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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진 Aug 08. 2018

남과 나 사이, ㅁ에서 미움이 되기까지

8월의 이야기 셋

어릴 적부터 친구가 많았다. 집이라는 공간과 친구라는 감정을 공유해온 불알친구, 학교와 학원에서 함께 성장한 동기들까지. 피가 섞이지 않은 남이었지만 적어도 어느 한 공간에서는 가족과도 더 많은 감정과 시간을 공유한 사이였다. 그 시절 남과 나의 차이는 'ㅁ' 밖에 없었다.


나이를 먹은 우리는 각자 사무실에서 메신저를 써가며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일이 없는 주말에는 굳이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유없는 만남에 구태여 각종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의미를 부여했다. 휘발되고 있는 우정을 그저 지켜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원하리라 생각했던 친구들과의 우정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옅어지고 있었다. 단순히 나이를 점차 먹어감에 따라 교류가 적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부터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면서 남을 믿지 못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함께 해온 시간이 신뢰와 비례할법도 하지만 나는 친구들마저 믿지 못했다. 그중 몇몇에게는 '왜 먼저 연락을 하지 않지'라는 생각에 없던 실망감도 생겼다. 자연스레 내 휴대폰에 저장돼있던 많은 친구들은 하나 둘씩 완전 남이 됐다. 더불어 새로운 남과도 친구가 되지 못했다.


실망을 넘어 미움이 자라자 남의 장점이 단점으로 부각됐다.  쩝쩝거리며 밥을 먹고 입술 주위에 양념을 묻히는 털털함은 더러움이 됐다.  슬리퍼를 질질 끄는 것은 게을러 보였고 쓸데없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은 괜히 극혐이었다. 심지어 운전 중 핸들을 오른손으로만 잡는 것조차 좋게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관계가 이어지더라도 진척이 없기를 바랐다.


ㅁ이 미움으로 자라나기까지 난 관계를 방치하지 않았다. 유지에 관한 모든 책임만 친구에게 돌렸을 뿐. 한때 ㅁ이라는 공간 속에서 같이 투닥거리던 친구들은 남이 됐고, 그들에게도 나는 남이 됐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또 남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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