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에 관한 이야기.

정유정 작가의 책을 읽으며.

by 이그저

멋드러진수식어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정유정은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 말은 곧, 그녀의 작품은 문체나 스타일이 특별하다기보다 많은 독자들이 읽고 싶어하는, 빠져들게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는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베스트셀러’라는 딱지가 붙는 순간, 정유정의 작품들은 그 단어도 참 애매모호하고 이상한 ‘장르 문학’에‘속해져’버렸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정유정의 파급력에 비해 그녀의 작품들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다룬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렵다. 오직, 끊임없이 팔려나가는 그녀의 소설의 인기에 힘 입은 ‘베스트셀러’ 작가에 대한, 신선하지 않은 겹치기 인터뷰가 난무할 뿐이다.

어느새부턴가 읽으면서 자꾸만 멈추게 되는, 갸웃거리게 되는 지점이 많은 작품들에

우리는 ‘익숙하지 않은 무언가’가 담겨 있다고 여기면서 그 멈춤의 사이에 숨겨져 있는 것을 찾기 위해 작품에 대해 많은 말을 하고, 또 그러한 작품들이 ‘특별하다’고 하게 되었다.

이에 반해, 단번에 읽히는 작품은 숨겨져 있는 것이 없고, 그 말은 곧 ‘무언가’가 없는 것이며, 그저 잠시 빠졌다 나오면 그만인 ‘재미있는 이야기’로 치부되곤 한다.이러한 작품들의 가운데에 정유정의 소설이 있다.

하지만, 그 ‘단번’의 시간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소설을 읽는 동안에도, 그리고 읽은 후에도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그 단번의 강렬함에 대해서.


정유정의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는 모호한 그룹에 넣어 놓고 외면하는(주류문단이라고 하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지점과 많은 독자들이 그녀의 소설을 찾고 도무지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지점은 맞닿아 있다. 그것은 곧 그녀가 그려내는 ‘세계’ 그 자체이다.

정유정이 택한 정신병, 복수, 전염병 등의 소재는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 소설을 통해 익숙하게 접해온 것들이다. ‘익숙하다’는 것은 그만큼 인기가 보장되는 소재일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진부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위험이다.

하지만 정유정의 작품은 ‘진부하다’고 치부해버릴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녀가 사용하는 소재들이 분명 익숙하지만, 사실 그것은 생각해보면 주로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통해 접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소설<28>에서의 전염병을 생각할 때, 우리는 카프카의 <페스트>나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 영화 <나는 전설이다> 혹은 최근의 <월드워Z>를 떠올려 비교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소재들을 ‘한국소설’이라는 울타리 안으로 끌어와서 생각했을 때, 정유정의 작품들은 색달라지게 된다. 그녀가 소위 ‘장르 문학’에서 주로 다루는 소재들을 사용해왔다고 하더라도, 그 소재들은 오히려 철저히 배경을 만드는 것에서만 이용된다. 그녀의 작품들은 어떤 다른 소설보다도 비현실적인 상황에 놓인, 현실적인 인물들의, 비현실적인 선택과 행동에 초점을 맞춘,

극단적으로는 그것이 전부인 이야기들이다.

작가 정유정은 자신이 그리는 이야기 속 모든 인물들은 모두 그들만의 ‘지옥’을가지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인물은 그릴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 말은 곧, 그녀의 소설 속 세계는 ‘지옥’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지옥’이 가장 지옥답게 그려지는 작품은 <7년의 밤>과 <28>일 것이다. <7년의 밤>에서는 ‘세령마을’이, <28>에서는 ‘화양’이 곧 지옥이다.

나아가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지옥’ 속에서 각 인물들은 자신만의 ‘지옥’을 헤맨다.

그 지옥은 누군가에게는 복수이고, 누군가에게는 광기이며, 또 누군가에게는죄책감이다.

정유정의 두 작품은 모두 각자 마음의 지옥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지옥 속에 갇혔을 때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대개 소설들이 인물을 벼랑 끝으로 ‘모는’ 이야기라면, 정유정의 소설은 인물이 이미 벼랑 끝에 ‘서 있는’ 상태에서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운명은 때로 우리에게 감미로운 산들바람을 보내고 때론 따뜻한 태양빛을 선사하며, 때로는 삶의 계곡에 ‘불행’이라는 질품을 불어넣고 일상을 뒤흔든다. 우리는 최선의-적어도 그렇다고 판단한-선택으로 질풍을 피하거나 질풍에 맞서려 한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최선을 두고 최악의 패를 잡는 이해 못 할 상황도 빈번하게 벌어진다. (중략) 이 소설은 ‘그러나’에 관한 이야기다. 한순간의 실수로 인해 파멸의 질주를 멈출 수 없었던한 사내의 이야기이자, 누구에게나 있는 자기만의 지옥에 관한 이야기며,물러설 곳 없는 벼랑 끝에서 자신의 생을 걸어 지켜낸 ‘무엇’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 정유정, <7년의 밤>, 작가의 말



그녀의 이 말은 비단 <7년의밤>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소설 <28>에서도 각 인물들은 관련된 다른 인물들이나 스스로를 비극적 상황으로 몰아넣는 최악의 선택을한다.


최선의 패 앞에 서 있지만,

‘그러나’ 인물들은 최악의 패를 들고,

그것이 최악의 패인 것을 알게 되는 후에도

‘그러나’ 그 패를 놓지 않는다.


‘그러나’ 최악의 패를 선택하는 이유에는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선의 패를 잡을 때는 지켜낼 수 없는 ‘무엇’이.

어쩌면 최악의 패를 선택해야 하는 그 ‘무엇’ 자체가 바로 지옥은 아닐까.

정유정의 <7년의 밤>과<28>은 지옥이라 할 수 있는, 벗어날 수 없는 폐쇄적 공간 속에 놓인 인물들이 최악의 패를 잡는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의 이유, ‘무엇’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말로 알게 되는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