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이야기 여덟
#1 엄마가 안방에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큰 탓에 그녀의 목소리는 거실을 넘어 내 방까지 넘어왔다. 워낙 흔한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다. 엿듣는 것도 도둑이 되는 것 같아 외면하려 했다. 그러나 대화 주제가 '나'에 관한 것을 알게 된 뒤로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애가 글쎄~. 선물을 사왔더라고요. 엄청 비싼 것 같은데 무슨 돈이 있다고 사온건지."
미소를 머금은 채 엄마가 말했다.
"지 쓸 돈도 부족할텐데 이렇게 엄마아빠를 챙기더라고요. 호호."
잠시 적막이 흐른 후 다시 엄마가 말을 이어갔다.
희한하게도 한 시간이 넘게 계속된 통화는 이런 식의 내용만 반복됐다. 사례만 바뀔 뿐 맥락은 여전했다. 마치 '내 아들은 효자고, 그 효자는 내 아들이다'라는 것처럼. 아마 수화기 너머에 있는 사람도 자식에 관한 얘기를 늘어놓았을 터. 덕분에 나는 효심 지극한 효자가 됐고, 반대쪽도 효심 지극한 자녀가 됐다.
#2 오후 11시가 넘었는데도 엄마는 티비 앞에 앉아있었다. 커피 한 잔에도 예민한 사람이 오후에 커피 두 컵을 마신 것이 화근이었다. 당연히 그녀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모도 마찬가지였나보다. 거실에 내려앉은 밤의 적막을 깨듯 엄마가 휴대폰을 들고 이모와 통화를 시작했다.
"언니, 잠이 안와서 전화했어. 뭐해?"
50넘는 세월을 함께한 자매는 그렇게 통화를 시작했다.
"나 오늘 낮에 약속이 있어서 나갔다 왔더니 얘가 청소랑 설거지를 다 해놨어. 빨래도 널어놓고."
무슨 얘기를 하나 싶었지만 엄마는 역시나 내 얘기로 포문을 열었다.
"회사 그만두고나서는 매일 아침마다 혼자 청소기 밀고 집안일도 다 해놓더라고. 엄마 어깨 아프지 말라고 매번 이러네. 호호."
호흡이 달릴법도 한데 엄마는 말을 쉬지 않았다. 마치 '빈틈없으니까 언니도 내 아들 효자라고 인정해'라는 듯이. 한참을 듣고만 있던 이모는 "맞아. 확실히 걔는 예전부터 착했어"라고 맞장구치며 엄마의 장단에 맞췄다. 그녀가 잠들 때까지.
나는 효자다.
엄마 말처럼 선물을 사다드린 적은 없다. 내가 쓸 돈이 부족한 건 맞지만 챙겨드린 기억도 없다. 청소랑 설거지도 마찬가지다. 날도 덥고 귀찮은 탓에 청소기는 밀지 않았지만 "오전에 밀었다"라고 둘러댔다. 설거지는 라면을 끓여먹을 냄비가 없어서 물로 헹궜을 뿐이고, 화장실 세면대에는 중간부터 짜여진 치약과 널부러진 칫솔이 자리해있다.
그래도 나는, 효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