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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힙스터 Mar 03. 2024

꽃을 피우는 텃밭

인생 첫 텃밭_6月_두 번째



이른 아침, 비워진 마음으로 밭에 도착한다. 푸르름이 당연해질 정도로 익숙하다. 밭 한쪽에 위치한 커다란 고무통을 열고 안에서 텅 빈 바구니를 꺼낸다. 터벅터벅. 밭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어느새 온몸이 깨어나고 바구니에는 수확한 작물이 한가득이다. 눈이 반짝인다. 뿌듯함이다.

다음엔 바닥에 길게 늘어진 호스를 들고 작물에게 물을 준다. 온몸을 감싼 맑은 정신으로 작물에게 안부를 묻는다. 벌레가 너를 탐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낮의 빛이 뜨겁지는 않았는지, 간밤에 목은 마르지 않았는지와 같은 심심하지만 섬세한 질문을 던진다.  

요즘에 자길 탐하는 벌레가 많아 조금은 갉아먹혔지만 그건 맛이 좋은 이유였을 거라고. 날은 많이 더워졌고 빛도 강해졌고 그래서 앞으로도 귀찮겠지만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주어야 물을 머금은 젖은 잎이 타는 일도 없을 거라고 답한다.





다채로움을 만드는 일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다양한 채도의 초록빛은 물론이고 결실이라는 단어가 이른 느낌이지만 꽃망울이 맺힌 작물이 늘었다. 노랗고 하얗고 붉고 푸른 빛의 꽃을 터트릴 때를 기다리고 있다. 나역시도 이때를 기다렸다. 작물만 있는 밭이 아닌 꽃도 있는 텃밭정원을 말이다. 먹지 못하는 꽃이 텃밭에 있으면 무슨 소용이냐 싶지만 무엇이든 생산적이라는 것이 최고라 생각하는 이 시대의 지루함을 반박하고 싶다.


"시골에서 힙스터가 될 거야. 그래서 고향에서 쭉 이것저것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재밌게 살아보려고"

"이제 우린 안 젊어. 이제 어린애들이 꿰차고 올라온다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려고."


한 친구와 나눈 이야기. 당시를 설명하자면 일을 한창 하다가 공부가 하고 싶어 늦은 나이에 유학 다녀온 나였다. 나는 흔히 말하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꿈 속에 사는 인간이고 친구는 '현실'을 잘 받아들이는 똑똑한 요즘애들이었던 거다. 물론 걱정돼서 건넨 말이었지만 참으로 미웠다. 그리곤 이내 그 마음을 접었다.

'이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는 거니까. 다 똑같으면 서로 돋보이지 못하니까 말이야.'

너는 너의 삶. 나는 나의 삶. 너 같은 부류 나 같은 부류의 인간이 있으니 세상이 다채로운 거라고.


수익성으로 직결되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그 마음들이 안쓰럽고 재미없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그런 진부한 삶을 살고 싶지 않은 내가 밭을 일구는 일이 하나의 평화적인 시위가 된듯하다. 맺혀있는 꽃망울을 보니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꽃이 피면 열매를 맺지

꽃이 피면 그대로도 아름답지만, 열매라는 다음도 있다. 투박하고 소박하다고 느낀 작물도 열매를 맺기 위해선 꽃이 핀다. 고추는 하얀 꽃, 오이와 토마토, 호박은 노란 꽃, 가지는 보랏빛 꽃처럼 말이다. 이런 작물은 활짝 핀 꽃을 점점 밀어내며 꽃은 점점 시들고 떨어져 나가면서 그 자리에서 열매를 키워간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건 처음이라 신기하기만 했다.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그 당연함이 놀랍다. 작물의 정직함과 순수함에서 비롯되는 꾸준함과 노력 그리고 추진력을 배워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꽃이 피면 수확이 끝나가지

꽃이 피면 마냥 기쁜 일만은 아니다. 꽃 자체로 수확인 작물들과 이파리를 수확하는 루꼴라와 쑥갓, 고수와 같은 작물들과는 곧 작별인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꽃을 수확할 때는 그대로 뜯어버려야 하는 일말의 죄책감을 들게 한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꽃 수확. 이유는 맛과 향이 기가 막힌다.

이파리를 먹는 작물들은 어린잎이 부드럽고 먹기가 편해 꽃이 피기 전까지 부지런히 수확한다. 아무리 수확은 나에겐 좋은 일이지만 어린잎을 떼어먹는 것도 꽤나 노력해야 하는 일이라 나의 부지런함이 허락하는 정도까지만 하기로 했다. 그래서 벌써 어린잎들은 잘자라 억세졌고 꽃망울이 맺혔다. 더이상 수확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있어도 작물들의 꽃을 누구보다도 빨리 볼 수 있으니 오히려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카모마일
쑥갓꽃
루꼴라꽃





초록빛에 다른 색을 더한 6월의 텃밭에는 꿀벌, 진딧물, 무당벌레, 나비 등 새로운 손님들도 늘었다. 좋든 싫은 그 손님들과 함께 만든 꽃이라는 건 하나의 결과이자 다른 결말을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지금은 그저 바람에 살살 흔들리는 꽃을 바라보며 꽃처럼 바람을 마음에 담아본다.












시골힙스터의 텃밭 이야기는 유튜브에서 영상으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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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힙스터]

"태어난 곳은 시골, 내 꿈은 힙스터"

시골의 일상을 그리고 담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삶과 마음이 따르는 행복을 실천하는 진정한 힙스터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instagram : @countryside.hipster
e-mail : countryside.hips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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