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_하루의 단어
기다림은 기대와 대상에 의존한다.
살면서 수많은 기다림이 있었다. 오랫동안 준비했던 시험의 결과. 그 끝은 항상 좌절로 이어졌으나 지금 새로운 길을 낳았다. 언젠가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과의 재회. 만남의 순간까지 길었던 기다림은 내 일상과 함께했다. 머릿속을 과반수 넘게 지배하진 않았어도 어디 한 편에 계속 소중히 남았다. 그 귀중함은 드디어 만났을 때, 손을 꽉 붙들고 잘 살았냐는 인사를 나눴을 때야 사라졌다. 짧았던 만남과 헤어짐은 다시 기다림을 만들었다. 다시 일상의 한 편에 깃든 소중한 설렘.
물론 안타까운 기다림이 더 많았다.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답은 너무도 뻔했고 기다림은 생겨선 안 됐다. 하지만 대상의, 그때 그 순간 끔찍이도 머리통의 대부분을 짓눌러 버렸던 대상의 무게가 기다림을 만들어 버렸다. 한없이 영에 수렴하던 기대는 발휘하지 못했다. 나의 잘못과 모자람을 깨닫지 못하고 기다려 버렸다. 일상에 그 기다림을 욱여넣어 흐름 속에서 마모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그런 카테고리의 기다림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시간이 그토록 많이 흘렀는데도 왜 이 기다림 하나는 사라지지 않을까. 모자랐던 내 부분을 다른 조각으로 많이 채웠다고 믿었는데 이 기다림 앞에선 나는 아직도 모자라고 머무를 뿐이다. 흔적도 깊은 상흔처럼 남지 않았을 텐데 왜 이리도 작은 티끌이, 이 기다림을 만들어 내가 붙들고 있을지. 언제쯤 이 기다림을 끝낼 수 있을지.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때 그 서울에서의 순간을 기억한다. 하필 내가 지금 서울에 있어서일까. 같은 공간이 빚어내는 장면의 겹침은 잊었던 이 기다림을 불현듯 떠오르게 만들었다. 중요한 발표나 시험 결과를 기다리며 초조했던 심정과는 다른 이 기다림의 마음가짐은 미약하지만 분명히 존재감을 드러냈다. 언제까지 이 기다림을 품고 살 것이냐며.
서서히 선택의 순간이 다가옴을 느낀다. 이 기다림은, 그때의 그 사람이 만들었던 하염없는 이 기다림은 곧 끝을 맞이하리라. 기대는 진작에 영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