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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생각보다 실망스럽네요.”
“...”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우리의 조별과제였지만 눈을 떠보니 나는 죄인이 되어있었다. 대충 이렇게 될 걸 예상했지만 짜증이 몰려왔다. 당연히 어려운 걸 알았지만 역시나 하는 듯한 태도의 교수도 도와주지 않고 원망의 눈빛을 보내는 조원들도.
“아니. 선배. 이게 뭐예요?”
“도와달라고 할 때 입 닥치고 있다가 이제 와서 이러는 건 무슨 경우야?”
“자멸할 거면 혼자 자멸하던가 이게 뭐냐고요. 하아... 진짜 이래서 아저씨들이랑 같은 조 되면 안 된다더니.”
“야! 뭐라고?”
박유정.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계집애가 결국 선을 넘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육두문자가 나오려는 걸 간신히 영수가 중간에서 제지했다.
“자.. 자.. 그만. 너도 거기까지만 하고. 유정아 너도 말 그렇게 하는 거 아니지. 도와준 거 하나도 없으면서 뭐가 그렇게 잘 났다고...”
“아. 됐어요.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해야지.”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그 뒷모습에 우리는 모두 순간 벙찌고 말았다. 어이가 없으니 화도 안 난다는 말이 이런 뜻인가 싶었다.
“선배. 참으세요.”
“참기 뭘 참아. 지 할 말만 하고 간 애한테. 무슨 테러당한 것 같네.”
테러. 그 말이 딱 어울리는 것 같았다. 자기 할 말만 쏟아내고 그대로 자리를 벗어나는 그 모습에 우리는 순간 전의를 상실했다. 그 와중에 여전히 한 손에 커피를 쥐고 있는 그 모습은 저혈압 환자도 고혈압을 가지게 할 것 같았다.
“하아... 참. 어이가 없네, 어이가 없어.”
“야. 그래도 고생했다. 딱 봐도 양 존나 많아 보이긴 하던데.”
“그 와중에 커피 챙기는 거 진짜 개열받네. 죽이고 싶다. 진심.”
“냅둬. 악마의 커피라잖아. 개 악마 같은 년.”
내 한 달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도 모자라 그 와중에도 지 목 축이겠다고 놓치지 않는 커피 한잔이 그렇게나 얄미워 보였다. 당장 달려가서 그녀의 손에 있는 커피를 발로 차버리고 싶을 만큼.
“참아. 어느 정도 예상했잖아. 어차피 엿 먹이려고 하는 거. 지 덕분에 해외까지 갔다 온 고급 노예가 갑자기 노비문서 찢겠다고 하는데 어련하겠냐? 그냥 쟤 말대로 한 번 똥 밟았다고 생각해.”
영수의 말대로 이번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박사과정 졸업논문으로나 가능할 것 같은 주제를 한 달 만에 발표자료로 만드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도와주는 이 하나 없고, 교수가 철저하게 나만 마킹한다는 이 사실이 쓰라리기만 했다.
“아... 대가리 아파.”
몇 날 며칠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를 조사하고 만드는 데 힘썼지만 도저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죄송해요. 선배님. 제가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진짜 하나도 모르겠어요.”
“광민아. 진짜 미안하다. 나도 요즘 취직 준비하느라... 안 찾아본 건 아니거든. 진짜로. 그런데 이거 우리가 할 수 있는 주제가 맞긴 해? 뭐 알아보려야 알아볼 수가 없는데?”
자료조사부터 PPT까지. 언어를 해석하면서 흐름을 맞추는 일 하나하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역사적 배경도 뒤죽박죽이고 유적에 제대로 나온 이야기도 없는 그런 주제. 교수가 이 주제를 왜 던 저 준건지 가장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반항 한 번 못해본 내가 한심스러웠다.
[ 카페인의 반란 ] -> 웹소설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