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텃밭_8月_첫 번째
기세가 무서운 잡초들을 보며 '너희들 세상이구나' 생각하면서 늦봄까지도 열을 올리던 김매기를 멈춘다. 베어내고 뽑아내는 것을 여러 번 반복하고 나서야 고작 그것으로 꺾일 잡초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는 농사에 필요한 부분만 살짝 걷어내기로 한다. 비로소 모두 없애야 한다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나 인정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어느 때보다도 풀이 우거진 8월 초에는 허브들도 자신의 향을 힘껏 내뿜는 때다. 하늘에서 무자비하게 비가 내리는 장마가 지나면 허브는 작별인사를 준비한다.
만개한 밭
완전한 여름이 되었음을 알리는 건 밭은 무성하게 메운 잡초뿐만이 아니다. 뿌려놓은 이름도, 생긴 것도 낯선 꽃들이 제대로 물 만났다. 여름이라는 무대에 주인공처럼 등장해 존재감을 드러낸다. 더운 날씨에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듯하다.
야로우
서양톱풀이라고도 불리는 야로우는 밭에서 꽃을 보고싶은 텃밭러들에게 좋은 허브이다. 잘 자라기도 하지만 번식력이 좋다기에 나 같은 초보 농부에게는 최적화된 식물이다. 작물은 보통 노란 꽃이 많아 붉은 계열의 꽃을 찾기 어려웠는데 키워낸 야로우는 고운 핑크빛이라 기뻤다. 어린잎은 샐러드로 먹기도 하고 효능도 좋다는데 맛보지는 못했다. 번식력이 무척이나 좋다니 다음 해에 맛보기로 한다.
멕시칸햇 콘플라워 (프레리 콘플라워)
멕시칸 모자와 닮았다고 해서 멕시칸햇 콘플라워라고도 불리는 프레리 콘플라워다. 본디 목적은 티에 블랜딩을 하는 콘플라워 구매였으나 모양이 특이해 홀라당 구매했다. 더구나 추위에도 강하다니 북쪽에 위치한 나의 밭에는 제격이라 생각했다. 더운 지방에서 잘 자라는 꽃이 물론 화려하지만 텃밭에는 다소 잔잔해 보이는 컬러를 지닌 꽃이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라고 나니 그 선택은 옳았다. 또 진짜로 멕시칸 모자 같아서 재밌다. 또 밭에 놀러 온 친구들에게 멕시칸 모자처럼 생겼지 않냐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참 좋은 꽃이다.
가지
의외로 텃밭에서 구경할만한 꽃이 있다. 보랏빛의 섹시함을 뽐내는 가지는 매력덩어리 그 자체, 바로 가지다.
처음 모종을 데려왔을 때도 보랏빛 이파리에 시선을 빼앗겼는데 이번에는 꽃이다.
어디 그뿐인가.
이파리와 꽃의 매력을 그대로 담은 맛도 좋은 열매까지 열린다. 주로 노랗고 하얀 꽃만 열리는 작물들이 가득한 밭에서는 특이한 보랏빛인 가지는 다채로움을 더하는 매력적인 작물이다.
옥수수 하모니카
얼마 전까지 비어있던 속이 꽉 찼다. 몇 안 되는 옥수수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딱 적당한 양이다. 여름 저녁에 삼삼오오 거실에 모여 살살 부는 선풍기 바람을 쐬며 모두가 불어대는 옥수수 하모니카, 누구는 와구와구 불어대고 누구는 한 알 한 알 야금야금 불어댄다. 어떤 방식이어도 좋다. 취향껏 불어도 각자가 만족하면 그만이다.
향긋함을 오래도록
허브티
여름의 향긋함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서는 여름이 떠나기 전 서둘러 허브들을 말려두는 것이 좋다. 시기는 장마가 오기 전 마무리하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장마를 잘 견딘 허브들은 칭찬하며 조금 더 즐기면 된다.
쌀쌀해지는 가을, 겨울을 대비해 따뜻하게 허브티로 마실 요량으로 잔뜩 말려두기로 한다. 밭에서 자라는 민트, 바질, 타임, 레몬밤 등 다양한 허브들을 빠르게 수확했다. 세척 후 자연건조는 2주 미만, 건조기에서는 높지 않은 온도에서 하루 정도로 말려주면 끝이다.
개인적으로 정말 별미라고 생각하는 허브는 바질이다. 향신료로 쓰이거나 페스토를 만드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음료로 활용하는 것을 정말 추천한다. 초여름에는 바질 시럽으로 시원하게 탄산수에 타서 마시는 것을, 늦여름에는 잎을 바싹 말려 선선해지는 계절이 오면 말린 바질잎 한 스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뜨끈하게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부케가르니 (Bouquet Garni)
프랑스어로 '잘 꾸며진 꽃다발'이라는 뜻을 가진 부케가르니는 육수, 소스, 스톡 들을 만들 때 사용하는 다양한 허브를 엮은 것을 말한다. 밭에서 다양한 허브들을 키우긴 했지만 실제로 부케가르니를 사용해 요리를 하지는 않으니 허브를 자연건조하는 방식만 채용하기로 했다.
허브 중에서도 특히 타임은 바질, 민트 등과 같은 허브잎과는 다르게 수확 후에도 잘 시들지 않고 본모습 그대로 말라간다. 그러니 타임을 말리는 데에는 이것만 한 것이 없다.
가위로 싹둑싹둑 수확한 타임을 깨끗하게 씻는다. 마침 목이 말라 씻은 타임 몇 개를 적은 양의 뜨거운 물에 우려낸 후 시원한 얼음과 물을 넣어 마신다. 자연의 맛 그대로다. 타임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향을 지녔기에 양을 조절하며 우려 마시는 것이 좋다.
깨끗하게 씻은 타임을 살짝 키친타월로 물기를 제거한 뒤 끈으로 엮어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주렁주렁 매달아 두면 끝이다.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또 바람이 불 때마다 향긋한 타임 향이 퍼지는 건 물론이고 가랜드를 설치한 듯 인테리어에 꽤 신경 쓴 집 같은 분위기를 낼 수 있다.
잘 말린 잎들을 병에 담고 이름표를 붙여 잘 표시해둔다. 요리에도 쓰고 차로 우려내 마시기도 하고 수확을 마친 지난 시간을 회상하기에도 좋다. 다음 해에도 부지런하게 허브를 길러내야겠단 다짐을 마음을 새기기에도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다음 고수를 위해
봄부터 자란 고수는 완연한 여름이 되자 꽃을 피우더니 씨를 주렁주렁 달고는 말라 버렸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채종이다. 씨를 품은 마른 고수를 뿌리째 뽑아 살며시 모은 후 훑어주듯 씨를 털어준다. 그러면 후드득 소리를 내며 고수 씨는 줄기에서 분리가 된다. 채를 사용해 씨만 걸러 다음 고수를 위해 통에 담아 냉장보관을 한다. 봄에 뿌린 고수 양이 많긴 했나 보다. 채종한 씨가 이렇게나 한가득인걸 보면.
한여름은 작업하기에는 무척이나 덥기 때문에 쏴아- 내리는 장맛비에 텃밭이 걱정되지만 한 편으로는 한숨을 돌리는 달콤한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도 여름 농사를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직접 키운 허브가 내어주는 향긋하고 시원한 허브차 한 잔이면 충분하다.
벌써 한 해 농사의 반을 훌쩍 넘었다.
시골힙스터의 텃밭 이야기는 유튜브에서 영상으로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시골힙스터 유튜브 채널 바로가기
[시골힙스터]
"태어난 곳은 시골, 내 꿈은 힙스터"
시골의 일상을 그리고 담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삶과 마음이 따르는 행복을 실천하는 진정한 힙스터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instagram : @countryside.hipster
e-mail : countryside.hipst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