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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Apr 06. 2024

하루실(何陋室)과 칙칙당(則則堂)

낡고 허술해도 법칙과 원칙이 있는 집, 사람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으로

마당에 낡은 자재들을 모아 조그만 토방을 짓고 석기와 철기시대, AI시대를 분별없이 살고 있다. 돌칼을 만들어 마당 풀을 뽑다, 목이 마르면 잘 익은 오디와 보리수를 따 먹으며 수시로 채집생활을 한다.


쇠망치를 들고 나무에 못질을 하다 말고, 핸드폰 통화를 하고 최신형 전동 공구를 챙겨 날품을 팔러 집을 나가기도 한다.


사람들이 그리울 때면 골방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메타버스를 탄다. 그곳에서는 AI들이 재미난 얘기도 노래도 들려주고 필요한 물건도 찾아 준다.


땡볕에서는 농약통 들고 진딧물 찾아다니며 망나니 칼춤을 추다가도, 비 오는 날에는 부침개에 막걸리 한 상 차리고 먹을 갈아 붓을 들어 선비흉내를 낸다. 스마트폰 속 우렁각시들은 옆에서 앞에서, 어찌 그렇게도 잘 흔드는지, 넋을 빼는 춤을 추고, 천상의 목소리로 풍악까지 울려준다. 취한다.


어느 날엔 석기시대고 어느 날엔 4차산업시대다. 어느 날엔 톱과 도끼 같은 연장을 들고 나무의 배를 따고, 어느 날엔 붓끝에 어린 묵향을 맡는다. 저녁에 막걸리를 마시다 느닷없이 스마트폰을 열고 메타버스로 떠나 저 세상 사람이 된다. 이왕이면 천당과 극락으로 가겠다 마음 먹지만 졸리면 도돌이표다. 도를 닦아 하늘을 나는 경지에 이르면 밤낮 깨어 신통을 닦아야 하는데, 잠 때문에 글렀다. "참아야 하느니라! 잠!"


하루에도 몇 번씩 석기와 철기시대, 메타버스를 오가며 살다 보니 주변에 이것저것 많이 펼쳐놓았다. 반응이 빨라야 하기 때문이다. 공구통 옆에는 먹통이 준비돼 있다. 나무의 멱을 따던 손도끼 옆에 스마트폰이 있고 노트북도 있다. 쓰다 남긴 나무토막도 굴러다니고 나중에 간판 액자를 만들거나 집 고칠 때 써야지 하고 주워다 놓은 판자데기도 쌓여 있다. 남들이 보면 정리정돈 되지 않아 어수선하다.


정신 사납다고, 우중충하고 칙칙하다고 잔소리하는 친구 놈도 있다. 그놈은 아직도 철기만 들고 사는 초기 호모사피스든가, 아님 도를 튼 절대 고수든가!


그러잖아도 토방에 그럴듯한 이름 하나 떡 하니 붙이고 싶어 고민하던 차였다.





토방에는 원래 ‘하루실(何陋室)’이란 이름이 붙어있었다. 아는 이가 들러 무슨 내용이냐고 물었다.


이때는 유식한 척을 해야 한다.


"논어에 '子欲居九夷 或曰 "陋, 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자욕거구이 혹왈 "루, 여지하?" 자왈 "군자거지, 하루지유")'란 말이 있거든!"


아는 이가 답한다. 말이 짧다.


"응"


"무슨 얘긴고 하면 공자는 평생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자신의 뜻을 펼칠 곳을 찾지 못했어. 이도 저도 안 되니 주변 사람들한테 “차라리 구이족들이 사는 곳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했거든!"


"응"


"공자의 말을 들은 제자가 "거기는 누추할 터인데 어찌 사시려고요? 아니되옵니다!"라고 했거든! 그러자 공자는 "군자거지, 하루지유라 했거든. 군자가 거기에 살고 있는데 어찌 누추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 바로 그 얘기야!"




공자 당시 구이족이 살고 있는 땅은 지금으로 보면 중앙아시아, 만주, 한반도 등의 지역에 해당된다. 이곳은 산이 많고 추운 지역이라 매우 가난하고 척박한 땅이라 여겼다. 우리도 구이족 중 하나 동이족으로 불렸다. 나중에 '동쪽 오랑캐'란 뜻으로 비하됐지만 원래는 나쁜 말이 아니었다.


공자는 구이를 군자가 살고 있는 곳이라 했다. 땅은 척박해도 군자들이 살고 있는 곳인데 어떻게 누추하다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물론 공자가 말한 군자를 두고 누군지 몇 가지 해석은 있지만, 내 생각은 구이족이 곧 군자라 한 것 같다.


공자는 환경이 아무리 누추해도 군자가 살면 누추하지 않다 말한 것이다. 공자의 말을 빌어 후대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소개할 때 ‘누실(陋室)’, 즉 ‘누추한 집’이라 겸손해했다. 삐까번쩍한 집을 방문했을 때 주인은 “누추한 집을 찾아주셔서...”와 같은 말을 지금도 쓴다.


‘하루실(何陋室)’은 공자의 말인 ‘何陋之有(하루지유)’와 자신의 집을 낮추어 소개하는 ‘누실(陋室)’에서 따와 지은 이름이다. 직역하면 '어찌 누추한 집이겠는가?'란 뜻이다. ‘내가 군자처럼 살고 있는데 어찌 초라하고 누추한 집이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좋고 화려한 집에 살아도 주인이 바른 마음을 가진 군자가 아니면 그 집은 누추한 집이 되고, 아무리 누추한 집이라 해도 그 주인이 군자라면 좋은 집이 된다’는 의미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떡 하니 붙어있던 간판을 자기가 가져가겠다 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하루실' 간판은 내려졌다.




다시 뭐라 지을까 고민하던 차였는데 마침 '칙칙하다'라고 말한 그이가 힌트를 줬다. 그래 칙칙하게 살자!

 

그래서 지은 이름이 '칙칙당(則則堂)'이다. '원칙이 있고 법칙에 맞는 집'이란 뜻이다. 굴러다니던 나무토막을 정성으로 닦아 페인트로 써서 걸었다. 사는 사람도 그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모양은 아무리 어수선하고 허술해 보여도 다 나름의 법칙과 원칙이 있다. 자연의 법칙과 원칙에 맞으면 잘 사는 거라 오늘도 생각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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