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이야기 일곱
26번. 정확하게 스무 번하고도 여섯 번 더. 내 개복치가 죽었다. 2주 동안 26번 죽었으니까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죽은 셈. 그러니까 이건 게임 이야기다.
“살아남아라 개복치” 게임은 ‘3억 마리 동료들은 모두 죽었다’란 오프닝으로 시작한다. 실제로 스트레스에 취약해 잘 죽고 마는 물고기 개복치를 모티브로 만든 게임이다. 익히 알려진 명성처럼 게임에서도 개복치는 참 잘 죽는다.
2014년쯤 대유행이던 게임을 다시 찾았다. 누군가 하던 걸 보고 다운받았는데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이만한 게 없다. 모험을 하고, 먹이를 먹을수록 개복치는 커진다. 오래된 전자음 소리를 내며 뿅뿅 새우를 먹고, 뿅뿅뿅 더 크게 진화할 때면 그냥 좋다. 아무 생각도 안 들고 그저 뿅뿅뿅. 문제는 새로운 모험을 시도할 때마다, 새로운 먹이를 제공할 때마다 ‘돌연사’가 불가피하단 사실이다.
예컨대 ‘바다거북아, 안녕’ 이란 모험이 있다. 난이도 5번째로 모험에 성공하면 한 번에 75.6kg이나 커진다. 그런데 모험을 처음 떠나면 생존확률이 50%다. 결국 죽는단 말이다. 돈을 모아 새로운 모험을 개방하면 보상은 더 커지지만, ‘돌연사’ 확률도 높아지는 셈이다. 먹이도 마찬가지다. 해파리 먹이를 먹다 비닐봉지를 잘못 먹어 죽고, 새우를 새로운 먹이로 개방하면 껍질에 걸려 죽고, 돈을 모아 게를 먹이로 주면 게 다리가 개복치 내장을 찔러 죽인다. 고름이 생긴다나.
그럼에도 어째서 스물여섯 번째 개복치를 키우고 있냐고 묻는다면, 개복치가 부러워서다. 개복치는 죽을수록 강해진다. ‘바다거북아, 안녕’ 모험에서 한번 죽고 나면 생존확률이 75%로 올라간다. 그다음은 95%, 99%. 그러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죽을수록 살 확률이 커진다. 뿐만 아니라 한 번 죽으면 ‘체중 보너스’가 더해져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 죽을 때마다 돈도 생긴다. 더 많이 커진 상태에서 죽으면 돈도 더 많이 주는 식이다. 죽을수록 강해진다는 걸 깨닫고 나니 ‘돌연사’가 반가울 때도 있다.
아, 이처럼 실패해도 괜찮은 삶이라니. 개복치 게임을 세상으로 따지면 ‘사회 안전망’이 끝내준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고, 실패한 경험은 오히려 밑거름이 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선 개나 줘도 될법한 말이지만, 개복치 세상은 실제로 그렇다. 그러니까 언젠간 끝까지 살아남아 개복치 끝판왕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가능하다.
게다가 이렇게 안전망이 보장된 세계에선 선택과 설계도 가능하다. 새로운 모험과 먹이를 개방해 위험을 감수하되 빠르게 클 것인지, 느리지만 생존확률 99%를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성장할 것이지. 온전한 선택의 영역이다. 내가 사는 세상은 선택은커녕, 미래는커녕,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사회에서 오직 도태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무는 수밖에 없는 데 말이다. ‘꾸준히 조금씩’을 되뇌며 일상적으로 불안해하든가, ‘일확천금, 인생 한방’을 지르며 낭떠러지를 곁에 두든가, 어찌 됐든 걱정스런 선택지 밖에 없다.
3663.1kg. 3톤 하고도 663kg. 내 폰 속에서 헤엄치는 개복치의 최대 무게다. ‘수족관 주인’까지 올랐던 개복치는 또다시 죽어 ‘젊은이’ 개복치가 됐다. 그러나 언젠가는 ‘?????’로 표시되어 있는 최고 개복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포기하지만 않으면 분명 오를 수 있다. 그것도 몇 번이고. 훌륭하게 큰 개복치의 엔딩을 보고 나면 왠지 내 일상에도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다. 아무튼.
아, 개복치는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