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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힙스터 Apr 21. 2024

모든 것이 점차 도드라지는 때

인생 첫 텃밭_9月


9월, 낮이 더워도 체크 남방을 꺼내 입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자꾸만 밖을 나가고 싶은 마음에 우리 집 막내 강아지 록키 산책을 핑계로 강화 고인돌에 갔다. 고인돌의 뻥 뚫린 풍경이 시원시원해서 좋지만, 근처에 길게 이어지는 논풍경을 보며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9월의 논길은 금빛 벼가 바람에 파도처럼 찰랑거리고 어디선가 향긋한 향이 난다. 바로 길을 따라 심어둔 들깨향이다. 이 풍경을 고이고이 마음속에 담아두고 다시 밭으로 향했다.




모든 것이 점차 도드라지는 때

여름과 가을 사이에서 분명하게 달라진 건 바람이다. 묘하게 선선해진 그 바람이 여름과 가을을 고르는 작업 중이다. 그 사이 작물들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여름을 사랑하던 작물들은 찬란했던 초록빛을 점차 줄여나갔다. 가을 작물들은 덩치를 점차 불려 나갔고 청년처럼 당당한 자체를 뽐낸다.

나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열심히 준비하던 몇 가지 일들은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고 마무리 단계만을 남은 일들의 구분이 선명해졌다. 한 해가 끝을 향해 달려간다는 의미이다.



고구마

조금씩 동네 할머님들께서 고구마는 언제 캘 건지 물으신다. 답변을 해드리기도 전에 '조금 있다가 캐도 된다', '시간 있을 때 천천히 캐도 된다' 등 '언제 캐는 게 좋을까요?'라고 되물으려고 했던 나를 간파하신듯하다.


봄부터 자리를 지키던 고구마는 우리 밭에서 가장 넓게 긴 시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알아서 잘 자라겠지 하며 두었더니 역시나 알아서 잘 자란다. 함께한 시간이 길어서일까. 곧 텅 비어질 고구마밭이 괜히 아쉽다. 늦어도 담달 안에는 캐낼 것을 다짐하고 조금의 고구마잎과 순을 땄다.


고구마 열매 말고도 잎과 줄기는 활용도가 높다. 줄기로는 볶아 밥반찬으로 먹고, 잎은 따다 쌈 싸 먹기도 하고, 시금치대신 고구마잎을 넣어 프리타타도 해 먹을 수 있다. 프리타타 같은 요리는 평소에는 잘 먹지 않지만 밭에 널려있는 재료가 아까워 한번쯤은 도전해 보게 된다. 그런 점에서 텃밭은 끊임없이 제공되는 건강한 콘텐츠다.


고구마잎을 넣은 프리타타



김장채소 (배추, 무)

여름 내내 빛이 좋아서 인지 어떤 작물들보다 성장이 빠르다. 크기도 물론이고 벌레들이 넘보며 야금야금 갉아먹는 것을 보니 맛도 좋은 것 같다. 특히, 김장배추를 기르는데 가장 큰 숙제는 벌레퇴치라던데, 11월이면 수확할 것이 없을까 봐 유난을 떨어본다.

인터넷에서 열심히 서치 했던 천연살충제. 참 많은 것들이 있다. 식초, 은행삶은 물, EM원액, 막걸리, 소주 등등... 그중에서 가장 만만하게 보였던 막걸리를 택했다. 막걸리에 사카린 조금을 섞어 뿌려주면 끝이다. 효과는 사실 안 뿌린 것보다 낫겠지 정도다. 찾은 바로는 은행삶은 물이 효과가 좋다는데 내년에는 은행도 주우러 다녀야겠다.

무는 9월 쯤되니 한두 개씩 뽑아 국물을 우리는 데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자랐다. 무를 좋아해 많이 심었는데 올해 가장 잘한 일 같다.


9월의 배추와 무


퇴근 후 텃밭






알밤

여름동안 달궈진 땅을 식히듯 하늘에서는 가을비가 내린다.

텃밭을 시작함과 동시에 밭일을 하다가 지치면 잠시 쉬어갈 곳을 마련했었다. 우리 가족끼리 캠핑장이라고 부르는 그곳은, 봄에는 때가 되자 살구가 잔뜩 떨어졌다. 그런데 이번엔 밤이다. 허리를 굽혀 땅을 쳐다보며 살구대신 동그란 갈색의 알밤을 줍고 다닌다. 얇은 신발을 신고 가시 돋친 겉껍질을 까자니 너무 따갑다. 이젠 밑창이 단단하고 두꺼운 신발을 신어야겠다.









열심히 밭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보이는 9월의 저녁노을은 마음을 간질거리는 풍경이 되었다. 살면서 가슴에 품고 살아갈 장면들이 텃밭을 하면서 참 많이 늘었다. 행복이라는 건 항상 멀리 있는 줄 알았지만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바로 옆에 있었다. 항상 옆에 있다 해서 매번 쉽게 느낄 수 있는 건 아닌 듯하다. 최소한의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자연과 가까이 사는 삶을 만끽하려면 그저 풀 숲에 사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삶을 감사하며 먼저 자연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언제나 알아차리려 노력하는 것이다. 텃밭을 가꾸는 이유가 점차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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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힙스터]

"태어난 곳은 시골, 내 꿈은 힙스터"

시골의 일상을 그리고 담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삶과 마음이 따르는 행복을 실천하는 진정한 힙스터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instagram : @countryside.hipster
e-mail : countryside.hips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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