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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Apr 03. 2024

시골서 땅 사 집짓고, "뭘 할건데?"

집에서 공간으로,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짓는 집에서 설치하는 집으로

봄비가 찔끔거린다. 시골서는 이때가 바쁘다. 마당에 새로 나오는 꽃도 옮겨야 하고 꽃망울이 맺힌 과실나무 곁가지도 쳐줘야 한다. 하루 종일 마당을 분주히 오간다. 번거로운 일이지만 즐긴다. 이게 귀찮고 힘들었으면 도시 아파트에 살았어야 했다.


점심상을 차려 빗소리 곁에 자리를 잡는다. 곁들인 막걸리 한 잔이 바로 청산이다.     


홍진에 묻힌 분네 이 내 생애 어떠한가 / 옛사람 풍류에 미칠까 못 미칠까 / 천지간 남자 몸이 날만하니 하건마는 / 산림에 묻혀있어 지락을 마랄 것가     


조선의 선비 정극인의 상춘곡이다. ‘속세 먼지구덩이 사는 사람들아 내 사는 모습이 이만하면 어떤가 옛사람의 풍류에 미칠지 못 미칠지는 모르겠으나 천지에 남자 몸으로 산림에 묻혀 사니 참으로 즐겁다' 뭐  이런 내용이다.


술기운이 오르면 제 흥에 취해 풍류놀이를 한다. 주변에 있는 아무 나뭇가지나 꺾어 먹을 찍어 글씨를 쓴다. 시골서 살며 이리 논 지도 오래됐다.




법과 제도는 수시로 바뀌고 같이 일 하는 사람들은 따로 놀고... 힘드네!


산마을로 이사와 살림집 지은 지도 10여 년이나 됐다. 집 옆에 ‘시골편지’라는 이름의 예쁜 카페도 열었다. 먹고살아야 하기에 커피도 팔고 차도 팔고 빵도 판다. 가까이 사는 이웃부터 멀리서 온 여행객들도 손님이다. 이들과 만나 사는 이야기 나누는 것도 큰 재미다.


시골서 집을 만드는 것은 도시에서 아파트를 사고 분양받는 것보다 어렵다. 돈이 더 많이 들어 어렵다는 게 아니다. 과정이 번거롭고 까다롭다는 얘기다.


물론 쉬운 방법도 있다. 임대를 하거나 사면 좀 쉽다. 하지만 이왕이면 내가 원하는 집, 꿈꾸던 집을 지어보려고 한다. 땅을 만들어야 하고 설계를 해야 하고 건축을 한다. 그게 혼자 알아서 하는 게 아니다. 법에 따라야 한다.


전문가 자문도 받아야 하고 설계 및 인허가를 대신해 줄 자격 있는 사람을 찾아 부탁도 해야 한다. 관청도 들락거려야 한다. 한 번에 끝나면 좋은데 몇 번 수정 보완을 하다 보면 시간과 비용이 아깝다. 이런 일로 지치고 중도에 포기할 때도 많다.


수도 없이 그런 일을 하지만 정답은 없다. 법과 제도는 수시로 바뀐다.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는 일이기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이번 연재에서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도시를 남겨 놓고 오는 사람들 많아 다들 주말주택, 세컨드홈! 그럼 농막은?


농지법 산지법 따지고 건축법 따지다 보면 건조하고 딱딱하다. 복잡하다. 직접 해보지 않으면 무슨 이야긴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많다. 쉽게 설명하려 노력은 하겠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시골에 짓는 집을 전원주택이라 한다. 찾는 사람들은 도시를 떠나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에 살고 싶어서다. 예전에는 그랬다. 가장 먼저 ‘도시 정리하기’나 ‘도시 버리기’부터 했다. 물론 지금도 도시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시골로 오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분위기와 시골집을 찾는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시골살이를 하더라도 도시를 오가며 살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유형의 주거 구도를 ‘멀티해비테이션(Multi-habitation)’이라 부른다.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사는 구도다. 일주일에 5일은 도시에서 살고 2일은 시골에서 사는 것을 ‘5도 2촌’이라 한다. 최근 들어 ‘4도 3촌’으로 바뀐다. 아예 시골에 살며 도시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있다.


도시를 버리고 정리하지 않고 도시를 남겨놓고 시작하는 전원생활이 유행하며 주말농장, 주말주택, 주말별장, 세컨드하우스, 세컨드홈 등의 말들이 생겼다. 크고 좋은 집보다 작은 전원주택을 찾는다. 도시를 몽땅 정리하고 내려와 사는 집이 아니기 때문에 클 이유가 없다. 꼭 집이 아니라도 공간만 있으면 된다. 공장서 제작해 설치하는 극소형 이동식 주택이나 농막 등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경치 좋은 캠핑장들은 텐트를 치고 캠핑카를 끌고 온 여행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살림집은 줄고 놀고 쉬겠다는 공간은 늘고... "집 지어 혼자 노는 사람도 많아요"


시골서 제대로 살겠다는 살림집은 줄고 놀고 쉬기 좋은 공간이 는다. 열심히 사는 '집'이 아니라 재미있게 놀고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으로의 이동이다. 요즘은 한 단계 더 진화해 가족들의 공간이 아닌 ‘나 혼자 노는 집’도 많다. 가족이 있어도 혼자 쓰는 공간이다. 남편도 아내도 아이들은 나의 공간에 잠깐씩 다녀가는 손님이다.


‘Spielraum(슈필라움)’이란 말이 있다. 독일어 '놀이(Spiel)'와 '공간(Raum)'의 합성어로 ‘다른 사람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만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이른다. 문화심리학자인 김정운 박사가 강의나 책에서 소개해 많이 알려졌다.


그는 “자기만의 슈필라움이 있어야 인간으로서의 자존감과 매력을 만들고 품격을 지키며 제한된 삶을 창조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단순한 쉼의 공간을 넘어 놀고 창조적인 생각을 하며 자신의 삶을 업그레이드하고 완성하는 곳이 슈필라움이다. 삶의 가치를 찾고 질을 높일 수 있는 공간이다.


매년 국내 소비 트렌드를 예측해 소개하는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2018년도에 이미 ‘케렌시아(Querencia)’를 소개했다. 투우경기장에서 소들이 경기에 나가기 직전이나 경기를 치른 후 숨을 고르며 대기하는 공간이다. 남에게 방해받지 않는 ‘케렌시아’와 같은 피난처, 휴식공간을 찾는 현대인들이 많아질 것이란 분석이었는데 실제 그렇다.


주변을 둘러보면 바쁜 생활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케렌시아’ 같은 전원주택, 더 나아가 삶을 재창조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인 ‘슈필라움’으로 사용할 집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목적의 공간이라면 꼭 집일 필요는 없다. 텐트도 좋고 캠핑카나 농막도 좋다. 창고가 될 수도 있고 카페도 괜찮다. 그렇듯 ‘집 아닌 집’을 만들어 나만으로 공간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집에서 다목적 공간으로, ‘HOUSE’에서 ‘SPIELRAUM’이나 ‘QUERENCIA’로 재해석되고 무한 진화 중이다.


도시를 정리하고 내려와 사는 집이 아니기 때문에 클 이유가 없고 필요한 공간만 있으면 된다. 공장서 제작해 설치하는 소형 이동식 주택이나 농막 등이 인기를 끄는 이유다.




그런데 뭘 할 건데? 어떻게 놀고 쉬고 할 건데? 그것이 문제로다!


좋은 땅에 좋은 집, 그럴듯한 공간을 만들었다 해도 거기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정확하지 않으면 힘들다. 내가 만든 공간을 어떻게 이용할지 그 목적이 중요한데 바로 일이다. 할 일이 없으면,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오래 못 간다. 금방 싫증 나고 따분해진다. 꽃놀이는 하루이틀이다.


좋은 땅 좋은 집 찾기 전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거기에 맞는 땅을 찾고 집을 지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거꾸로 한다. 좋을 땅부터 사고 좋은 집 짓고 난 후 뭘 할까를 고민한다.


할 일이 분명하지 않으면 좋은 땅, 좋은 집에 집착한다. 쓸데없는 공간, 나한테 맞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 시간도 버리고 돈도 버린다. 시골에 만드는 집, 공간이 왜 필요한지부터 따져보란 얘기다. 필요한 대로 필요한 만큼만 지으면 된다. 할 일도 없고 필요도 없다면 짐덩어리다.


그럼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스스로 더 잘 알고, 알아서 겠지만 모른다. 뭘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사람들이 실제 많다. 놀고 먹고 쉬고 하는 것도 그냥 되는 줄 아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안 해 사람들은 쉽지 않다.


시골서 어떤 일을 하며 재미있게 살 것인가에 대한 얘기도 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는데 이번 연재에서는 그 이야기까지 자세히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럼 지금부터 시골서 땅 사고 허가를 받아 집 또는 공간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관심 있는 분들께 좋은 정보가 됐으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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