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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힙스터 Feb 25. 2024

고구마는 줄기를 심는다

인생 첫 텃밭_6月_첫 번째


어느새 텃밭은 허브와 작물로 채워지고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봄비가 시원하게 내린 후엔 작물이 잘 자라는 만큼 무성해지는 잡초도 푸르르다. 꽤나 더워진 한낮, 조금이나마 편한 작업을 위해 선선한 저녁에 밭으로 나섰다. 밭에 도착하면 비장하게 장갑을 끼고, 보다 자연스러워진 몸짓으로 호미와 삽 그리고 쇠스랑을 챙긴다. 자, 이제 고구마를 심을 것이다.



직접 기른 고구마 먹고 싶은데...

허브밭을 꿈꿨는데 어쩌다가 고구마까지 심게 되었을까. 밭을 꾸미는데 많은 도움을 주시는 감사한 분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바로 부모님이다. 두 분 모두 농사를 지으시진 않으셨지만 어릴 적 어깨너머 배움이 꽤 도움이 됐다. '이맘때쯤이면 그랬던 것 같다'라는 작은 퍼즐을 던져주시는데 나는 그러면 책이나 인터넷을 활용해 정보를 얻고 그 시기에 맞춰 농사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이 재밌다.

그러던 어느 날, "직접 기른 고구마를 먹어보고 싶어"라는 아빠의 말씀. 그래서 계획에도 없던 고구마를 기르기로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고구마는 감자처럼 고구마를 심어야 하는 줄 알았다.



꿀고구마 15개, 속노랑고구마 15개    

밭에 도착하기 전 종묘상에 잠시 들러 심을 고구마를 사기로 했다. 여기저기서 추천을 받은 고구마 품종은 꿀고구마였다. 나는 강화도의 특산물인 속노랑고구마를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절충해 꿀고구마 15개, 속노랑고구마 15개를 심기로 했다. 첫해니까 이것저것 시험 삼아해 보면 좋을 것 같아서다.

고구마는 보통 5월에 많이들 심고 6월 초에는 거의 끝물이라 한다. 난 애초에 심을 생각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조금 늦었다. 남들보다 늦게 심었으니 남들보다 조금 늦게 캐면 그만이다라는 심정으로 종묘상에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꿀고구마 15개, 속노랑고구마 15개 주세요."

나의 주문에 종묘상 아주머니께서 입가에 미소가 번지시더니 말씀하셨다.

"고구마는 단으로 팔아요. 낱개로는 안 팔아요."

"아... 그래요? 한 단에 몇 갠데요?"

"100개요."

"네? 100개요? 어.... 음.... 그러면 꿀고구마로 한 단 주세요."


고구마를 한 단씩만 판매하고 또 한 단에 100개였던 것도 놀라웠지만 박스가 아닌 비닐에 기다란 줄기를 담아 주시는 것이 가장 놀라웠다. 고구마는 당연하게 감자처럼 고구마를 심는 줄 알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씨고구마를 심기도하지만 종묘상에서 판매하는 고구마 모종은 모두 줄기를 심어야 했다.




고구마의 자리

고구마는 보통 5월이나 6월쯤 심어 9월 초부터 시작해 서리 내리기 전까지 수확을 마쳐야 하니 꽤 오랜 시간 밭에 자리한다. 다른 작물에 방해되지 않고 밭에서 잘 성장할 자리할 곳을 마련해줘야 한다. 어디가 좋을지 고민하던 중 발길이 적게 닿는 밭의 끝자락에 길게 심기로 한다. 봄비가 내린 이후로 빈 땅을 메워 찬 잡초들을 조금 정리하고 살짝 삐뚤어진 두둑의 모양을 다시 잡았다. 사온 고구마 줄기 100개나 심으려면 밭을 길게 가로지르는 두둑이 필요했다. 나의 밭에서 가장 긴 두둑이 될듯하다.






고구마의 두둑은 두둑하게

어머니 친구 분의 아버지께서 작년에 고구마를 심으셨는데 수확하시는 걸 포기하셨다는 소리를 들었다. 애써 키운 고구마를 포기하다니 무슨 말인가 했다. 알고 보니 두둑을 쌓는 작업이 귀찮아 그냥 땅만 뒤집고 고구마를 심으셨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흙이 단단해졌고 낮은 두둑 밑에 자리 잡은 고구마들을 캐내는 것은 맨땅을 삽으로 파내는 것이 말도 안 되게 힘에 부치는 일이라는 것을 예상을 못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엄마 친구분께서 꼭 고구마 밭의 두둑은 꼭 높고 두둑하게 만들어야 캐내기 쉽다고 당부하셨다.

애써 기른 고구마를 캐내지 못하는 그런 불상사를 예방하기 위해 두둑을 높게 쌓기로 한다. 그려놓은 라인을 따라 최대한 땅을 깊게 파 고랑을 만들었고 그 흙을 덮어 두둑을 만들었다. 점차 고구마에 적합한 이랑의 모습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흙을 뒤집다 보니 해는 졌고 작업을 이어나가기엔 어두워져 나머지 작업은 다음 날로 미뤘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두둑 쌓기 작업







인생 첫 멀칭

어두워 보이지 않았던 다음 날 확인한 두둑

 

다음 날 해가 밝자마자 밭으로 향했다. 두둑한 두둑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고구마 밭을 만들기로 하면서 찾아봤던 고구마 심는 법들.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작업을 해야 했다. 바로 멀칭이다. 이 작업은 농법 중에서도 대단한 발견이라 했다.

땅의 표면을 피복하여 토양의 수분 유지, 지온을 조절 게다가 잡초까지 억제하는 올인원 해결방안이었다. 물론 멀칭을 하지 않고도 고구마를 키우는 분들도 있지만 관리가 어렵기에 멀칭하는 것을 권장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방법이지만 멀칭하는 것을 망설인 이유는 많은 양의 비닐을 써야 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멀칭이라는 것은 비닐이 아니고 볏짚이나 작물의 잔사 등을 사용해도 되지만 당시로선 구할 수가 없는 것들이었다. 아는 분 중에 논농사를 지으시는 분들도 없었고 농사의 첫해라 구할 요령도 없었기에 말이다.

깊은 망설임 끝에 비닐을 사용하기로 했다. 방법을 찾지 못한 아쉬움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지만 다음 해에는 더 나은 방법을 찾고 말겠다며 다짐하며 두둑에 물을 듬뿍 뿌리기 시작했다. 멀칭 전 토양에 수분을 공급하는 작업이다. 두둑 깊은 곳까지 적시려면 꽤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다.





물을 잔뜩 머금은 촉촉한 두둑이 되었으면 멀칭을 위한 재료들을 준비한다. 비닐을 끝을 한쪽에서 잡고 말려있는 비닐을 펴 나가 두둑을 덮으면 된다. 그리고 주변의 흙으로 덮인 비닐의 끝을 고정하면 끝이다. 방법은 간단하나 노동력이 꽤 요구되는 작업이다. 혼자서는 어렵고 둘셋이면 빠르게 일을 끝낼 수 있다.



고구마밭 만들기
1. 넓이는 70cm 정도 두둑의 높이는 25~30cm 정도로 두둑을 널찍하고 두둑하게 만든다.
2. 멀칭 전 두둑에 물을 듬뿍 뿌린다
3. 비닐이나 볏짚을 덮고 고정한다.


멀칭 작업을 마친 고구마 두둑






고구마는 줄기를 심는다

고구마 심는 날은 비가 오는 날이나 비가 내리기 전날이 좋다고 한다. 수분이 충분하면 옮겨 심은 모종이 활착이 잘 되기 때문도 있다. 아쉽게도 일기예보에는 비소식은 없었다. 그럼에도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냥 심기로 한다.


고구마는 줄기를 심는다는 것도 독특했지만 심는 방법 역시 특이했다. 꼬챙이를 이용해서 줄기를 잡은 후 수직으로 심는 것이 아닌 최대한 지면을 따라 수평으로 심어야 한다. 이 새로운 작업을 위해 온 가족이 모였다. 100개는 아무래도 우리 가족에게는 큰 작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각자 고구마 심는 법을 다양한 방법으로 익혀왔다.


멀칭 하는 것에 몰두한 아빠, 고구마 줄기를 심는 것에 몰두한 나, 심은 후 흙을 덮어서 물을 줘야 한다는 것에 몰두한 엄마, "나 뭐 하면 돼?"라고 옆에서 쫓아다니며 할 일을 찾아다니는 동생들 그리고 이리저리 신나게 뛰어다니는 강아지 록키까지. 각자가 집중한 부분들을 합치니 100개의 고구마 심기는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남은 고구마 줄기는 버리지 않고 한쪽에 통째로 심었다. 시간이 지나며 두둑에 심어둔 고구마가 죽을 때도 있는데 그때 남은 고구마 줄기를 다시 심으면 된다.


고구마 심기
•  심는 시기 :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쯤 (씨고구마는 3월 중순에서 4월 상순으로 더 이름)
•  간격 : 약 25cm 정도로 간격으로 심는다.
•  심는 방법 :
1. 꼬챙이를 활용해 수평심기. 지표면에서 2~3cm 얕은 곳에 수평으로 심는다.
2. 심은 후 멀칭 위에 흙으로 덮는다.
3. 물을 뿌린다.
4. 남은 고구마 줄기는 한쪽에 모아 심는다. 추후에 두둑에 심은 고구마 줄기 중 죽은 것들을 대체해 심을 수 있다.


꼬챙이로 고구마 줄기를 수평으로 심는다.
심은 고구마에 흙을 덮고 물을 듬뿍 준다
한쪽에 모아 심은 고구마 줄기



 



밭을 시작한 이후로 가장 큰 거사를 치렀다. 지금까지 밭 중 가장 긴 두둑을 만들었고 멀칭을 했고 온 가족이 모여 100개나 되는 고구마를 심었다. 가장 큰 노동력을 요구하는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할 수 있던 이유는 분명했다.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가족이 모두 모여 왁자지껄 흙을 만지며 자연 속에서 땀을 흘렸다는 것. 모든 것이 감사하다. 또 밭에서의 앞으로 날들이 기대가 된다.












시골힙스터의 텃밭 이야기는 유튜브에서 영상으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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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힙스터]

"태어난 곳은 시골, 내 꿈은 힙스터"

시골의 일상을 그리고 담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삶과 마음이 따르는 행복을 실천하는 진정한 힙스터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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