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알지 못했다.

EBS 나도 작가다 1차 공모전

by 서와란
그때는 시작인 줄 몰랐던 그림.

2017년 11월 1일.

그날도 그냥 어제와 같은 오늘이었다. 반복되는 일상이 싫지만 할 수 있는 일도, 하고 싶은 일도 없어 답답한 채로 시간만 보내고 있던 그냥 그런 날이었다.


주변이 어둑어둑 해질 무렵 큰 딸이 내일 수업 준비물로 낙엽을 주워가야 한단다. 일찍 말하지 않았다고 핀잔을 주며 낙엽을 주우러 둘이 나가는데 동생이 함께 따라 나온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으니 대충 주워서 빨리 가자고 했지만 두 자매는 예쁜 걸 주워야 한다며 느릿느릿 신중하게 고르고 있다. 왠지 모르게 그날따라 지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집에 와서 낙엽을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두 자매는 예쁘다며 재잘재잘거린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우리 딸들 오늘 참 예쁘네'라는 생각이 들었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예쁜 모습 사진으로 찍어뒀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 휴대폰 사진첩에서 그 사진을 발견했다. 때마침 내 주변엔 아이들이 놀다가 그대로 놓고 간 색연필과 종이가 있었고, 나도 모르게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그림 한 장으로 내 일상이 바뀌게 되었다는 걸....


다음날 아침.

"엄마? 이 그림 엄마가 그렸어요? 정말 예뻐요."

아이들은 그림을 보며 좋아해 줬고 그 이후로 아이들의 예쁜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문화센터 몇 달 다녀본 실력이라 그림은 단순했고, 스케치 정도에 불과했지만 아이들이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면 그만이란 생각으로 그렸었다. 부족해도 그림 그리는 순간순간이 즐거웠기에......


무료함으로 넘쳐나던 나의 시간은 그림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1일 1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린 그림들은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그림을 보는 그 자체가 좋았기 때문에 다른 분들이 눌러주시는 '좋아요'가 없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점점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늘어났고 그림에 조금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스케치 정도만 그렸던 그림은 색이 입혀졌고, 스토리가 더해지기 시작했다. 점점 그림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고, 그림 그리느라 잠자는 시간도 줄어갔지만 난 여전히 그림이 좋았다. 어쩌면 그리고 있는 내 모습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고민하고 집중하고 만족하는 내 모습이......


그러던 어느 날 지인에게 제안을 받았다.

"미술 모임을 하고 있는데 이번 전시 주제가 공감이라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함께 참여해 보지 않겠어요?" 정말 감사했지만 내 실력으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단번에 거절했다. 그렇게 그 전시는 넘어갔고 난 1일 1 그림을 실천하고 있었다. 몇 개월이 지나고 지인 분께서 또 연락을 주셨다.

"정말 괜찮으니까 우리랑 함께해요. 할 수 있어요"

왠지 이번엔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고 남편에게 상의를 했는데 남편은 좋은 기회라며 용기를 줬고 우연히 우리 얘기를 들은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엄마 전시회 해요? 그럼 화가 되는 거예요? 엄마 멋져요. 우리 반에 가서 자랑할래요" 너무도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며 한 번쯤은 용기를 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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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의 도전은 시작되었다.

그림 모임에 들어갔고, 전시회도 몇 차례 열렸고, 네이버 그라폴리오의 메인판에도 가끔 등장했다. 브런치를 통해 그림의 부족한 부분이 솔직한 스토리가 더해져 공감해주시는 분들도 늘어갔다.


알지 못했지만 그때가 시작이었던 것처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더 나은 내 모습의 또 다른 시작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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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와란 인스타그램

서와란 그라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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