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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진 Aug 13. 2018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8월의 이야기 여섯 

  하루에 두 번 정도 샤워한다. 샴푸, 린스를 거쳐 바디 워시까지. 잠깐이나마 시원함을 누린 후 수건을 꺼내든다. 마지막 단계는 전신 거울 앞에 서기. 거품이 남아 있는지, 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려는 의도다. 코나 턱수염을 살펴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뚱아리까지 보인다. 그렇다, 거울 너머에 벌거벗은 내가 있다. 그쯤 되면 잠깐 멈추기도 한다. 근거 없는 자신감을 누릴 시간이다. 혹은 자기애를 표현하거나. ‘아직 젊군(대체 뭘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가).’ ‘이 정도(!)면 봐줄 만 하군.’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마치 욕실을 나오기 전 응당 하는 성스러운 의식처럼.

 요 여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른다. 샤워 횟수도 덩달아 성스러운 의식마저도 점점 늘어난다. 클렌징 폼으로 볼을 박박 문지를 때도, 샤워 타월로 온 몸을 구석구석 씻을 때도, 거울 속의 나를 확인했다. 나쁘지 않군. 그도 그럴 것이 어려서부터 운동을 했고, 덩치가 작다, 약해 보인다 같은 아쉬운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타고난 골격 덕에 마음만 먹으면 몸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항상 머리 속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 근 한두 달 나의 일과는 이랬다. 먹고 내내 앉아있다가 시간 되면 먹고 배부르면 누웠다가 잠이 든다. 그리고 일어나면 다음 날 아침. 계속되는 반복.

 그러던 저번 주말, 떠나게 됐다. 급작스런 여행이었다. 3시간을 달려 도착한 강원도 고성은 푸르렀다. 쏴아아아 파도 소리에 살랑살랑 부는 해풍이 나를 반겼다. 해수욕장 양 끝에는 가족들이 운집해 있었고, 수심 깊은 가운데에선 서핑 강습이 한창이었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트렁크 바람에 맨발로 모래를 밟고 있었다. 많이 참아왔던 것일까. 튜브까지 빌려서 뛰고 또 뛰고 시간가는 줄 몰랐다. 즐거웠다. 이게 바캉스구나.

 돌아오는 길, 아직 성수기라 돌아오는 버스가 꽤나 더뎠다. 눈을 감아도 잠이 안 와 결국은 주위에서 찍어준 사진을 정리하기로 했다. 탁 트인 전경, 에메랄드 빛 바다, 유유자적한 갈매기, 그리고 트렁크 바람의 내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사진 속의 나는 거울로 본 나와 조금 달랐다. 옆구리가 튀어 나온 모양새가 흡사 풍선 삐져나온 것 같았다. 어라, 내가 이렇게 살이 쪘었나. 다음 사진도 나의 반 누드 사진. 별 다르지 않다. 전형적인 배 나온 아저씨. 여름 내내 먹고 자고 했던 나의 모습이 새삼 떠올랐다. 그리고 비로소 백미러 속 내 얼굴과 마주쳤다. 그리고 그 밑에는 한 마디가.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게 다가온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었다. 거울을 통해 보는 나와 다른 사람이 찍어준 나의 차이, 딱 그만큼의 차이였다. 거울은 나를 가늠하게 해 주는 훌륭한 도구다. 그러나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아니었구나.

 팔굽혀 펴기, 윗몸 일으키기, 그리고 스트레칭. 빈 시간에 새로운 동작을 채웠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이 날씨에 격렬한 운동은 아직 엄두가 안 난다. 그래도 실망스러운 나의 몸뚱아리를 두고 볼 자신도 없다. 그래서 나름 몸을 관리하기로 했다. 거울에 보이는 것과 다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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