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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힙스터 Mar 17. 2024

쉴 틈 없어도 나는 좋아

인생 첫 텃밭_7月





더위가 점점 기승을 부리더니 여름이라는 계절이 왔다. 잠깐 햇빛에 서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 기운이 쏙 빠지는 날씨가 지속된다. 장마가 찾아오면 여름작물들은 사실상 끝나기에 그전에 부지런히 수확하며 이 계절을 즐겨야 한다. 그래서 텃밭에서 보내는 시간을 최대한 앞당겼다.


아침 6시 텃밭으로 가는 길.

반쯤 감긴 눈, 삐죽 나온 입으로 작게 한숨을 쉬며 뱉은 말.

"아우 더워"

이 말을 내뱉을 때면 튀어오르는 투정에 가까운 생각들.

'왜 사서 고생을 할까'

그러다가도 이런 싱숭생숭한 마음을 접게 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눈앞에 보이는 텃밭이다.









더위를 식혀주는 여름작물

이 시기에 자라나는 텃밭의 작물들은 물을 많이 머금고 있다. 한입 베어 물기만 하면 팡-하고 터져 나오는 사막의 오아시스의 물과 같다. 잠시만이라도 더위를 잊을 수 있다.


여름작물과 관련한 추억이 몇 가지가 떠오른다. 저녁이 되면 밥상 위에 얼음이 동동 시큼시큼 오이냉채를 시원하게 들이켜시는 아빠, 온 가족이 모여 거대한 수박을 통통 치면서 '요놈 맛있겠다'라고 쩍 갈라지는 수박을 보며 "우와!!!" 하는 후덥찌근한 저녁, 또 한국영화 <리틀포레스트>에서 매미가 시끄럽게 우는 여름날 나무 밑 평상에 앉아 토마토를 크게 한 입 베어 무는 장면이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쩜 그렇게 시원하게 느껴지는지. 토마토가 다 자라면 꼭 해보기로 했는데 드디어 그 계절이 온 것이다.



토마토

토마토 모종을 처음 심었던 때가 기억난다. 고작 이파리 몇 개에 토마토향을 뿜어내던 모종이 어느새 지지대를 타고 올라 초록빛 토마토들이 주렁주렁 열리더니 빨간 토마토가 되었다. 그 작은 모종을 보며 여기서 어떻게 그 큰 토마토가 열릴지 상상할 수가 없었는데 생각보다 토마토 줄기는 생각보다 두껍다. 충분히 열린 토마토들을 버틸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우선 맛있게 잘 익은 토마토 하나를 따서 하고 싶었던 베어 물기를 했다. 바로 따서 먹는 토마토는 너무 미지근해서 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미지근한 건 상관없었다. 직접 길러낸 토마토라니. 진짜 토마토향이 났고 맛이 났다. 다른 작물들을 통해 수확의 경험을 했어도 매번 신기하다.



7월에 수확한 환상의 짝꿍 토마토와 바질






오이

옆집할머니께서 주신 오이다. 자리를 몇 번 옮겨서 오이가 꽤 고생했다. 처음에는 잘 자라지 못하다가 알맞는 자리에 뿌리를 내리더니 잘 자라주었다. 그러나 수확할 때 확인한 오이는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잘 자라라고 주었던 천연비료를 너무 많이 주었던 걸까? 오이가 평소에 보던 오이가 아니다. 제대로 된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속상해진 마음에 옆집 할머님을 만나 말씀드렸다.


"할머니, 오이한테 너무 비료를 많이 줬나 봐요"

"왜? 오이가 뭐 잘못된겨?"

"아니요. 너무 뚱뚱해요. 평소에 보던 오이 모양이 아니에요"

"어~ 그기 원래 그랴. 원래 좀 똥똥햐"

"아 그래요?"


인터넷에 찾아보니 품종은 조선오이였고, 원래 그렇게 조금 뚱뚱하게 생겼다 한다. 할머님께서 추천하시길 노각오이무침처럼 먹으면 맛있다고 하셨다. 워낙 좋아하는 반찬이라 오히려 더 좋았다. 아마도 살면서 가장 많은 오이무침을 해 먹는 7월이 아니었나 싶다.


누군가가 오이를 키운다고 하면 조선오이를 추천해주고 싶다. 그냥 두어도 잘 자라고 열매도 잘 맺어 키우기 편하고 더위에 입맛 뚝 떨어질 때 오이무침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조선오이의 모습은 범상치않다.
7월에 수확한 작물들








더워도 다시 한번만

수확만 하고 다른 노동은 하기가 싫을 정도로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지만 가을재배 작물들을 위해서라면 지금 심을 수밖에 없다. 움직이기도 싫고 찝찝하지만 조금만 힘을 내보자. 가을을 위해서 심어야 할 것들이 있으니.



들깨

옆집할머니네 가장 넓은 쪽 밭이 분주하다. 정갈하게 밭의 모양을 잡고 멀칭을 하고 계신다. 다음 날 뭔가가 심어져 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뭐 심으셨어요?"

"어~ 왔어? 들깨"

"아~ 들깨요~!!!"

"어~ 쪼꼼 남았는데 심어볼텨?"

"음... 네!"

"언제 심을 거야?"

"음... 글쎄요?"

"지끔 안 심을꺼면은 통에 물에 담가뒀따가 심어"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들깨 모종을 얻어왔다. 들깨를 심을 장소를 정하고 풀들을 정리하고 땅을 뒤집어 밭 모양을 잡고 물에 담가뒀던 들깨들의 위치를 잡고 그대로 심으면 끝! 역시 하다 보니 요령이 생긴다. 벌써 가을날 선선한 바람에 스쳐 풍기는 고소하고 향긋한 들깨향이 기대가 된다.


들깨밭 만들기




당근

동생이 일본드라마를 보다가 당근잎 요리를 보곤 당근을 심어 달라고 요청했다. 작물의 가짓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으니 작게라도 당근을 심기로 했다.




당근 씨를 뿌리고 이주 정도가 흐르니 땅을 뚫고 줄기가 올라왔다. 당근이 어느 정도 자라면 단단한 줄기와 조금 부실한 줄기가 구분이 되기 시작한다.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가 커지면 당근이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당근마다 땅속에서 공간이 필요하다. 공간 확보를 위해 솎아주어야 한다. 단단해 보이는 줄기는 두고 조금 약해 보이는 줄기를 그대로 뽑는다. 그게 솎는 작업이다.



솎는 작업은 파종 후 한 달 좀 안되었을 때 진행했다. 어린 당근 뿌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주황빛을 띠고 있었고 생각보다 하찮아 귀여웠다. 이렇게 솎은 당근을 버리기가 아까워 당근잎 무침을 해 먹기로 했다. 요리법은 시금치 무침처럼 살짝 데친 후 무치면 끝이다. 당근 잎은 어린 풀들이 부드럽고 쓴맛도 덜해 맛있다. 당근잎 요리는 솎는 작업 후 생긴 당근 이파리를 활용하는 것이 이래저래 적당하다.


솎은 당근과 어린 당근잎 무침








호박이 넝쿨째로

단 네 개의 호박 모종이 밭 한쪽의 언덕을 잠식했다. 꺾이지 않는 기세로 봄에서 여름까지 달려온 결과다. 잠시 비실거렸던 호박은 어디 가고 잎도 큼직해졌고 노란 꽃도 피더니 이젠 조금씩 호박도 열리기 시작했다.

반찬 걱정은 없다. 호박잎이면 충분하다. 잘 찐 호박잎에 밥을 얹어 짭조름한 우렁이된장을 넣고 한입에 와앙하고 넣어먹으면 이것이 시골밥상, 한국의 맛 그 자체다. 정말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다른 건 몰라도 여름의 호박잎쌈밥은 집 나간 입맛까지 돌아오게 만든다. 호박은 요리 활용도도 좋고 건강에도 좋고 맛도 좋아서 옛 속담에 큰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온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겠다.


호박은 잘 뻗어 올라갈만한 공간만 주어진다면 다른 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고 잘 키울 수 있다. 다치지 않으면서 좀 깔끔한 호박을 원한다면 볏짚 같은 것으로 멀칭을 하면 좋고 그렇지 않다면 지붕 같은 구조물을 세워 땅이 아닌 구조물 위에서 자라게 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멀칭을 하는 것을 추천하는데, 잡초가 자라게 되면 호박 줄기 때문에 벨 수가 없고 그로인해 잡초가 무성해지면 호박이 어디서 자라는지 찾기 힘들다. 물론 멀칭을 하지 않아도 호박의 성장력에는 문제가 없지만 작업자의 입장으론 불편하기 때문이다. 멀칭하지 않고 조금 불편한 자의 조언정도로 받아들이면 좋다.



호박잎 따기
자라고 있는 작은 호박
호박꽃이 피면 호박이 주렁주렁





속이 차오르는 옥수수

밭의 가장자리를 따라 봄에 심은 어린 옥수수 모종이 내 키를 훌쩍 넘었다. 조용하게 혼자 쑥쑥 자라났다. 크고 기다란 이파리에 가려 보이지 않던 옥수수 열매는 벌써부터 수염이 가득이다. 시험 삼아 잎에 둘러싸인 열매를 살짝 들춰보니 속이 꽉 차오르고 있다.

직접 기른 옥수수라니!

심어 두고 주변에 고구마잎이 너무 자라 다가가기도 어려워서 그냥 뒀더니 알아서 옥수수 열매를 맺었다. 노란 옥수수가 빼꼼 반겼다. 아직까지 차오른 열매는 단 한 개. 나머지 옥수수 알알이 차오르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7월 말, 속이 꽉찬 옥수수는 단 하나. 8월 초면 수확할 수있을 것 같다.







낯선 연보랏빛 꽃

밭에 보기 드문 낯선 연보랏빛 꽃이 폈다. 어떤 꽃일까 봤더니 치커리에서 꽃이 폈다. 텃밭을 하면 어쩔 수 없이 관찰을 많이 하게 되는데 작물의 꽃을 보는 게 참 놀라운 경험이다. 루꼴라꽃도 그렇고 쑥갓꽃도 그렇고 이번엔 치커리꽃이라니 이렇게 연보랏빛을 가졌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채소와 허브를 기르면 밭은 그저 초록빛일 거라고만 생각해서 꽃도 키우려고 했던 것인데 채소 만으로도 이렇게 다채로울 줄은 몰랐다.

텃밭을 가꾼다는 것은 참 많은 걸 배우게 한다. 그리고 그 배움을 통해 지구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은 인간의 삶과 참 많이 닮았고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간다. 모두 세상이라는 거대한 자연 아래에서 절기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 자연은 모든 생명을 살리는 위대한 것임을 한 번 더 배운다.


치커리꽃은 연보라빛을 띤다.








조금씩 더위에 지쳐 수확만 간신히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잦아졌다. 장마 전까지는 여름작물들을 부지런하게 수확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움직였다. 7월은 원하던 것도 예상치 못한 의외의 것도 수확하고 발견한 날들이 가득했던 한 달이었다.











시골힙스터의 텃밭 이야기는 유튜브에서 영상으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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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힙스터]

"태어난 곳은 시골, 내 꿈은 힙스터"

시골의 일상을 그리고 담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삶과 마음이 따르는 행복을 실천하는 진정한 힙스터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instagram : @countryside.hipster
e-mail : countryside.hips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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