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골힙스터 Feb 04. 2024

윤달해에 만난 인연

인생 첫 텃밭_4月

©시골힙스터




윤달해

나의 텃밭의 첫해인 2023년도는 윤달해이다. 앞집은 이번 해가 가기 전에 서둘러 새집을 짓고 우리는 서둘러 정리할 나무들을 찾았다. 가지치기하는 우리를 보면서 할머님들은 이번 해에 얼른 정리하라고 보채셨기 때문이다. ‘손 없는 날’에는 이장을 하고 나무를 베는 일을 하는데, 그 이유가 나쁜 귀신이 돌아다니지 않는 날이라 탈이 없다고 한다. 미신을 크게 믿는 건 아니지만 그런 말을 들은 이상, 혹시라도 나무를 베는 일에 탈이 날지도 모를 일이니 서두르기로 했다.




4월은 참 변덕쟁이다. 4월 초, 화사해지는 풍경과 한낮의 따사로움에 속아 갑자기 찾아오는 꽃샘추위를 잊어버렸다. 조급한 마음까지 더해, 이런 시기에 루꼴라와 바질을 밭에 옮겨 심어 버렸다. 갑자기 기온이 뚝하고 떨어져 버렸다. 최저기온이 0도를 웃도는 추운 날씨에 새싹들을 사지에 몰았던 것이다. 결국 열심히 몇 주 가량 키우던 루꼴라와 바질은 모두 얼어 죽었다. 추위에 떠는 식물들이 보랏빛으로 변한다는 사실도, 바질과 루꼴라가 추위에 유난히 약한 허브라는 것을 글이 아닌 실제로 경험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큰 실패였지만 가장 쓰디쓴 수확이었다.

윤달 해라 그럴까. 유난히 겨울이 길게 느껴진다.




추위에 시든 바질, 2023






채워지는 밭

4월 중순이 되니 하루 최저온도도 올라가면서 점점 따뜻해진다. 지금이라도 씨를 뿌리면 바질과 루꼴라는 제때 수확이 가능하다고 말해준 지인의 말에, 빠르게 밭에 직파했다. 그리고 다락방에서 준비를 마친 나머지 허브와 꽃들을 데려와 심을 차례다.


카모마일, 레몬밤, 민트, 타임, 로즈메리, 타임, 수레국화, 금잔화, 조개꽃 등은 아주심기를 마쳤고 딜은 직파가 좋다기에 그렇게 했다. 허브 새싹은 잡초 새싹과 구별하기가 참으로 편했다. 허브들은 대부분 특유의 향을 가지고 있어 새싹에 살짝 손을 댄 후 향을 맡아보면 된다. 작디작은 싹이라도 각자 자신의 향을 뽐낸다.

허브의 강한 자존감이 느껴진다. 작아도 자신으로 살아라.


각종 허브 아주심기, 2023





나의 텃밭 스승님

밭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좋은 인연이 생겼다. 어릴 적 이 동네에 살았을 때 뵈었던 동네 할머니들이시다. 드레스 입은 공주님 동생과 장난감 칼을 찬 기사인 내가 일요일 아침마다 온 동네를 쏘다녔다. 그때마다 환한 웃음으로 먼저 인사해 주셨던 할머니들. 그중에서도 옆 집에 사시는 할머니께서는 현재 우리 밭에 관심이 많으시다.

특이하게 생긴 밭을 만들고 ‘허.부’(할머니는 허브를 그렇게 발음하셨다)를 키우는 젊은 초보 농부를 귀엽게 보신듯하다. 내가 밭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으면 어느 틈에 오셔서 "오늘도 왔어?" 하시며 인사를 먼저 건네셨다. 또 시금치는 심었는지, 없으면 씨도 나눠주셨는데 '조금 늦었어도 지금이라도 뿌리면 길러 먹을 수 있다'는 말은 빼놓지 않으셨다.

4월, 나의 빈 밭을 채워준 첫 번째 작물은 종묘상에서 추천한 샐러드 6종(적겨자, 적상추, 청오크, 치커리, 청생채, 쑥갓) 모종과 할머니가 직접 채종 하신 시금치 씨앗이다. 시금치 씨는 아이보리 색에 뾰족뾰족 만지면 따가운 모양이다. “아! 따가워, 따가워.” 낄낄거리며 씨를 뿌렸다.

그렇게 자주 밭에 가다 보니 옆집할머니와 서로 안부를 물으며 밭의 상황들도 공유하게 되었다.



“물을 맨날 주는겨? 고만 줘도 댜. 가끔 줘도 잘 자라”


“낼은 비가 오니까 물 안 줘도 댜”


“싹은 났어? 안 났어? 아이고 쪼꼼 기다려봐”


"호박은 심었어? 자 이거 심어라. 길쭉한 거랑 뚱그런 거, 두 가지여"




옆집 할머니는 그렇게 나의 텃밭 스승님이 되었다.



샐러드 6종, 2023
시금치 새싹, 2023








시골힙스터의 텃밭 이야기는 유튜브에서 영상으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시골힙스터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 





[시골힙스터]

"태어난 곳은 시골, 내 꿈은 힙스터"

시골의 일상을 그리고 담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삶과 마음이 따르는 행복을 실천하는 진정한 힙스터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Instragram : @countryside.hipster
e-mail : countryside.hipster@gmail.com
이전 05화 봄은 스스로 자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