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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주제 말하다 냅다 울어버리기

Soggy 시호가 어디가나

by Siho

일전에도 말했듯 나는 눈물이 언제나 그렁그렁 담겨 준비 되어 있는 편이다.


한국에서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영국에 와서부터는 왜 그런지 세상 모든 만물 천지에 다 공명을 하고 있어서 기쁘면 울고, 놀라워도 울고, 감동해도 울고... 별명이 축축이(Soggy) 시호가 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눈물'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럽고, 나약함의 상징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영국에 온 뒤 나는 눈물을 흘리는 현상에 대해 꽤나 진지하게 탐구하게 되었는데, 한국도 그렇지만 영국도 남자는 눈물을 엔간해서 흘리는 법이 없다. 물어보니 이들 또한 '남자답기' '씩씩하기' '늠름하기' 등을 어릴 때부터 주입 교육받기 때문에 감정을 표현하거나 눈물을 보이는 일은 약한 남자로 보일까 봐 자제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이 많이 변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도 자유로워지고, 남자가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예전보다는 자유로워졌다. 때로는 성 관념이 아예 바뀌어 버린 것 같은 느낌도 종종 들지만...(?) 어디까지나 내 감정은 나의 것이니,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표현을 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사설이 길었다.

이제 곧 수업들도 마무리가 될 것이고 4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논문을 쓰게 된다. 저번 달에는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슈퍼바이저가 지정되었다. 소위 나의 '전담 교수'님이 생긴 셈이다. 나의 슈퍼바이저는 Andrew 교수님. 내가 애정하는 공연단체 'Imitating the Dog'의 공동 대표이시기도 하면서 우리 학교에 벌써 몇십 년째 뿌리를 내리신 학자 중의 학자이시기도 하다. 나의 슈퍼바이저가 앤드류 교수님이라는 메일을 받았을 때, 나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계속해서 리서치만을 하고 싶다거나, 커뮤니티 작업을 더 단단하게 하고 싶어 하는 순수한(?) 목적의 동기들과는 달리 나는 상업적(기업가적)인 부분+ 예술 교육적인 부분+ 환경 적인 부분을 모두 아우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미 그런 루트를 밟고 있는 앤드류 교수님이야 말로 적임자임에 틀림없다.


어제는 정말 진지하게 교수님과 나의 논문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할 참이었다.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바다를 나의 터전으로 느끼게 된 나는 연구자이자 예술가로서 어떠한 방식과 매체로 바다와 인간의 연결- 동조- '공감'을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이 나의 현재 과제이자 논문의 주제가 될 것이다.



감사하게도 교수님은 물에 대해 연구한 다양한 예술가들의 책을 리스트업 해 주셨다. "내 할 일 인걸" 이라고 하면서. 감동했다...



교수님이 물었다.


"네가 지금 가장 많이 생각하는, 가장 하고 싶은 게 뭐야?"

(당연하게도 우리는 영어로 대화했지만(!), 빠른 이해를 위해 번역하여 싣는다)


시호: 저는 사람들이 직접 바다에 들어가서 경험을 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수족관이나 영화로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그냥 ‘저기 어딘가에 바다가 있다’는 느낌만 주는 게 아니라, 정말로 바다와 연결되는 감각을 경험하게 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걸 어떻게 퍼포먼스로 풀어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잠시 침묵)

(어휴 … 또 눈물이 차오른다. 도무지 나는 왜 이러는지) 죄송해요. 왜 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교수님: 괜찮아, 울어도 돼. 왜 미안해하는 거야?


시호: 모르겠어요.


교수님: 내 생각인데, 어쩌면 너의 눈물과 슬픔이라는 것도 너의 퍼포먼스의 일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시호: 음? 그럴지도요! 저는 스쿠버 다이빙을 할 때, 바닷속에서 뭔가 연결된다는 느낌을 받아요.

하지만 수족관에서 물고기를 보면, 아니면 다큐멘터리를 볼 때는 그냥 ‘그들은 저기 있고, 나는 여기 있다’는 느낌만 들죠. 하지만 직접 물속에 들어가면… 우리는 함께 존재하는 거예요.
바다, 육지, 하늘… 그런 경계가 사라지고,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교수님: 그렇다면 이건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야. 너는 물속에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연결된 존재’가 된다고 느끼는 거지?


시호: 맞아요. 그래서 이걸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돼요. 제가 모두를 데리고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걸 '공연예술 적'으로 풀어낼 방법에서 걸리는 것 같아요.


교수님: 네가 퍼포먼스를 통해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이 바다와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거야.
꼭 물속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감각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바다를 느낄 수 있도록 말이지.


시호: 그게 가능할까요?


교수님: 당연하지. 우리가 같이 '과정'을 기록해 나가 보는 거야. 네가 우는 것에 대해서, 그 이유와 감정에 대해서. 눈물도 물이잖아. 정말 흥미로운 관찰이 아닐까? 네가 눈물을 통해 지금 물을 만들어 내고 있잖아.


시호: (놀란 표정) 아… 정말 그러네요.


교수님: 그렇지. 너는 바다를 이야기하면서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어.

그건 단순한 감정적인 반응이 아니야. 네 몸이 바다를 향한 감정을 물리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거야.

우리는 왜 감정이 극대화될 때 눈물을 흘릴까?

눈물은 단순한 물리적인 현상이 아니야. 인간이 가장 강한 감정을 느낄 때 몸이 만들어내는 ‘물’이지.

이건 프로이트도 이야기했던 ‘해양적 감각(oceanic feeling)’과 연결될 수 있어.


시호: ‘해양적 감각’이요?


교수님: 그래. 프로이트는 인간이 어떤 감정적인 초월 상태에 이를 때, 마치 바다처럼 ‘끝이 없는 감각’을 경험한다고 했어. 우리가 바다를 보면서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도 그런 이유일 수 있어.
너는 단순히 바다를 연구하는 게 아니라, 그 바다와 감정적으로, 철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거야.

너는 물에 대해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동시에 물을 만들어 내고 있는 거야.

뭐가 문제야??

이건 우리가 인간이라는 너무도 자명한 증거인걸.


시호: 교수님, 말씀 듣고 나니까 뭔가 감이 잡히는 것 같아요.


교수님: 심지어 네가 퍼포먼스를 하면서 울어도 상관없어. 울음도 하나의 퍼포먼스가 될 수 있어.
사람들에게 바다를 느끼게 하고 싶다면, 네가 느끼는 지금 이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지.


시호: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저는 공연 중에 우는 게 뭔가 부끄럽다고 생각했거든요.


교수님: 그럴 필요 없어. 오히려 감정을 숨기는 게 더 부자연스러울 수도 있어. 나는 오랜 시간 배우들과 작업했잖아. 정말 좋은 배우는 진심의 눈물을 흘릴 줄 알아.
눈물도 물이고, 물은 네 연구에서 중요한 요소잖아. 그러니까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오히려 연구의 일부로 받아들여 봐.


시호 : 와… 교수님, 이건 정말 생각도 못 했던 시각이에요. 제가 눈물을 흘린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물과의 연결을 보여주는 거였군요.


교수님: 맞아. 그리고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야. 네가 바다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눈물이 나는 건, 바다에 대한 네 감정이 그만큼 깊다는 뜻이야. 이걸 퍼포먼스에서 활용할 방법을 고민해 보자.


시호:네, 그렇게 할게요!





아직도 덜 닦인 눈물이, 아니 이제는 닦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그 눈물이 그대로 눈 우물에 그렁그렁 한 채로 나는 힘차게 Thank you, Andrew! 를 외치며 교수실을 나섰다.


나에게 머릿속의 생각이 그대로 각인되는 판자 같은 것이 있다면

나는 이날의 대화 한 글자 한 글자를 조심스럽고 소중히 머릿속에 새겨 넣어 두고 싶었다.




주책없이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나의 눈물이 부끄럽거나, 죄송한 일이 아니라는 것

바다에 대해, 그리고 고래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북받치는 내 감정이 과하고, 감정적이고 연약해 빠져서가 아니라

그만큼 내가 바다에 대해 깊고 진한 감정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진심이라는 것.

내가 그만큼 바다에 깊이, 들어가 있다는 것.


너와 닿고 싶을 때마다 나는

나 스스로 눈물을, 물을 만들어 내어

어서 빨리 너에게 닿고픈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는 것.



오늘 모두 알았다.


내가 왜 그렇게나 눈물을 흘리는지 이제 알았다.


나의 소중한 마음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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