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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힙스터 Jan 07. 2024

모르면 배우면 되지

인생 첫 텃밭_1月

배움의 시작

본격적으로 인생 첫 텃밭을 가꾸기 두서 달 남짓 남은 시기,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허브와 농사에 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잠이 쏟아지는 밤에는 도무지 못할 것 같아 차라리 일찍 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나의 하루 중에서 가장 이른 시각인 새벽 6시에, 30분~1시간 정도하고 있다. 1월의 새벽은 춥고 어두워서 일어나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챌린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한껏 늘어진 이른 시간대를 이렇게나마 부지런히 살고 있음을 뿌듯해하며 하루하루 책 한 장씩 넘긴다.


농사의 기본과 허브에 관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책들로 골랐다. 이왕이면 최대한 자세히 설명되어 있고 이미지도 많아 읽기 쉬운 책이었으면 했다. 농사에 무지하고, 오로지 책이나 유튜브를 보며 독학을 해야 했기 때문인데, 그래서 '초보', ’ 무작정 따라 하기‘, 주말텃밭', '취미가드닝'과 같은 키워드를 포함한 조금은 가벼운 책들로 구매했다.



캄캄하고 추운 겨울 새벽 공부는 챌린지 그 자체



 지속가능한 텃밭을 꿈꾸다

텃밭 가꾸기를 통해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지만 현재 살고 있는 시골이라는 지역의 특성을 보자면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자연의 존재 가치를 느끼고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시골 사람으로서 텃밭 가꾸기는 언젠가는 꼭 경험해봐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순히 생산의 목적으로만 끝나기보다 자연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귀중한 것임을 배우는 과정이길 바랐다.


인스타그램에 공부하는 사진을 해시태그와 함께 올리자 외국인 팔로워 한 명이 서툰 한국어로 남긴 댓글을 남겼다. "너는 식물을 공부하세요? 나도 책이랑 유튜브로 식물을 공부했어요. 한국에서 채소와 약초를 재배하고 싶어요. 나는 '퍼머컬처'라는 것을 배웠어요". 그게 무엇인가 해서 검색했더니 내가 원하던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관련한 책들도 몇 권 추가로 구매했다.


퍼머컬처란 '영구적인' 뜻의 퍼머넌트(permanent)와 농업이라는 뜻의 어그리컬처(agriculture) 두 단어를 합쳐 만든 단어다. 지속가능한 농업의 뜻을 가졌고 자연의 반복적 형태를 본떠 필요한 음식, 에너지 등을 충족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농법이라 한다. 기후위기 시대인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는 농업의 형태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며, 숲을 가꾸고, 연못을 만들어 물을 관리하고, 동물과 식물 더 나아가 미생물까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퍼머컬처다.


나에게는 단순히 농법이라기보다도 하나의 가치관이나 사상처럼 느껴졌다. 순환, 상생, 공생, 공존과 같은 궁극적인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내가 가꾸는 텃밭도 모두를 위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농사 첫해에 원하는 바를 실현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꼭 그런 공간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식물킬러의 도전

공부를 하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게 될까?’ 

여름과 겨울의 날씨가 극단적인 한국에서는, 긴 장마를 이겨낼 또 혹한의 추위를 견뎌낼 만한 외국 허브들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지금까지 내 손을 거쳐간 식물은 줄곧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나는야 식물 킬러다.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 선인장부터 다육이, 이름 모를 식물들까지 합하면 족히 다섯은 될 거다. 그런 내가 텃밭을 가꾸겠다니... 가당치도 않다. 그럼에도 타고난 청개구리 기질 덕분일까. 이토록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부족한 실력이지만 어떻게 해서든 잘 키워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그래서 스스로 테스트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본 숏폼영상에서 빠르게 쑥쑥 자라는 아보카도가 생각났다. 아보카도 하나 맛있게 먹고 분리한 씨앗을 깨끗하게 씻은 뒤 물에 담가 뿌리가 날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뿌리가 적당히 자라면 화분으로 옮겨 심으면 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이걸 내가 만약 성공시킨다면 텃밭 가꾸기에 임할 충분한 자격을 스스로에게 주기로 했다. 발아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발아 과정을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꾸준히 올려보기로 한다.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아보카도 발아 과정, 결과는 대.성.공.!


▶︎ 아보카도 발아과정 스토리 바로가기






상상하는 재미

텃밭을 가꿀 수 있는 스스로의 자격을 갖게 된 (전) 식물 킬러인 나는 준비한 농사 관련 책들을 모두 읽고 난 후 가장 신나는 일을 했다. 바로 작물 배치도를 그리기. 상상하는 것은 정말 재밌다. 그래서 미리 찍어둔 밭 사진을 보며 어느 곳에 무엇을 심을지 어떤 모양으로 배치할지 그려보기로 한다.


책에선 초보일수록 양은 적지만 가짓수를 늘리는 '다품종 소량재배'를 추천했다. 초반에 수확의 재미를 맛보면 계속 나아갈 용기가 생기기에 꾸준히 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그래서 키우기 쉽다는 작물의 이름을 적고 별을 그려 난이도를 표시했다. 그리고 그중 심고 싶은 것과 꼭 심어야 할 것들을 고르고 종류별로 나누었다. 또 화사한 텃밭의 분위기를 위해 꽃도 목록에 추가했다.


2023년도 인생 첫 텃밭 지도(작물배치도)




엉터리 작물배치도

나중에서야 알았지만(사실 마음이 급해 간과했다) 작물을 배치하는 데에 염두해야 할 점들이 꽤 많았다. 그러나 그것도 모르고 계절도, 조건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신나게 엉터리 작물 배치도를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엉터리 작물배치도는 아주 쓰임새가 없는 것 같진 않다.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오며 가며 봤던 동네어르신들의 텃밭이 무의식 중 참고가 됐는지 얼추 흉내는  냈으니 말이다. 엉터리여도 작성하고 보니 원하는 작물과 위치 정도는 한눈에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고려해야 할 부분을 확인 후 재배치하기로 한다.





 작물을 배치할 때 고려해야 할 점

밭의 크기는?

밭의 방위는?

일조량은 어느 정도인가?
주변 환경은 어떠한가?
작물의 키는?

작물의 특징은?

작물의 수량은?

작물의 궁합은 좋은가?

수확 시기는?

멀칭을 해야 하는 작물인가?

작물의 궁합은?





밭 분석과 작물 배치법

앞으로 가꿀 밭에 대한 이해가 먼저였다. 

우선 밭의 크기는 걸음 수로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방위는 스마트폰 나침반을 사용했다. 또 주변을 둘러보니 낮은 산이 있고 나무가 많아 일조량이 걱정되어, 이른 아침과 한낮 그리고 해지기 전에 한 번씩 방문해 빛과 그림자를 확인했다. 숲이 가까워 다른 곳보다 해가 빨리 넘어가지만 다행히 가장 중요한 오전과 한낮의 햇빛은 충분하다. 밭은 살짝 경사가 있어 작업 시에는 불편할 것 같다. 그래도 마을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물 빠짐은 걱정 없어 보인다. 만일에 대비해 비가 많이 오는 날에 물길 확인해 보고 없다면 만들기로 했다.


전에 메모해둔 작물리스트를 보면서 키, 심는 시기, 수확기간을 표로 정리했다. 

그리고 옥수수처럼 키가 큰 작물은 밭의 북서쪽 가장자리로 정한 뒤, 수레가 들락날락할 수 있는 길을 만들고 다음 작물을 순차적으로 배치했다.

배치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 있는데, 사람 간에도 궁합이 있듯 작물 간에도 궁합이 있다는 것이다. 서로 궁합이 좋은 작물들을 '동반 식물'이라 하는데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주고 이롭게 한다고 한다. 동반식물표는 인터넷에서 검색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동반식물의 대표적인 예는 바질과 토마토다. 이 둘은 먹을 때도 궁합이 좋은데 자랄 때도 좋다니 환상의 궁합은 식물에게도 존재하나 보다.





앞길이 구만리

아무리 넘쳐나는 정보의 시대 살고 있다 해도 쉬운 게 하나 없다. 노트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지식을 옮겨 적어도 내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건 아마도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얕게나마 식물(허브, 재배법)에 대해 공부한 후 배운 점은 길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식물이 자랄 환경을 잘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계절의 흐름을 잘 알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1월, 한 달은 직접 밭을 분석해 보고 앞으로 심을 작물표도 작성했고 밭의 전체적인 작물배치도까지 만들었다. 물론 앞길이 구만리지만 초심자에게는 행운이 따른다 하니 큰 걱정 말고 신나게 초보라는 것을 즐겨보자.







참고자료

- 책

가이아의 정원 - 토비 헤멘웨이 저자(글) · 이해성 , 이은주 번역

나의 위태한 생태텃밭 - 샐리 진 커닝햄 저자(글) 김석기 번역

- 영상

<The Permaculture Principles>, Oregon State University Ecampus

<Permaculture Design for Water>, Oregon State University Ecampus

- 사이트

농사로 : 농업진흥청 농업기술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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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힙스터]

"태어난 곳은 시골, 내 꿈은 힙스터"

시골의 일상을 그리고 담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삶과 마음이 따르는 행복을 실천하는 진정한 힙스터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Instragram : @countryside.hipster
e-mail : countryside.hips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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