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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힙스터 Jan 28. 2024

봄은 스스로 자란다

인생 첫 텃밭_3月_두 번째


우연한 발견

텃밭을 가꾸기 위해서는 흙 그리고 식물들을 길러낼 물이 꼭 필요하다.

텃밭 옆 할아버지 집 중정에는 예전에 쓰던 수도가 있지만 아무리 수도꼭지를 돌려봐도 물은 나오지 않았다. 이미 예상한 일이라 큰 고무통에 빗물을 담아 사용하는 방법을 염두하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도 주변을 파고 드러난 수도관을 만지작 거리고 이리저리 흔들어봤다. 그때 수도관이 툭 부러지면서 쏙 빠졌고 물이 확 쏟아 올랐다. 이미 땅 속에서 조금 망가진 수도관이 겨우내 얼어있다가 날이 풀리면서 녹았고 건드리니 부러진 것이다.


우연하게 큰 고민거리가 해결됐다. 우리 가족은 이렇게 물이 해결된 것은 할아버지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농사를 지어본 적도 없는데 해보겠다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귀여워 보이셨을 거라는 것이 이유다. 그렇게 가족들과 한바탕 웃었다.


수도를 고쳐보려고 이리저리 만지다 보니 새어 나오는 물이 사방으로 튄다. 햇빛은 따스한 3월이어도 아직 바람은 차다. 옷이 젖어 온몸이 꽁꽁 얼어도 아빠와 함께 인생 처음으로 동파방지동부전으로 교체하고 수돗가를 만들었다. 긴 호스를 연결해 밭까지 연결하면 끝! 이젠 물걱정은 없다!


좌) 수도 고치기 전, 우) 수도 고친 후




나의 필연, 틀밭

밭도 깨끗하게 치웠고 물도 해결됐다. 드디어 꿈꾸던 밭의 모습들을 현실화해 나가는 시간이 왔다. 인터넷에서 참고 사진들을 찾아보며 어떻게 만들지 행복한 고민을 했다.


세상에는 어쩜 이렇게 예쁜 밭들이 많을까? 밭과 정원에서도 취향이 드러나 있다. 아직까지 내가 텃밭의 취향을 논할만한 위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끌리는 것은 분명했다.


나는 틀밭에 관심이 많다. 식물이 자라는 구역이 확실하게 나누어지고 그래서 어떤 작물이 자라나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또 틀밭을 만드는 종류는 다양해서 밭마다 재료를 다르게 해서 만들 수도 있어서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틀밭을 만들고 꽃도 함께 혼재된 텃밭정원으로 꾸미기로 했다.


원하는 틀밭을 만들기 위한 자원은 충분했다. 할아버지 밭 근처에는 낮은 산과 숲이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알맞은 두께의 죽은 나무들이나 가지치기한 나무들을 하나 둘 모으기로 했다. 그다음 수레가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길을 만들고 밭의 자리를 선정했다. 밭의 모양은 사각형이 정석이지만 공간에 맞게 삼각형으로도 만들기로 한다. 예상으론 통나무틀밭으로도 충분히 동네에서 튀긴하지만 몇 개의 세모 덕분에 더더욱 그럴 듯하다. 그러한 점이 더 맘에 든다.


내 머릿속에서만 그리던 이미지를 실제로 구현해 내는 건 정말이지 즐거운 일이다.

틀밭... 나에게는 필연이었다.








봄 수집가

틀밭을 몇 개 만들었지만 비어있는 밭을 보고 있자니 허전하다. 봄인가 싶다가도 낮은 온도와 황량한 밭 풍경에 혼란스럽다. 그래도 밭 주변이 조금 푸릇해진 걸 보니 이런 날씨에도 자라는 식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고개를 내민 초록빛은 봄나물이었다. 추워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맘때쯤 밭을 초록빛으로 매년 밝혀줄 봄나물 군락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밭 근처에 자란 달래, 미나리, 참나물 등등 뿌리째 캐다가 밭 한쪽에 자리를 잡고 심어주었다. 또 미관을 위해 작은 돌로 영역을 만들었다. 번식력이 좋은 봄나물들에게 내년 봄을 맡겨보기로 했다. 벌써 다음 봄이 기다려진다.

 

캔 나물의 일부는 집으로 가져와 무쳐먹었다. ‘어떻게 이런 풀들을 무쳐먹을 기발한 생각을 했을까’하는 선조들의 아이디어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제철이라 맛은 물론이고 자연이 가까운 곳이라면 널리고 널려 양도 넉넉해 보관만 잘하면 한 해 내내 봄의 싱긋함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왜 어르신들이 배낭 메고 동네를 돌아다니시면서 봄나물을 모으셨는지 이해됐다. 나도 봄이 오면 주변의 다양한 봄을 모으러 다니는 수집가가 될 예정이다.



봄나물 존, 2023






설렘이 가득한 발걸음을 내디딘 3월이었다. 그야말로 겨우내 응축된 에너지가 폭발하는 시기였다. 봄나물도 나 역시도 그랬다. 손꼽아 기다렸던 봄이었던 만큼 힘껏 나아갔다.


딱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드디어 '시작'이다.




밭 전경,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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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힙스터]

"태어난 곳은 시골, 내 꿈은 힙스터"

시골의 일상을 그리고 담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삶과 마음이 따르는 행복을 실천하는 진정한 힙스터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Instragram : @countryside.hipster
e-mail : countryside.hips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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