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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힙스터 Feb 11. 2024

영광의 5월

인생 첫 텃밭_5月_첫 번째

©시골힙스터







완연한 봄이 찾아왔고 밭은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 드디어 낮에는 따뜻하고 저녁에는 선선한, 야외활동 하기에 적합한 날씨다. 할아버지 집 뒤 정원에 꽃도 심고 밭일하다가 지치면 편히 쉴 수 있는 텐트도 만들었다. 낮에는 밭에서 일하고 어두워지면 장작불을 때 고기도 구워 먹고 논다. 집에서 밭까지는 걸어서 4-50분 정도이지만 날이 좋아 강아지 산책 겸 밭에 놀러 가기도 한다. 4월에 옮겨둔 모종들은 새로운 틀밭에 제법 적응한 듯하다.


그야말로 5월은 풍성하다. 직접 채소를 길러 먹는 진가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나날이 계속된다. 몇 년 사이에 값의 변동이 잦은 작물인 시금치나 상추 또는 루꼴라 같이 시골 마트에서는 구할 수 없는 허브를 길러서 먹으니 더 만족스럽다. 가끔 마트에 들르면 내가 기르는 작물들의 가격을 확인하면서 '얼마 어치의 채소를 수확했구나'하며 뿌듯함을 느끼는 재미도 있다. 많은 수확량은 아니어도 스스로 생산했다는 그 자체가 좋다.


아픈 손가락이었던 루꼴라와 바질은 4월에 재파종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쑥쑥 자랐고 텃밭 시작의 이유였던 루꼴라를 맛보는 영광을 누린 5월이기도 하다. 이런 영광을 누리게 된 가장 큰 공은 내가 아니다. 시들한 잎들도 살려내는 천금의 가치를 지닌 단비, 바로 봄비다.






봄비는 참 놀랍다. 봄비 한 번이면 작물의 성장력이 달라진다. 아무리 내가 많은 양의 물을 아침마다 골고루 뿌려준다 해도 깊은 땅 속까지 침투하지 못해 겉 흙만 젖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가끔 이른 아침마다 물을 주는 것이 귀찮아질 때가 있다. 그런 마음이 깊어지려 할 때쯤이면 어김없이 봄비가 내렸다. 봄비는 무슨 재주인지 깊은 곳까지도 촉촉하게 골고루 흙을 적셨다. 그러면 하루가 멀다 하고 싹들이 성장하기 바쁘다. 나의 일상 속에서 비 오는 날을 기다리게 될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래서 이번 계기로 미래의 언젠가 메마른 봄이 온다면 그것만큼 속상한 일이 없을 것 같다.








비가 내린 후엔 5월의 푸르름을 만끽할 수 있다.
5월의 할아버지 뒤정원, 2023








5월의 수확 작물

시금치

4월에 뿌린 시금치는 싹을 틔우고 더디게 성장하다가 5월이 되니 금방 수확할 수 있었다. 옆집할머니 말씀대로 무심한 듯 물은 자주 주지 않았지만 '언제 자라나...' 거의 맨날이고 가서 시금치를 심은 밭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라는 말을 듣고 열정이 끓어올랐기 때문이다. 분명 수확 전까지는 오래 걸린 것 같은데 한 달이 금방이다. 수확을 마친 시금치밭은 금세 다시 텅 비었다.


Tip!
• 물은 땅이 마른 것 같다 싶으면 준다.
• 싹이 트고 어느 정도 자라면 솎아준다. 솎아준 시금치는 조금이어도 맛있게 무쳐먹는다.
(솎아내기 : 파종 후, 일정한 간격에 따라 잘 자란 모종은 두고 나머지는 뽑아내는 것)
• 다 자란 시금치는 통째로 뽑아서 수확한다.





고수

밭 코너에 위치한 삼각형 밭에는 육묘파종을 했던 고수를 옮겨 심었다. 같은 날 심은 바질과 루꼴라는 죽었지만 고수는 추위에 보랏빛으로 변했다가 초록빛으로 점점 변했다. 추위라는 역경을 이겨낸 덕일까 따뜻해지자마자 급격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바질과 루꼴라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축 쳐져있던 나를 일으켜 세운 기특한 녀석이다.


수확하고 나니 소비량에 비해 고수를 너무 많이 심은 듯하다. 처음이라 양을 가늠하지 못한 탓일까. 쌀국수에 듬뿍 넣어보고, 무쳐보고, 튀겨보고, 쌈 싸 먹어보고, 전을 부쳐먹어도 도저히 녀석의 성장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심지어 고수의 향은 한국인들에게는 호불호가 강해서 지인들에게 선물하기에도 어려웠다. 그래서 다음 파종 시에는 수를 좀 줄이기로 했다.


Tip!
• 직파를 해도 적응력이 좋아 키우기 편하다.
• 한겨울만 아니면 추위에 강한 편이다.
• 물은 건조하지 않게 자주 주는 편이 좋다.
• 10-15cm 정도가 되면 수확이 가능하다.
고수밭, 2023
고수를 넣은 쌀국수, 2023




부추

몇 번이고 무너져도 다시 일어날 줄 아는 사람들을 잡초가 아닌 부추 같은 사람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부추는 어느 곳에서든 잘 자라고 잘려도 잘려도 계속 자라나는 대단한 생명력을 가졌다. 또 부추는 밥상 위의 효자다. 부추로 만드는 샐러드는 고기를 먹을 때 느끼함을 싹 잡아주고 기름 냄새가 풍기는 요리가 당기면 부추전만큼 간단한 것이 없다. 부추로 김치를 만들어 잘 익히면 아주 매력적인 숙성된 맛이 난다. 이건 부추만이 낼 수 있는 맛이다. 생으로 먹든 익혀먹든 숙성시켜 먹든 무엇이든 최고의 맛으로 보답하는 엄청난 재능을 타고났다. 텃밭의 필수 작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키우기도 쉬워 나와 같은 왕초보 농부에게는 수확의 기쁨을 자주 선사하는 작물이다. 적당한 크기가 되면 뿌리는 두고 이파리를 잘 잘라서 먹으면 그만이다.







샐러드 6종(적겨자, 적상추, 청오크, 치커리, 청생채, 쑥갓)

심어둔 샐러드 6종은 5월이 되니 먹기 좋은 크기로 자라 수확하기만 하면 바구니 한가득이다. 직접 기른 것이 이유일지는 모르겠지만 마트에서 산 것보다 싱싱한 거 같고 보관 기간도 길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소비량이 수확속도를 맞추지 못할 때면 이집저집 선물로 주기도 했다. 활용도가 다양해 샐러드 채소는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좋다. 받기만 하던 입장이었다가 주는 입장이 되니 기분이 새롭다. 마치 묻지도 않은 질문에 '저 텃밭 해요'라는 답을 대신하는 것 같다.


Tip!
• 빠른 수확을 위해서는 모종을 심는 것이 편하다. 그리고 충분히 자랄 때까지 기다린다.
• 수분관리가 중요하다. 물은 자주 충분히 준다.
• 수확 후 물을 주는 것이 좋다.
• 수확하기 적당한 크기가 되었을 때 겉잎부터 따준다.
5월의 쌈채소 6종, 2023
샐러드 6종을 활용한 요리, 2023








방풍나물

옆집 할머니께서 봄나물을 쪼르륵 심어둔 봄나물 존(spring greens zone)을 보시곤 할머니 밭 구석에 자라던 남쪽에서 올라온 방풍나물 몇 개를 캐주셨다. 봄나물 존에 새로운 나물이 이주했다.

5월이 되자 방풍잎은, 조금 과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호박잎 수준으로 커졌다. 상추가 지겨워질 때면 방풍나물로 쌈 싸 먹기도 했다. 깻잎과 비슷하게 특이한데 맛과 향인데 조금 더 날카롭고 밝은 식감, 맛과 향을 가졌다. 무침으로 해 먹어도 맛있는 매력적인 방풍나물이다.


Tip!
•  물도 자주 주어야 하고 배수도 잘되는 곳에서 잘 자란다.
방풍나물잎이 커지는 과정






루꼴라

주인공은 언제나 마지막에 등장한다. 4월 중순에 다시 직파한 루꼴라는 5월의 끝이 돼서야 수확할 수 있었다. 적당한 크기와 푸르름으로 물든 루꼴라를 보고 설레는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조심스레 한 잎 한 잎 떼어낼 때마다 퍼지는 루꼴라의 향... 감동 그 자체다. 텃밭 시작의 이유이기도 했던 루꼴라를 직접 기르게 되다니!

나는 루꼴라의 고소함을 참으로 좋아한다. 샌드위치든 샐러드든 어느 곳에 있어도 루꼴라의 고소함을 바로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독보적인 고소함을 가졌다. 특유의 맛이 있지만 어느 요리에도 잘 어울려 많은 사랑을 받는 허브 중 하나일 것이다. 루꼴라는 어쩜 이름도 루꼴라다.


Tip!
• 발아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나 같은 초보들이 좋아하는 발아 속도다.
• 추위에 엄청 약하다. 최저기온이 영하를 웃도는 시기는 위험하다.
• 햇빛과 물을 좋아하고 배수가 잘되는 곳에서 잘 자란다.
• 잎이 많이 커지면 그만큼 억세 지는데, 고소한 맛과 향을 줄어들고 쓴맛이 강해진다. 잎이 어릴 때 부지런히 수확해 섭취하는 것이 좋다.


좌)직파 후 25일, 우)직파 후38일, 2023
좌) 루꼴라 샌드위치, 우) 루꼴라 피자, 2023






5월의 텃밭,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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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힙스터]

"태어난 곳은 시골, 내 꿈은 힙스터"

시골의 일상을 그리고 담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삶과 마음이 따르는 행복을 실천하는 진정한 힙스터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instagram : @countryside.hipster
e-mail : countryside.hips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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