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텃밭_5月_두 번째
"도대체 봄은 언제 오는 거야!"라고 입으로 뱉을 때쯤이면 이미 봄의 끝자락이다. 한낮은 여름인가 착각할 정도로 해가 쨍쨍이라 텃밭 작업은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에 해야 지치지 않는다. 5월에 맘껏 느낀 수확의 기쁨을 이어가기 위해선 다가올 여름을 준비해야 한다.
허브밭으로 만들겠다는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다양한 작물로 밭을 채우기로 한다. 허브는 대부분 장마 전까지 모두 수확과 채종을 마치기 때문에 그 이후가 너무 아쉬울 것 같아서다. 이왕 시작한 텃밭이니만큼 최대한 많은 걸 경험해기로 했다.
현재 어떤 작물들을 심어야 할지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하다. 물론 검색하거나 챗 GTP에게 묻는 방법도 있지만 가장 확실한 건 옆집 할머니와 마주치고 인사를 나누는 것이다. 할머니의 안부인사는 밭의 안부를 묻는 것과도 같다. 그러면 이때다 싶어 "할머니, 지금 뭐 심어야 해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할머니께서는 “이리 따라와. 지금은 이거이 심어야지.”라고 답하시고 발걸음을 재촉하신다.
5월에 심은 작물
오이
밭에서 꼼지락 거리고 있는데 "얼른 이리 좀 와봐!!!! 담을 거 가지고!!!" 저 멀리 옆집할머니께서 소리치셨다. 무슨 일일까? 바구니를 들고 냉큼 할머니 밭으로 향했다. 작은 비닐하우스에서 어서 오라 손짓하셨다. 들어가 보니 할머니께서 호미를 들고 계셨다.
“그릇도 꽤 큰 것도 가꼬와따”
“얘가 제일 편해요.”
“그기 제일 편햐?”
“네, 얘 밖에 없어요”
“오이가 물 줘서 질어”
“우와 오이는 이렇게 생겼구나! 저 처음 봐요”
“이기 첨 봐?”
“오이 이파리를 처음 봐요”
“그르게. 심지않아씨까는 몰루지. 다덜 그러치. 뭘 아냐…
전에 논에 갔는데 벼도 몰루는 아이덜이
‘그이 뭐예요?‘ 이래서
‘너 쌀밥 먹지? 이거 쌀밥 먹는 벼야!’ 이러니까
‘그래요?’ 이런다니까... 이거면 돼?"
"네!"
"야는 이르케 기둥 같은 거 세워서 타고 올라가게 만들어줘"
"아.. 네! 감사합니다!"
오이 모종 몇 개를 들고는 냉큼 밭으로 왔다. 일단 눈에 보이는 아무 곳에 옮겨 심었다. 시간이 나면 서둘러 지지대를 세우기로 한다.
호박
“세 개는 똥그란 거고 두 개는 기다란 거야.”
오이와 함께 할머니께서 주신 모종은 두 종류의 호박이었다. 넝쿨식물의 대명사인 오이와 호박을 기르게되다니…
섣부르지만, 심기도 전에 호박잎을 쪄먹을 생각을 했다. 시골밥상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된장에 호박잎쌈이다. 뜨거운 물에 쪄서 축축하지만 폭폭 한 식감의 호박잎을 한입 가득 먹으면 시골에 있음을 실감하곤 했다. 그래서 도시살이를 했을 적 문득 생각났던 음식이다.
밭에 나는 많은 작물 대부분이 그렇듯 버릴 게 없다. 호박도 마찬가지다. 잎도 먹고 줄기도 먹고 열매인 호박까지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저기 경사진 데에 심으면 댜. 구멍 파서 물 듬뿍 주구 심어.
할머니께서 일러주신 대로 밭 한쪽이 언덕이라 그쪽에 호박을 심기로 했다. 땅을 파 물을 듬뿍 붓고 조금 흡수가 되었다 싶으면 모종을 심는다. 그리고 ‘작은 이파리가 점점 커지고 줄기를 여기저기 신나게 뻗어나가다 보면 언젠가 호박이 주렁주렁 열리는 날이 언젠간 오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물을 듬뿍 주면 끝이다.
옥수수
한 알 한 알 뜯어먹는 재미가 있는 옥수수! 옥수수! 외쳐대는 가족들을 위해 심기로 한다. 옥수수는 밭에서도 키가 아주 큰 작물이다.
작은 밭이라면 추천하지 않는 작물 중 하나인데, 첫 번째 이유는 키가 커서 상대적으로 작은 작물에게 필요한 빛을 가릴 수 있고 두 번째 이유는 투자시간 대비 수확량이 적다는 것이다. 봄에 심어 가을에 수확하는데 옥수수나무 하나에 많아야 고작 2-3개 정도의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이번 연도에는 스무 개 정도의 옥수수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열 개의 모종을 시험 삼아 심어 보고 괜찮다 싶으면 내년에는 수를 늘리기로 한다.
고추
종묘상 앞은 고추를 심으려는 농부들로 분주하다. 트럭 가득 고추 모종을 사가는 아저씨, 모종을 이리저리 살피시는 할머니...
보통의 시골 농부라면 벌써부터 김장을 대비해 고추를 가득 심으려 모종을 잔뜩 산다. 그러나 병에 잘 걸리는 고추를 초보 농부인 내가 감당하기란 아무래도 어렵다. 그래서 가능한 선에서 심기로 한다.
주렁주렁 열릴 것이라는 가정하에 총 다섯 개의 모종에 청양고추와 꽈리고추 두 가지 품종을 구매했다.
고추 모종을 심는 방법은 양옆으로 40~50cm 정도로 넓은 간격을 유지해 심고 크기가 커지면 지지대가 필요한 작물이라 초반에 손이 꽤 가는 편이다.
토마토
바질과의 환상의 궁합인 토마토는 필수다. 동반식물인 바질과 함께 심으면 좋지만 이미 바질 밭은 이미 꽉 차버렸다. 그래서 토마토는 고추와 함께 심기로 했다. 만들어놓은 틀밭도 가득 찼기에 이번 기회에 함께 키워보기로 했다.
토마토도 고추와 마찬가지로 넓은 간격 유지해 심고 지지대가 필요한 작물이고 과습과 건조에 약해 물 주기와 물 빠짐 관리에 철저하게 해야 한다. 예민한 두 작물을 함께 같은 자리에서 관리하면 좋을듯하다.
이제는 밭을 고르는 일도, 모종을 심는 일도 꽤나 익숙해졌다. 수확의 기쁨도 느끼고 곧 다가올 여름을 대비해 새로운 작물들을 심는 손이 참으로 바쁜 5월이었다. 무엇보다도 계절을 준비한다는 것이 참으로 낯선 일이지만 절기를 맘껏 느끼며 살아가는 삶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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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힙스터]
"태어난 곳은 시골, 내 꿈은 힙스터"
시골의 일상을 그리고 담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삶과 마음이 따르는 행복을 실천하는 진정한 힙스터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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