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고 시골 가 살겠다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실제 옮겨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생각만 그렇게들 한다. 나이가 들수록 살던 곳을 떠나 옮겨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은퇴 후 시골 갈 생각이면 젊었을 때부터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나이 들어 시골로 옮겨 가는 사람들, 가서 잘 사는 사람들은 이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했던 사람들이다.
집은 없어도 작은 땅이라도 미리 마련해 놓고, 컨테이너 가져다 놓고 관리하며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본 사람들은 은퇴하고 옮겨 사는 것이 쉽고 또 잘 적응하며 산다. 그렇게 해야 실수하지도 않는다. 갑자기 옮겨가면 후회하고 실패한다.
은퇴 후 도시 생활 접고 갑자기 시골에 정착하겠다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살던 곳에서 너무 멀리 가 자리를 잡아 후회하는 경우도 많다. 자식들 가까이 가겠다는 생각으로, 친인척들이 산다는 이유로, 자연경관이 좋다는 이유로 자리를 잡지만 살아보면 그게 아니다.
경기도 일산에 살던 A 씨는, 공무원인 딸이 세종시로 발령받아 가자 은퇴 후 세종시 인근 공주시의 시골마을에 토지를 구입해 장착했다. 살면서 이전에 살던 일산에서 너무 멀리 와 정착했다는 것이 후회됐다. 친구들 만나는 것부터 여러 가지가 불편하다.
B 씨는 부산서 살며 직장생활을 했다. 은퇴 후 자녀들이 살고 있는 서울과 가까운 경기도 양평에 전원주택을 지어 이주했다. 자녀들이 자주 찾아올 것을 기대했지만 가깝다고 자주 오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됐다. 자신이 살던 곳에서 너무 멀리 와 살다 보니 아는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다. 옮겨 살더라도 가까운 곳에 터를 잡고 안전하고 편리한 집을 지었으면 좋았을 걸 하며 후회하고 있다.
C 씨는 대구에 살다 친척이 있는 강원도 평창 대관령에 집을 지어 이사했다. 대구는 여름이 더운데 대관령은 시원한 곳이라 살기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자연환경 좋고 친척도 있어 편하기는 한데 생활하기는 뭔가 불편하다. 그래서 최근 대구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해 다시 이사를 했다.
고령자를 대상으로 조사해 보면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 이런 현상을 영어로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라고 표현하는데 ‘내 집에서 나이 들기’라 풀이할 수 있다.
은퇴 후 살고 싶은 지역도 현재 살고 있는 마을을 최고로 친다. 옮겨 살 생각을 해도, 사는 곳 근처의 중소도시나 인근 농어촌지역 정도를 선호한다. 현재 사는 곳에서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자신이 익숙한 곳에서 아는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게 최선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은퇴 후 나이 든 고령자들에게는 자신이 살던 곳이나 그 인근 지역이 가장 좋다.
노후생활을 위한 터를 찾고 집을 계획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들을 고민해야 할까? 개인별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혹은 가족 등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있어 일반적으로 정리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자녀나 친인척들과 가까운 곳, 투자가치가 있는 곳보다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보험연구원에서 고령자 주거 욕구를 조사했는데 ‘자녀나 친척들과 가까운 곳’ ‘경제적 투자 가치가 있는 곳’을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보다 ‘미끄러지거나 넘어질 위험이 없는 주택’ ‘의료시설이 가까운 곳’ ‘편리한 교통과 접근성’ 등 안전에 대한 조건을 중요하게 꼽았다.
간병기를 맞아서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 등의 신세를 지지 않고 살던 집에서 생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집에서는 의료혜택을 받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노후에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보내게 된다. 위험하지 않고 의료시설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변수가 많겠지만 노후의 주거에 꼭 필요한 요소들을 정리해 본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실행하기는 어렵다.
첫째,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치안이나 방범 등에 문제가 없고, 큰 병원이 아니라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병의원이나 약국이 주변에 있으면 좋다. 거주 공간도 안전해야 한다. 계단이나 문턱을 최소화하고 안전 손잡이도 계획하는 것이 좋다. 미끄럼방지 바닥재, 화장실 지지대를 만들고 응급비상벨 등도 설치해 두면 좋다. 필요할 때 간병인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쉬운 공간이라야 한다.
둘째, ‘생활 편의시설이 갖춰진 곳’이다. 경치 좋다고 외진 곳을 택했다 나이 들어 후회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필요할 때 자장면이나 치킨이라도 시켜 먹을 수 있는 곳이 좋다. 그런 곳이라면 편의점이나 은행·관공서 등을 이용하기 편하다.
셋째, ‘경제적인 비용’이 중요한 요소다. 유지관리비가 많이 드는 집, 관리에 많은 노동이 필요한 집은 노후에 맞지 않다. 생활비가 많이 필요한 구조이거나 세금이 많은 집도 부담된다. 나이 들수록 주택의 다운사이징이 필요하다.
넷째, ‘어울려 살 수 있는 사람’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곳이 최고 명당이다. 취미생활을 같이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취미가 같지 않더라도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있어야 한다. 시골 노인들이 마을회관·경로당 등을 찾는 이유다.
다섯째, ‘편리한 교통’이다. 외부 일을 볼 때, 가족이나 친지·친구 등을 만나고 싶을 때 이동하기 편해야 한다. 대중교통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여섯째,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도 고려해야 한다. 하루 종일 볕이 잘 들고 쾌적하고 온화한 곳이 좋다. 일조량이 많고 온습도가 적당한 곳이 건강에 좋다. 여름에는 괜찮지만 겨울에 햇볕을 받지 못하는 집들이 많다. 노후에 살기 좋은 집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