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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Aug 12. 2024

'슈필라움'과 '케렌시아'

시골집, 나 혼자 쉬고 놀고 사는 집으로 진화 중

주변을 둘러보면 은퇴 후 혼자 시골 내려와 사는 용감한(?) 또는 외롭거나 고독한, 슬픈 남자들이 많다. 가족들한테 버림받아 청승 떨고 사는 것이 아니니 슬픈 것은 아니다. 좋아서들 그런다. 그렇게 사는 여자들도 있다.


귀농 귀촌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가족이 함께 해야 한다. 예전에 도시서 전원생활을 목적으로 시골로 옮겨와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랬다. 도시생활을 모두 정리한 다음에 시골행을 택했다. 직장 정리하고, 살던 아파트 정리하고, 자식들 대학에 가거나 시집 장가보낸 후, 나이 들어 두 부부가 다정히 손잡고 전원생활로 갈아탔다.


그런데 요즘엔 도시를 남겨놓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 도시에 집도 두고 재산도 남겨놓고, 시골 가 살자고 애걸복걸해도 반대만 하는 아내나 남편들은 ‘쿨 하게’ 도시에 남겨 놓고, ‘나 홀로 전원생활’이 좋아 시골로 오는 사람들이다.





귀촌을 위해 도시생활을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아예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사는 구도를 찐다. 평소에는 도시에 살고 필요할 때마다 시골에 있는 농장을 찾아 잠깐씩 머물다 가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주거 구도를 ‘멀티해비테이션(Multi-habitation)’이라 정리한다. ‘복수의 주거 공간’을 갖고 사는 사람이다.


‘멀티해비테이션’ 인구가 늘며 시골집은 세컨드하우스가 됐고 주말주택이란 말이 유행한다.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휴일과 휴가 일수가 늘면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주말용 주택인 세컨드하우스 수요가 늘 것’이란 연구 보고도 있다.


그래서 나타나는 대표적 현상이 시골집의 소형화다. 도시를 몽땅 정리하고 내려와 사는 집이 아니기 때문에 클 이유가 없다. 공장서 제작해 이동하는 주택인 극소형 이동식 전원주택도 인기를 끈다. 실용적인 전원주택에 관심이 커지면서 살림집도 소형화가 대세다.


특별한 이유가 있거나 여유가 있다면 큰 전원주택을 짓겠지만, 은퇴 후 선택하는 귀촌자의 전원주택이나 젊은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세컨드하우스 등은 앞으로 소형화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시골집의 세컨드하우스화, 주말화 되고 또 소형화되는 경향이 강한데, 요즘은 한 단계 더 진화해 ‘나 홀로 노는 집’으로 가고 있다. 가족들이 살며 살림하는 공간이, 놀고 즐기는 놀이공간이 되었다. 좀 더 발전해 가족이 아닌 ‘나만의 공간’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Spielraum(슈필라움)’이란 말이 있다. 독일어 '놀이(Spiel)'와 '공간(Raum)'의 합성어로 ‘다른 사람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만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이른다. 문화심리학자인 김정운 박사가 강의나 책에서 소개해 많이 알려졌다.


그는 “자기만의 슈필라움이 있어야 인간으로서의 자존감과 매력을 만들고 품격을 지키며 제한된 삶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단순한 쉼의 공간을 넘어 놀고 창조적인 생각을 하며 자신의 삶을 업그레이드하고 완성하는 곳이 슈필라움이다. 삶의 가치를 찾고 질을 높일 수 있는 공간이다.


매년 국내 소비 트렌드를 예측해 소개하는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18’에서 ‘케렌시아(Querencia)’를 소개했다. 투우경기장에서 소가 잠시 숨을 고르는 공간이다. 남에게 방해받지 않는 ‘케렌시아’와 같은 피난처, 휴식공간을 찾는 현대인들이 많아진다는 분석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바쁜 생활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케렌시아’ 같은 시골집, 더 나아가 삶을 재창조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인 ‘슈필라움’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실제 그런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시골집들은 ‘슈필라움’이나 ‘케렌시아’로 지금도 계속 진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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