”
“네... 알겠습니다.”


신경을 써주셨기에 더 교수님은 상심이 크셨다. 석사, 박사까지 내 인생의 앞길을 본인의 인생 캘린더에까지 넣어놓으셨기에 그 착잡함은 더 크셨던 것 같다. 결국 나도 흔히들 말하는 의지박약의 요즘 것들로 교수님에게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 나는 교수님을 피해 다녔지만 졸업을 위한 마지막 전공에서 결국 교수님의 수업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여기는 4학년 친구들도 있으니까 조금 어려운 주제로 준비하자.”
“아... 교수님.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잔뼈 굵은 선배들이랑 같이 조별하면 이 정도는 해야지. 지금껏 배운 것도 있는데 나머지는 너무 쉽지 않아? 너희들?”


평상시 감정을 그렇게까지 드러내는 분이 아니셨지만 오랜만에 들어온 애제자의 배신에 생각보다 맺힌 게 많으신 듯했다. 분명 말이 나올 수 있는 결정을 하셨지만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나는 그 결정에 큰 반기를 들거나 할 수 없었다.


“하아... 진짜 교수님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미안하다. 우리가 죄인이다.”
“하아... 짜증 나네. 진짜.”


이제 막 군대를 다녀온 진협이는 쉽사리 불합리함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선배님들 덕분에 이렇게 된 거니까 선배님들께서 잘 이끌어주시리라 믿어요. 괜히 교수님이 저런 워딩까지 쓰시면서 얘기하셨겠어요?”

“그... 그래.”

“그럼 저희는 이번에 조금 한 발 물러서서 참가해도 되는 거죠?”
“어?”


교수님일 이런 느낌이었을까? 나라는 요즘 것을 대한 느낌이?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20살 유정이는 수업 후 강의실에서 자신은 선배들만 믿으니 이번 과제에서 일을 적게 달라는 말을 했다. 알바나 다른 일로 핑계를 대거나 하는 친구들은 많이 봤어도 대놓고 이렇게 편승하겠다는 친구는 또 처음이었다.


“그래. 그냥 자료 정리하는 것 만 좀 도와줘. 어차피...”

“선배. 자료정리를 어떻게 해요? 저거 다 정리하려면 한 세월을 걸릴 건데.”
“그럼 넌 뭘 할 건데?”

“조금 쉬운 일로 선배가 알아서 배정해 주세요.”


Firefly_Black coffee is bubbling away in the coffee pot._ 716567.jpg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하기 싫다는 말을 이렇게 대놓고 할 수 있다니.


“그래. 알았어. 나중에 연락 줄 테니까 들어가.”

“네. 알겠습니다.”
“나중에 밥이나 한 번 먹자.”

“네.”


먼저 들어가라는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짐을 챙기며 한 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잔 하나를 들고나가는 유정이었다. 안 그래도 화가 뻗치는데 손에 있는 커피를 한입 쪽 하면서 마시는 그 모습은 순간적으로 폭력을 마렵게 만들었다.


“아후... 병신아. 그걸 그냥 보내주냐?”

“그럼 뭐 어떻게 할 거야? 교수님이 너 엿 먹으라고 이런 건데. 괜히 싸워봤자 좋을 것도 없고.”


틀린 말도 아니었다.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워야지. 뭐.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선배님들 그러면 같은 조 된 기념으로 저희 술 한잔 어떠십니까?”
“미안. 바빠서.”


진협이는 그새를 못 참고 밥을 사달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그럴 시간도 그럴 여유도 없었다.

“이번 조는 ‘악숨 왕국의 이단문서에 나타난 약초학의 병리’에 대해 조사해 봅시다.”


듣자마자 저건 내가 맡겠구나 싶었다. 우선 이름부터도 생소했으며 인터넷 어디를 뒤져도 찾을 수 없는 그런 자료들로 가득했으니까. 사실, 저 주제를 다룰 수 있는 건 이 수업에서 나밖에 없었다. 시카고 대학에서 내가 속했던 랩에서 다룬 주제와 가장 비슷한 주제였다. 답도 없는 상황에 더 답이 없는 과제를 맡게 되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Firefly_Hot coffee is pouring from the coffee machine into the cup._ 716567.jpg


-취이이이이익.-


커피를 압출하면서 생기는 저 하얀 증기가 머리 위에서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하아... 진짜 대가리 터지겠다.”

“대가리가 터지기는. 나도 너만 믿는다.”

“몰라. 시발.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한때 연구했던 주제라며?”

“그거 하기 싫어서 뛰쳐나왔는데 무슨 1학년이 듣는 수업에서 연구진들이 하는 과제를 주냐고. 대놓고 그냥 F 주겠다는 거지.”

“뭐. 그렇게까지 빡세게 보시겠냐? 성의만 보이면 되지.”
“성의만 보이면 되기는. 누가 봐도 그냥 엿먹이겠다는건데.”


이런 식으로 복수를 하시는구나 싶었다. 개념 없는 1학년과 이제 막 군대에서 복학한 다혈질 후배. 그리고, 1학년부터 전공과는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동기라는 짐을 주고 국내에서도 잘 다루지 않는 세계 고고학 주제를 던져주시다니.


“주문하신 딸기 스무디랑 아이스티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가득 찬 얼음과 그 위로 떨어지는 설탕물. 모두가 커피를 마시는 와중에 우리는 아직도 그 초딩입맛을 벗어나지 못한 채 설탕물만 쪽쪽 빨아재꼈다.


“나도 카페 장사나 할까?”

“커피도 안 마시는 놈이 카페는 무슨.”
“커피 안 마시는 놈도 이렇게 와서 돈을 쓰고 가는데 이것보다 좋은 아이템이 뭐야?”

“하지 마. 카페 망해본 사람 앞에서 할 말이냐? 생각보다 돈이 존나게 안돼.”

“에휴... 나도 너처럼 1학년 때부터 이것저것 다른 거 해보는 건데. 이제 와서 보니 시간이 너무 아깝다.”
“그래도 미국생활은 재밌었다며.”
“재밌기는 그때가 좆같아서 뛰쳐나온 건데. 죄다 무슨 고고학 덕후들 밖에 없다니까. 그냥 인생이 고고학이야. 뭔 돌 찾고 좋아하고. 글자보고 희열 느끼고. 아... 난 그렇게는 못 살겠더라. 그냥 대충 돈 많이 주는 박물관 들어가는 게 목표였는데 그건 자리도 없고.”


지난날 그래도 이 학문에 열정을 쏟은 나 자신이 아쉬웠던 건지 아니면 그 열정에 비해 찾은 진실이 너무나 차가웠던 건지 이전의 일에 대한 푸념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Firefly_In a beautiful cafe with a nice interior, young and pretty Koreans are gathered here  624485.jpg


“진짜? 그 오빠 잘생겼어?”

“몸 완전 좋다니까.”


급한 일이라도 있듯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유정이가 카페 한편에 앉아 친구들과 떠드는 모습이 보였다. 아까 마시던 커피는 어디 갔는지 또 새 커피를 사서 미팅에서 만날 남자들 사진을 보며 깔깔거리는 그 모습이 영락없는 신입생의 모습이었다. 한심해 보이기도 했지만 부럽기도 했다. 카페에 앉아서 친구들과 1학년의 설렘과 여유를 즐기는 저 모습이.


-꺄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


Firefly_The cafe has turned into hell, with zombies coming out from everywhere._ 624485.jpg


-끄아아아악!-

-쾅!-

-펑!-


그때까지는 몰랐다. 지금 이렇게 수맣은 사람들이 앉아있는 이 카페가 지옥을 문을 개문하는 현장이 될 줄은. 이 새까만 물이 얼마나 우리를 힘들게 만들 줄 그때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Firefly_A devil in the form of a fly is enjoying a bath in a coffee cup filled with hot coffe 927223.jpg



[ 카페인의 반란 ] -> 웹소설 링크

https://www.blice.co.kr/web/detail.kt?novelId=100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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