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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진 Aug 10. 2018

책상 위 가족사진

8월의 이야기 다섯

드라마 <미생> 속 오 과장


드라마 <미생>에 그런 장면이 나온다. 퇴사를 고민하던 오 과장이 사직서를 만지작거리다 다시 서랍에 넣는다. 그리고는 책상 위의 아들 사진을 보며 씨익 웃는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 책상 위 가족사진은 그리 낭만적인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러니까, 내가 어릴 때도 아빠는 종종 주말 출근을 했고, 나는 그런 아빠를 따라나서곤 했다. 그렇게 놀러간 사무실 한켠에는 아빠의 책상이 있었고, 그 책상 위에는 우리 가족사진이 있었다. 곰돌이 장식이 붙어있는 연보라색 액자. 그건, 내가 드린 첫 번째 어버이날 선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액자가 당당히 아빠 책상 위에 있는 것이 기뻤고, 집에 가기 전에는 책상 한가운데에 옮겨두곤 했더랬다.


그런데 막상 내가 일을 해보니, 드라마 속 오 과장의 씁쓸한 미소를 보고 있자니, 그 가족사진이 그리 낭만적인 존재는 아니었단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건, 아빠에게 일종의 사직서였는지 모른다. 진짜 사직서는 서랍 안에 넣어놓고 한 번씩 꺼내 만지작거리는 걸로 만족해야 하니까. 대신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다잡게 하는 합회사적(?) 사직서랄까.


아빠에게 부탁해 오늘 아침, 그 액자를 내 책상에 가져다놨다. 새벽 동이 트면 회사로, 다시 그곳에서 하루 종일 치이고, 밤이면 술로 마음을 달래야 집에 웃으며 올 수 있는. 20년 간 그 힘겨운 삶에 아빠를 묶어둔 족쇄를, 가장이라는 책임감을. 이제는 당당하게 물려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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