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가 반짝, 마음이 뭉클
저번주에 이어서 사진으로 만나는 영국의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첫 장은 저번처럼 재치 있고 귀여운 엽서로 시작해 본다.
"The only pain you need in your life is a pain au chocolat."
네가 인생에서 필요한 단 하나의 pain(고통)은 '뺑 오 쇼콜라'일뿐.
번역하고 나니 뭔가 의미가 확 와닿진 않지만 불어이자 초콜릿 크로와상을 지칭하는 팽 오 쇼콜라를 재치 있게 사용했어. 그래. 내 인생에 뺑 오 쇼콜라만 있으면 돼. 히히.
크리스마스건 신년이건 도서관은 항상 공부하는 학생들로 붐비는 것 같다. 도서관 직원들이 크리스마스나 밸런타인 같이 큰 행사나 명절이 다가오면 며칠에 걸쳐 유리 벽을 데코레이션 하는데 일주일 정도면 지워질 벽에 그렇게 정성을 들일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도서관 직원들이 유리에 그림을 그린다... 는 조금 보기 어려운 풍경인 것 같은데. 일하는 환경과 마음의 여유가 다른 때문이겠지?
학교 이야기를 한 김에.
결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캠퍼스에서는 주기적으로 소방 훈련이 실시된다. 그것이야 딱히 새로울 것이 없지만 이게 그냥 명분만 있고 시간을 때우고 간다기보다는, 실제로 부엌에서 화재가 날 수 있는 상황을 (저기 보이는) 철제 시설을 통해 재현하고, 불이 어떻게 나는 지를 보여주는데 '너희 중에 여기서 프라이팬에 불 지펴볼 사람??'이라고 자원자를 뽑아 보지만 가상 상황이라고 해도 다들 무서워서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다. ㅎㅎ
그런데 불이 나는 것을 보면 정말 한순간이고, 미리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패닉이 올 수밖에 없게 불은 삽시간으로 저 부엌을 덮는다. 평소에 아무래도 더 주의하게 된다.
소방훈련뿐만 아니라 큰 행사가 있을 때에 긴급 후송차량과 앰뷸런스도 항상 대기가 되어있는데, 이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조금 다른 점은 모든 장비가 전부 세팅되어 아예 1초 대기조 상태로 놓여있다는 것. 언제 무슨 일이 나도 허겁지겁 장비를 꺼내지 않아도 되게 아예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은 것이다.
이때는 아직 세팅 중이었는데, 들것과 산소호흡기 등 온갖 도구들이 다 볕을 쬐고 있는 것을 보면서 너무 신기하고 생경했던 기억이 있다. 이 날은 무려 150개에 달하는 대학 전체의 Student Society,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동아리들을 소개하고 신입학생들을 유치(?)하는 거대한 행사였는데 저 소방차의 바로 옆에서 스윙댄스 동아리가 스윙 뮤직과 함께 열심히 춤을 추며 동아리를 알리고 있었다. 소방관들이 스윙댄스에 몸을 흔들흔들하며 함께 무드에 젖어 있는 모습도 즐거웠다.
자, 분위기를 조금 바꾸어 이제 눈이 즐거웠던 순간들로 가본다.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던 "Read"
아니 어떻게 책을 접어서 저런 효과를 내지?? 저 작품을 보면서 아 오늘은 반드시 책 한 권을 읽어야겠다.. 다짐했다. (다짐만 했다고 한다)
런던의 올리버 보너스(Oliver Bonas)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매장에서 만난 성냥. 빼곡히 담긴 알록달록한 성냥들을 보면서 성냥도 인테리어 용품이 될 수 있겠다... 생각했다. 방에 소이향초 하나 두고 책 읽으며 켤 때마다 '원조 춘천닭갈비'나 '김제할머니집' 성냥이 아니라 이런 성냥으로 불을 지핀다면 그 위엄과 가치(?)때문에라도 딴짓 안 하고 책을 읽게 될지도. 한 병에 약 15파운드(30,000원) 정도나 하는데 아까워서 마구 쓰진 못할 것 같지만...
블룸스버리 그룹이 런던에 새로 짓고 있는 복합 공간의 공사현장. 그냥 공사 중이라고 전체 천막으로 빙 둘러놓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 건물의 톤이 어떻게 구성될 것인지를 공사모자의 컬러들을 통해 미리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 링크드인 링크까지 빼놓지 않고 넣어두었다. 공사현장의 사진을 찍어오다 못해 '도대체 여기 뭐가 들어오길래??' 하는 궁금증과 함께 인스타까지 들어가 보게 하는, 도대체 완공이 언제일까 궁금해지게 하는 기발한 광고이자 안내판인 셈이다.
꽤 오랜 기간 나의 프로필 사진이 되어준 캠퍼스 내 카페 'Coastal'의 작은 마스코트. 겨울에는 빨간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I can't espresso how much you mean to me!(네가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표현할 수 조차 없어!)"의 '표현 Express'를 에스프레소로 바꾼, 카페의 특성을 살린 재치 있는 문구. 이런 건 번역해서 설명하면 조금 재미가 없어진다. 아쉽. 어쨌든 무언가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의 작은 센스를 엿볼 수 있는 이런 디테일들이 좋다.
기왕 내가 사랑하는 카페를 소개하는 김에 요 내용도 같이 자랑하고 싶다. 'Coffee for trees'라고 해서 커피산업과 환경을 연계한 프로젝트인데 카페들이 연계하여 커피판매 수익의 일부로 브라질에 풍력발전을 설치하거나, 토착 나무를 심거나, 콜롬비아에 산림보호를 하는 등 커피를 수확하는 곳에 다시 선순환을 하는 프로젝트이다. 지금까지 1,000개의 나무를 심는 데에 기여했다고 하니 이 카페는 역시 나의 최애가 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아껴둔 생일카드 사진. 크리스마스 마켓을 갔다가 내가 생일에 받으면 너무 행복할 듯싶은 카드라서 냉큼 구매해 버렸다.
Ocean of happiness라니… 망망대해와 같은 행복이라면 대체 얼마나 큰 행복이 내 생일에 밀려오는 걸까?? 그런 마음을 누군가 내게 보내준다고 생각하니 또 한 번 뭉클해진다.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그렇고 많은 국가들이 아직도 여전히 카드를 쓰는 낭만을 가지고 있다. 선물포장가게, 카드 전문점들이 장사가 잘 되는 것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장사는 되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해보지만 지나다 보면 아이고, 사람만 많다. 펜을 들어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경험은 쓸 때도 누군가를 떠올리며 즐겁지만 받으면 더욱더 행복하다. 서로에게 소식과 안부를 전하는 것이 점차 간편해지고 그 시간도 단축되어 가는 시대에 살면서 '굳이 굳이'이 불편하고 오래 걸리는 매체를 택하게 되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머리맡에 놓아 간직할 수 있는 것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반증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누가 저에게 엽서 한 장 안 써 주실래요? 저 곧 생일인데.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